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 특집.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노홍철이 함께 스위스를 여행했다.
완벽한 여행의 순간과 기억을 위해.
스위스는 저에게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여행지예요. 하지만 모든 것을 안다고 단정할 순 없죠. 여행도 인생처럼 한 번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걸 배우거든요. 취리히에는 제가 그동안 몰랐던 모습이 분명 감춰져 있어요.
취리히는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도시다. 보수적인 은행가 이미지는 대낮부터 취리히호(Zürichsee)를 둘러싸고 수영을 즐기는 현지인을 보면 금세 지워진다.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취리히 웨스트와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건축이 자리한 구시가는 또 다른 얼굴이다. 이렇듯 전통과 현대적 시설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취리히의 어떤 매력을 보느냐는 결국 여행자의 몫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새롭게 보이는 앞으로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취리히의 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는 미술관 중에서 쿤스트하우 취리히(Kunsthaus Zürich)는 다채로운 컬렉션 그리고 드넓은 전시 공간으로 유명하다. 중세 시대부터 현대까지 유럽의 예술을 폭넓게 다루는데, 세계적 명작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댕의 ‘지옥의 문’이나 자코메티의 ‘봉선화’ 그 밖에 모네와 반고흐, 샤갈의 작품도 전시한다. 미술관 투어의 성공 여부는 미로처럼 얽힌 동선을 어떻게 짜느냐에 달렸다. 19~20세기 작품을 보고 싶다면 2층으로 곧장 향하는 것이 좋다. 1층에서는 주로 특별 전시가 이루어지며, 유럽의 고전주의 작품을 전시한다. 입장료 23스위스프랑, 10am~6pm(수 · 목요일 8pm까지), kunsthaus.ch
제1차 세계대전 말, 미국과 유럽의 전위예술가는 허무를 외쳤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고, 반이성과 반예술에서 예술을 찾는 다다이즘(dadaism)은 새로운 예술운동으로 기록된다. 그 시초는 바로 취리히다. 당대 다다이즘을 대표하던 예술가들이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 모여 사전의 1페이지에 등장하는 ‘다다’를 탄생시켰다고 전해진다. 2004년 재탄생한 카바레 볼테르는 괴짜 같은 예술 사조 대신 논쟁적인 예술 전시와 사회 비판적 예술을 조명한다. 1층에는 캐주얼한 카페가, 2층에는 바가 있고, 실험적 전시와 다다이즘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 연극 등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11:30am~5:30pm, cabaretvoltaire.ch
콘디토레이 쇼베르(Conditorei Schober)의 쇼윈도에는 매일 온갖 ‘단것’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채로운 색감의 수제 초콜릿과 페이스트리, 케이크, 사탕을 열 맞춰 진열하고,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선물용 디저트 박스를 그 옆에 켜켜이 쌓는다. 1874년 구시가에 문을 연 쇼베르는 스위스의 명물인 초콜릿과 19세기의 커피 하우스 문화를 전통 그대로 보여준다. 아기자기한 1층 매장과 달리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꾸민 2층 살롱에서는 여전히 클래식을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흐르고, 조용히 차를 마시는 손님이 가득 들어차 있다. 물론 세러피스트가 만든 차와 휘핑크림, 술을 곁들인 진한 초콜릿 향이 진하게 퍼지는 달달함도 그대로다. 케이크 6스위스프랑부터, 8am~7pm(목~토요일 10pm까지), 일요일 9am~7pm, peclard-zurich.ch
길다란 소시지와 헐벗은 고깃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아우구스트(August)는 부셰리와 브루어리, 비스트로를 합쳐놓은 레스토랑이다. 실제 이곳은 1336년 취리히 길드 연합이 조성될 당시, 푸줏간 주인의 오래된 집이었다. 700년 넘는 건물에 호텔이 들어서면서 레스토랑 아우구스트가 길드의 역사를 잇게 된 것이다. 주로 세계 각지의 고기와 소시지를 식자재로 활용해 창의적 요리를 선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실패할 확률이 적고, 이곳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맥주도 꼭 맛봐야 한다. 현대식 오픈 주방과 옛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연장이 오브제로 뒤섞인 공간도 꽤 감각적이다. 메인 메뉴 16스위스프랑부터, 6am~10:15pm(브랙퍼스트는 평일 10:30am까지, 주말 11am까지만 운영한다), au-gust.ch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인 취리히 구시가는 9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지은 교회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선 교회만 천천히 돌러봐도 구시가 투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6세기 종교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가 머물던 그로스뮌스터(Grossmünster)와 프라우뮌스터(Fraumünster)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샤갈이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아우구스토 자코메티의 장미 무늬 창문을 볼 수 있는 프라우뮌스터는 꼭 들러 내부를 구경하자. 유럽에서 가장 큰 문자판(직경 8.7m)으로 유명한 장크트페터슈키르헤(St. Peterskirche)는 구시가 어디에서든 눈에 띈다. 도시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을 땐 고대 로마 시대의 세관이던 린덴호프(Lindenhof)에 올라가보자. 그후 니더도르프(Niederdorf)로 내려와 구시가의 개성 넘치는 상점도 구경할 수 있다. Grossmünsterplatz, 8001 Zürich.
마터호른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래된 전통 가옥이 자리한 골목을 돌아다니며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셔보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죠. 특히 아프레스키를 꼭 경험해보길 바라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신나게 어울리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19세기부터 유럽 상류층의 휴양지로 갈채를 받던 체어마트. 신이 절묘하게 깎은 듯한 마터호른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며 즐거움 을 만끽해왔다. 등산과 하이킹, 스키 등의 다채로운 액티비티와 식지 않는 나이트라이프, 럭셔리 리조트와 명품 부티크까지. 체어마트는 여행자의 부푼 기대를 100퍼센트 채워주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스키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흥은 하루의 라이딩이 끝나고 나서 시작한다. 슬로프 끝자락에 자리한 샬레의 테라스에서 즐기는 아프레스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1잔의 술 그리고 끝내주는 경치가 어우러지는 시간을 마다하는 이는 없을 터. 요즘 체어마트 아프레스키의 강자로 떠오른 세르보(Cervo)는 이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마터호른이 보이는 전망은 기본, 부티크 리조트의 한쪽에 자리 잡은 야외 테라스와 바에는 언제나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세계 곳곳에서 온 스키어와 스노보더는 쉴 새 없이 떠들며 몸을 움직인다. 물론 혼잡함을 피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샬레 스타일의 라운지에서 조용히 쉴 수도 있다. 본격적인 아프레스키를 즐기려면 우선 보드카에 진저 에일과 라임 주스를 섞은 세르보 뮐(mule)을 선택해보자. 따듯한 칵테일이 몸을 제대로 녹여줄 것이다. 맥주 6스위스프랑부터, 세르보 뮐 10스위스프랑, www.cervo.ch
1857년, 몽세르뱅(Mont Cervin)의 시동을 건 알렉산더 자일러(Alexander Seiler)는 이 호텔의 성공을 확신한 듯하다. 몇 년 후 마터호른이 초등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자 체어마트가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때부터 너도나도 마터호른에 오르기 위해, 또는 구경이라도 할 요량으로 체어마트에 몰려들었다. 특히 당시 등반은 귀족의 스포츠였기에 자이어가 운영하던 호텔인 몽세르뱅과 몬테로사(Monte Rosa)는 이내 그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는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마터호른 명성만큼 호텔도 빛을 잃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몽세르뱅은 최상급 서비스와 최고의 전망으로 투숙객을 맞이한다. 각기 다른 콘셉트로 꾸민 객실은 아늑하고, 마터호른을 조망하는 테라스를 갖춘 객실을 선택하면 환상적인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사우나와 스파 시설을 마련해놓아 레저 여행객을 배려한 것도 장점. 레스토랑과 라운지도 격조 높게 꾸몄는데, 겨울에만 운영하는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카프리(Capri)는 알프스산맥 한복판에서 정통 이탤리언 요리를 낸다. 이런 저런 서비스를 놓친다 해도 조식 뷔페에서는 꼭 카푸치노를 주문해보자. 행복에 젖을 만큼 감미롭다. 445스위스프랑부터, montcervinpalace.ch
해발 3,089미터의 플랫폼에 내릴 때부터 시선은 마터호른의 위용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기까지 철도가 연결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몇 미터 더 위에는 1907년에 문을 연 호텔마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고르너그라트 철도(Gornergrat Bhan)가 1898년에 개통했으니, 호텔을 지을 만한 여건은 1세기 전에 이미 충분했다. 거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 3,135미터의 고르너그라트 정상에 서면, 마터 호른과 서유럽 최고봉 몬테로사(Monte Rosa), 피라미드를 닮은 바이스호른(Weisshorn) 등 페닌 알프의 4,000미터급 봉우리가 사방을 둘러싸며 뻗어나간다. 그리고 발아래로는 두터운 운무가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고르너그라트 빙하(Gornergrat Glacier)가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한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풍경을 실컷 감상한 후에는 클룸 호텔(Kulm Hotel) 레스토랑의 창밖으로 마터호른을 엿보며 잠시 숨을 돌 리자. 그러고 나서 어떻게 내려갈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보자. 굉장한 풍경과 함께 스키와 썰매 하이킹이 대 기하고 있으니까. 고르너그라트 철도는 체어마트역 바로 전 역에서 출발한다. 고르너그라트역까지 약 33분 소요. 편도 42스위스프랑, 스위스 트래블 패스 소지 시 50퍼센트 할인, gornergratbahn.ch
에어 체어마트 소속 헬리콥터의 비행은 마치 세련된 디자인의 빨간 점 하나가 파랗고 하얀 캔버스 위를 재빨리 가르는 것처럼 보인다. 산악 인명 구조로 정평이 난 회사 에어 체어마트는 1968년부터 알프스의 하늘을 무대로 활약했다. 험준한 알프스에서 갈고닦은 베테랑답게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 실력을 발휘하는데, 활발한 구조 활동뿐 아니라 중장거리 교통 서비스도 제공한다. 모험심 가득한 여행자와 함께하는 헬리스킹과 헬리콥터 투어도 인기. 손에 닿을 듯 바투 다가온 마터호른을 감상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경험을 원한다면 주저없이 헬리콥터에 몸을 실어보자. 마터호른 20분 헬리콥터 투어 프로그램 220스위스프랑부터, www.air-zermatt.ch
글. 허태우 사진. 이규열,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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