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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15. 2017

덴마크 클래식 백패킹


두 발을 내디디며 자연에 한걸음 다가서는 백패킹은 여행의 원초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덴마크 중부 퓐섬에서 만끽한 백패킹의 순수한 즐거움.





 Classic Danish Trail 

덴마크의 길 위에서


Prologue



드넓게 펼쳐진 호밀밭과 풍력발전기는 퓐섬 남부를 가로지르는 아키펠라고 트레일을 걷는 동안 가장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풍경이다. ⓒ 오작

새하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오솔길 한쪽으로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호밀밭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건너편에는 너른 초원 위로 거침없이 말이 달리고, 스러진 옛 풍차 너머로 발트해(Baltic Sea)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반기는 풍력발전기가 시야를 채운다. 목가적인 전원 풍광을 응축한 이곳은 덴마크 한복판에 자리한 퓐(Fyn)섬이다.


한국 면적의 절반에 불과한 덴마크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우선 가장 동쪽에는 수도 코펜하겐을 비롯해 수백 년간 덴마크 왕족이 머물던 로스킬레(Roskilde) 등 주요 도시가 모여 있는 셸란(Sjælland)섬이 자리잡고 있다. 유럽 대륙 북단으로 돌출된 곳이자 덴마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유틀란트(Jutland) 반도는 서쪽을 아우른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퓐섬이 끼어 있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1시간이면 닿는 이 섬은 덴마크를 찾은 여행자가 그다지 주목하는 지역은 아니다.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이 태어난 오덴세(Odense)를 잠시 둘러보기 위한 기착지 정도로 여길 뿐.


연중 차분한 분위기가 감도는 퓐섬이지만 매년 여름이면 조금 분주해진다. 현지인이 해안가의 별장과 중세 영주의 고성을 찾아 바캉스를 만끽하는 시기다. 좀 더 눈에 띄는 여행자도 가세한다. 아웃도어 복장을 차려입고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배낭을 어깨에 단단히 고정한 백패커들이 그 주인공. 평화로운 섬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들의 등장은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개최한 이벤트 때문이다.


스웨덴의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은 2005년부터 스웨덴 최북단에 440킬로미터로 이어진 쿵슬레덴(Kungsleden, 스웨덴어로 ‘왕의 길’) 트레일 중 일부를 걷는 피엘라벤 클래식(Fjällräven Classic)을 진행하고 있다. 4박 5일 동안 해발 2,000미터를 넘나드는 약 110킬로미터 구간을 걷는 트레킹은 난도가 높거니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맞서 야영을 해야 하는 탓에 숙련된 백패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고개만 슬쩍 돌리면 나타나는 초현실적인 풍광은 수많은 도전자를 매혹하며 완주를 종용한다. 그렇기에 매년 피엘라벤 클래식의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면 2,000명의 정원이 순식간에 마감된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2013년부터는 이웃 국가 덴마크로 영역을 확장했다. 첫해 참가자는 단 200명에 불과했지만, 매년 인원이 늘어나면서 올해는 약 750명이 참가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횟수로 네 번째를 맞은 피엘라벤 클래식 덴마크의 존재를 모르는 현지인도 아직 태반이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 노신사가 불쑥 말을 걸어오기도 하니까. “다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피엘라벤 클래식 덴마크 참가자가 출발 전날 이용하는 팔슬레드 스트란 캠핑장. 덴마크 전역에 약 600곳의 캠핑장이 있을 만큼 캠핑이 보편화되어 있다. ⓒ 오작



D–1



피엘라벤 클래식 덴마크에 참가한 백패커는 퓐섬에 도착하기 전,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당일 아침 출발지인 퓐섬 서남단의 아담한 항구도시 팔슬레드(Faldsled)로 향하거나, 출발 전날 종착지인 토싱에(Tåsinge)섬에 있는 발데마르스성(Valdemars Slot)에 모이거나. 어느 쪽을 택하든 퓐섬을 처음 찾은 이에게 낯설게 다가오긴 마찬가지다. 만약 자동차를 렌트한 참가자라면 출발 전날 발데마르스성으로 향하는 것이 여러모로 수월하다. 우선 불필요한 짐을 차 안에 보관할 수 있다. 클래식을 마친 이후에는 좀 더 편안하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출발지 부근의 팔슬레드 스트란 캠핑장(Faldsled Strand Camping)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하룻밤 야영을 하며 클래식의 분위기를 먼저 파악해볼 수도 있는 셈이다.

발데마르스성에서 캠핑장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길. 차를 타면 불과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내일부터 이 일대 어딘가의 트레일을 따라 꼬박 3일간 걷게 될 것이다. 클래식을 앞둔 캠핑장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프랑스의 전통 공놀이 페탕크(petangque) 삼매경에 빠진 무리부터 장작이 타오르는 화롯대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이들, 반려견과 느긋하게 바닷가를 산책하는 커플까지. 그중 조촐하게 바비큐파티를 벌인 이들의 대화가 사뭇 진지하다. “지난해 스웨덴 클래식은 날씨가 정말 끔찍했어요.” “덴마크 클래식은 한결 여유롭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죠.” “5년 전 라플란드(Lapland)를 횡단한 적이 있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모험이었죠.” 한눈에 베테랑의 면모가 느껴지는 이들은 바로 피엘라벤 클래식을 홍보하기 위해 참가한 앰배서더 멤버다. 그중 스웨덴 출신의 소피아 요한손(Sofia Johansson)은 피엘라벤의 화보 모델로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어 제법 낯이 익다. 노련한 백패커들의 경험담을 두루 경청하고 나니 덴마크 클래식 정도는 가뿐히 완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개양귀비의 씨앗은 덴마크에서 호밀빵을 구울 때 사용한다. ⓒ 오작




Tip 배낭 패킹


3일간 진행하는 피엘라벤 클래식 덴마크에 참가하려면 65~75리터 사이즈의 대용량 배낭이 필요하다. 텐트와 침낭, 매트를 기본으로 3일간 입을 옷과 휴대용 식기 도구, 스토브, 물병, 응급약을 챙기자. 경량 제품을 선택해야 배낭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음식과 간식은  주최 측에서 제공하므로 추가로 챙길 필요는 없다.





Day 1



클래식 첫날 오전 8시. 출발 포인트인 팔슬레드 항구변에는 피엘라벤 클래식 깃발 아래 들뜬 표정의 수많은 백패커가 모여 있다. 덴마크 클래식은 이틀에 나눠 출발하고, 시간 차를 둬 참가자의 동선을 최대한 분산시킨다. 출발지의 자원봉사자는 하이킹 패스의 첫 스탬프 도장을 찍어주고, 점심 식사를 위한 빵과 스프레드, 과일, 에너지바를 하나씩 나눠준다. 쓰레기를 담는 전용 백과 오가닉 봉투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는다. 클래식이 열리는 기간에는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해야 하고, 그 외 쓰레기는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하니 말이다. 배낭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저울도 설치되어 있다. 최소한의 짐만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75리터 대용량 배낭에 빈 틈을 찾기가 힘들다. 결국 배낭 무게가 20킬로그램를 초과하고 만다. 불필요한 짐은 이곳에서 최종 점검한 후, 도착지로 보낼 수 있다. 라면을 비롯한 몇 가지 음식과 두터운 옷가지 그리고 휴식을 위한 캠핑 체어 등을 이때 보내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해야만 했다.


“흔히 덴마크의 지형을 ‘팬케이크’라 부르죠. 산이 거의 없는 완만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니까요.” 피엘라벤 클래식 덴마크를 총괄하는 라스 리슬레브(Lars Ryslev)가 말한다. 덴마크 클래식은 퓐섬 남부 해안 지역을 따라 약 220킬로미터로 이어진 아키펠라고 트레일(Archipelago Trail)의 하이라이트 구간을 통과하는데, 하루 평균 25킬로미터씩 3일에 걸쳐 총 75킬로미터를 완주해야 한다. “사실 이길은 덴마크 내에서도 그리 알려진 트레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덴마크의 핵심 요소를 잘 보여주는 구간이라 할 수 있죠. 가축이 자유로이 뛰노는 초원과 평화로운 농가 마을 그리고 오래된 영주의 저택과 바다를 모두 아우르니까요.” 리슬레브가 코스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는 피엘라벤 클래식이 보다 많은 나라에 전파되길 바랐고, 오랜 노력 끝에 스웨덴 이후의 첫 클래식을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개최하도록 이끌었다. “덴마크 클래식을 완주하는 일은 초심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는 일종의 아기새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죠. 처음에는 바둥거리지만, 차츰 날개짓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처럼요.”


왼쪽부터 피엘라벤 클래식을 덴마크에서 개최하도록 이끈 라스 리슬레브. 통신이 잘 잡히지 않는 전원 속에서 트레커는 지도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참가자에 앞서 트레일의 5km마다 표지판을 설치하는 자원봉사자. ⓒ 오작


오전 9시, 클래식의 시작 신호와 함께 호수처럼 잔잔한 팔슬레드의 해변길을 따라 백패커가 긴 행렬을 이루며 나아간다. 아키펠라고 트레일은 남녀노소 모두가 경쾌하게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하게 이어진다. 참가자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다.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걷는 부부부터 반려견용 배낭을 등에 걸친 셰퍼드와 동행한 무리,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북유럽에서 하이킹은 가장 친숙한 아웃도어 활동으로 꼽히곤 한다. 특히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여름은 하이킹을 떠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기도 하다.

해변길을 지나 이내 숲으로 진입한다. 트레일 도중 5킬로미터마다 설치된 표지판이 지나온 거리를 알려준다. 개인마다 속도 차가 있지만 보통 1시간 30분 간격으로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때문에 다섯 번 지나치면 하루 할당량을 채우는 셈. 이는 다음 표지판을 만나기 전, 최소 한 번은 쉬어 가라는 신호기도 하다. 하이킹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할 때는 배낭을 풀고 트레킹화를 벗어 온몸을 최대한 편안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충분히 물을 마시고, 초콜릿이나 에너지바 같은 간식으로 열량을 채워야 장거리 하이킹의 체력 부담을 다소라도 줄일 수 있다.


야트막한 퓐 알프스 (Fyn Alps) 구릉 지대에 자리한 홀스텐후스 저택은 첫째 날의 마지막 체크포인트다. ⓒ 오작

전나무가 우거진 숲을 가로지르자 제법 경사가 가파른 구간을 지나 트레비에르(Trebjerg) 정상부에 이른다. 덴마크어로 ‘비에르’는 산을 의미하지만 고작 해발 128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곳에 오르니 헬네스만(Helnæs Bay)에 떠 있는 섬을 비롯해 풍력발전기와 첫날 캠핑을 한 팔슬레드 그리고 퓐섬 남부 연안의 군도가 이룬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아키펠라고 트레일은 고도차가 적은 대신, 길의 변화가 꽤 잦은 편이다. 고운 흙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걷다가 아스팔트가 깔린 외딴 도로를 통과하고 이어 골프 코스 잔디밭을 지나면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나오는 식이다. 변화무쌍한 길을 걷느라 지루할 틈이 없지만, 발의 피로는 제법 일찍 찾아오는 듯하다.


오후 6시 무렵, 마침내 덴마크 클래식 첫째 날의 야영장인 홀스텐후스(Holstenhuus)에 도착한다. 과거 영주가 살던 웅장한 저택 너머로 초원이 곡선을 그리고 있다. 푹신한 건초 더미 사이를 맨발로 거닐며 첫날의 피로를 풀어본다. 이어 텐트를 치고, 주린 배를 채우고, 하루 동안 풀숲을 헤치며 해결하던 볼일도 좀 더 안락한 간이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말이 뛰놀던 목초지였던 탓에 쿰쿰한 가축 냄새가 텐트 안으로 스멀스멀 밀려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딘가에 몸을 누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반가울 뿐. 어느덧 텐트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초원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Tip 복장


덴마크의 여름 기온은 10~20도 사이로 꽤 선선한 편이다. 비가 내릴 때는 한밤중에 기온이 더 내려간다. 방풍·투습 기능이 있는 재킷을 준비하고, 기능성 셔츠를 겹쳐 착용하면 날씨 변화에 대응하기 편하다. 바지는 무릎 부분이 분리되는 제품이 유용하고, 트레킹화는 고어텍스 소재의 미드컷이 적합하다.




글. 고현    사진. 오작





덴마크 클래식 백패킹 Part. 2 스벤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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