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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08. 2015

대자연의 케언스

The Great Outdoors in Cairns

땅과 바다, 하늘에서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휴양지 케언스. 이곳에선 광활한 대자연에 과감히 몸을 던질 때, 신이 만들어놓은 그림의 한 획이 된다.


 유미정 ・ 사진 김주원 ・ 취재 협조 호주 퀸즐랜드관광청, 싱가포르항공

쿠란다로 올라가는 기차는 10분 동안 배런폭포(Barron Falls)에서 정차한다. 기차역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가장 멋지다. © 김주원

한국에서 케언스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꼬박 하루를 비행기나 경유하는 공항에서 보낼 각오쯤은 해두는 게 좋다. 그래서 보통은 시드니나 퀸즐랜드 주도인 브리즈번을 여행한 후, 케언스에 하루 이틀 정도 잠깐 머무는 일정을 잡는다. 과감하게 케언스를 처음 목적지로 정하기에 호주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나라니까. 그러나 퀸즐랜드가 호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여행지고, 케언스가 천혜의 자연이 숨은 낙원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좁다란 항구도시는 고맙게도 여행객을 위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다. 속이 뻥 뚫리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열대우림의 웅장함을 느낀 후,해변에 누워 망중한을 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에 발을 내딛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몸을 던지는 용기만 챙겨 오면 된다.


이 도시에 머물다 보면, 대자연의 유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자연과 맞닿는 짜릿함은 고급 리조트에서 먹고 마시는 휴가와 전혀 다른 부류니까. 특히 케언스에서 인간의 모험 정신을 끄집어내는 무언의 힘을 느꼈다면, 분명 다음 여행에서 주저 없이 이곳을 처음 목적지로 삼게 될 것이다. 케언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마도 내 머리 위로는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을지도. “꿈과 희망이 가득한 어드벤처 월드에 입장하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수륙양육차는 지금 관광객을 태우고 숲을 누빈다. © 김주원

신성한 열대우림 속으로


“케언스가 처음이라면,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날씨가…” “지금은 우기도 아닌데, 이번 주에 계속 비가 오고 있네요” “한국의 겨울은 절대 비가 안 내리나요? 농담입니다! 이 정도 비는 케언스 여행에 결코 방해가 되지 않아요”. 케언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처럼 매번 비로 시작했다. 공항에서부터 따라온 비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릴 마중나왔으므로. 그러나 이날만큼은 우산 아래에서 조금 기이한 생각을 하는 중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모락모락 피어나는 습기, 눈에 보일 정도로 진한 안개가 숲을 메우고 어디선가 조용히 파란 몸의 아바타가 튀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숲. 우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퀸즐랜드 열대습윤지역(Wet Tropics of Queensland)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퀸즐랜드는 두 가지 자연의 보물을 지니고 있다. 다이버의 성지로 통하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Great Barrier Reef)와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열대우림. 덕분에 열대 활기에 매혹된 세계 각지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이곳 열대우림의 면적은 약 9,000제곱킬로미터. 서울시 면적의 약 14배에 달하는 크기의 숲이 도시를 덮고 산소를 내뿜는다.


케언스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쿠란다(Kuranda)로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낭만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쿠란다 시닉 레일(Kuranda Scenic Railway)을, 지름길을 원한다면 열대우림 위를 지나는 곤돌라 스카이레일(Skyrail)을 이용해보길. 쿠란다 열차의 역사는 원시 자연에 인간의 발이 닿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19세기 유럽인이 원시림을 발견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열차는 금광을 캐러 오가는 사람의 발이었고, 군수물자를 나르는 핵심 운송 수단이었다. 나는 지금 열차 창문에 코를 박고 열대우림의 생경함을 마주하고 있지만, 100년 전 어느 노동자는 이 열차를 위해 수십 개의 교량을 쌓고, 15개의 터널을 뚫다가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카메라를 들이밀고 감탄하는 관광객과 손에 가득 금을 쥔 개척자, 목숨 걸고 절벽에 올라 다리를 이어나간 건설 노동자. 쿠란다 열차는 이렇게 수많은 인생의 조각을 안고 지금까지 달리고 있다.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카페와 레스토랑,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가 모인 쿠란다 마을이 보인다. 캥거루 가죽, 악어 벨트, 사파리 모자, 표정이 다른 코알라와 캥거루 인형. 이곳의 기념품은 이런 것이다. 일반적인 호기심을 뛰어넘는 사람은 호주 원주민의 전통 악기인 디제리두(Didgeridoo, 나무로 만든 긴 피리)에 시선을 뺏길 것이다. 그렇다고 쿠란다 로컬 마켓을 여느 관광 명소 앞에 모인 싸구려 기념품 가게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쿠란다 인근 지역은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Aborigines) 문화를 기반으로 한 예술 산업도 꽤 유명하니까. 다시 말해 자판에 놓인 수공예 액세서리나 갤러리 그림이 모두 쿠란다에 모인 작가와 화가, 공예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곳을 속세에 물든 원시 예술 시장쯤으로 생각하자.

쿠란다 마을의 카페는 주변 커피 농장에서 가져온 양질의 커피 콩을 사용한다. 달콤한 꿀을 넣은 허니문 라테는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다. © 김주원

벤 우드워드(Ben Woodward)를 만난 것은 쿠란다 국립공원의 레인포레스테이션 자연공원(Rainforestation Nature Park)에서다. “1973년 아버지가 처음 이 땅을 사셨을 때, 이곳은 오렌지나무가 가득한 농장이었어요. 아버지는 일찍이 이곳에서 관광사업의 미래를 계획했지요. 원시림과 원주민 문화, 야생 동식물을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케언스 시내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대형 버스를 직접 운영하고, 이곳의 터를 잡은 원주민 파마기리(Pamagirri) 족과 교류를 맺어 부메랑, 창던지기 체험과 전통 공연을 보여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국립공원 안에 사유지를 소유한 그의 부에 놀랐지만, 이내 체계적 가족 경영 수완에 엄지를 치켜 올렸다. 레인포레스테이션 자연공원은 쿠란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여행 프로그램을 책임진다. 코알라, 캥거루, 왈라비, 뱀, 악어, 딩고, 각종 새와 물고기 등 보통 이곳에 서식하는 동물 이외의 것은 외부 국립공원에서 데려온다. 규모는 작지만 야생에서 뛰어노는 동물은 피곤한 기색이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 열대우림 속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 것은 덜컹거리는 아미덕(ArmyDuck, 수륙양용차)을 타고 밀림 같은 늪을 헤치고 있을 때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한 장면처럼 제멋대로 자란 식물에 둘러싸여 두리번두리번 분위기를 살핀다. 조용하고 음산한 숲 속의 잡음은 힘찬 아미덕의 엔진과 운전사 네이슨 월터(Nathan Walter)의 마이크 소리뿐. “저 나무 위에 바구니처럼 생긴 곳에는 뱀이 자고 있어요. 개미들이 옆에 보이는 나무 속을 다 긁어 먹으면 비로소 디제리두를 만들 수 있죠. 맹독성이 있는 나무는 해독하는 데 6개월이 걸리니 절대 아무 거나 만지지 마세요.” 열대우림의 신비는 그렇게 체험 학습장의 교재가 된다. 그러니 영화는 마음속으로 찍길. 아찔한 스카이레일을 타고 케언스 시내에 도착하는 내내 비는 그치지 않는다. 습기 가득 찬 창밖으로 열대우림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여전히 신비로운 파란 얼굴을 상상한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까!


+ 더 카프타 그룹(The Capta Group) 쿠란다 시닉 레일, 레인포레스테이션, 스카이레일, 식사 포함 패키지 170호주달러, capta.com.au

스카이레일을 타고 열대우림에 둘러싸인 마을을 내려다본 모습. 총 7.5km를 운행하는 곤돌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이다. ©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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