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저 끝까지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무수한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남해로 향한다. 세상의 끝 같은 그곳에서 쑥떡을 만들고, 도자를 빚고,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인간의 몸이 아날로그라는 사실을 체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남해행 버스를 타는 것이다. 아침 8시 서울 남부터미널 출발, 낮 12시 40분 남해시외버스터미널 도착. 지방에 ‘내려간다’라는 표현은 분명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대전버스터미널에서 운전기사는 오전 10시까지 쉬는 시간을 선언한다.
버스로 돌아온 옆자리 할아버지가 앙금빵 봉지를 내 쪽으로 내민다. 뻑뻑한 앙금빵을 해치우자 또 하나를 권하고, 사양하기 싸움에서 진 대가로 2개째 먹는다. 하동에서 마지막으로 정차한 버스는 곧 위풍당당한 붉은빛 남해대교를 건넌다. 1973년 이 다리를 놓은 이래로 남해가 섬이라는 사실은 종종 간과됐다. 그래도 섬은 섬. 반짝이는 파란 바다를 몇 초 만에 건너자 거기서부터는 딴 세상이다. 오밀조밀한 구릉 사이로 연둣빛 논밭과 마을이 구르듯 펼쳐진다. 모든 것이 희부연 봄 공기에 휩싸여 있다. 어쩌면 미세먼지가 이곳에서까지 기승을 부리는 탓인지도.
1997년 완공한 남해시외버스터미널은 거대한 아케이드 건물에 자리한다. 분식점과 밥집, 옷 가게와 당구장까지 야단스럽게 모인 곳이다. 단잠을 살짝 아쉬워하며 짐을 챙긴 뒤, 오늘의 첫 끼를 먹기 위해 슬슬 걸어 시장 앞 수제빗집에 간다. 이름하여 청해식당. 메뉴는 칼국수와 수제비, 잔치국수, 비빔국수 단 네 가지다. 어쩐 영문인지 5개뿐인 테이블은 죄다 여성 손님 차지다. 오픈 주방에서 주인아주머니는 얇은 밀가루 반죽을 슬슬 떼내어 팔팔 끓는 냄비에 던져 넣는다. 밑반찬은 손수 담근 김치와 나박김치가 전부. 큼직한 양푼에 바지락수제비가 그득 들었다. 외할머니가 손주에게 해줄 법한 상차림이다. 맑은 멸치 국물에 담긴, 갓 태어난 강아지 귀처럼 부들부들한 수제비를 양껏 먹는다.
남해 각지를 여행하려면 자동차가 필수다. 미리 전화해둔 터미널 앞 렌터카업체에서는 검은 야구 모자를 눌러쓴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시골길을 운전할 때는 도로변을 걸어 다니는 어르신을 주의할 것, 금산 보리암에 올라가려면 제1주차장에 주차해 제2주차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탈 것 등. 시시콜콜한 주의 사항을 들은 뒤, 후식을 먹기 위해 중현떡집으로 차를 몬다. 거창, 함양, 하동을 거쳐 내달려온 소백산맥은 잠깐 바닷속에 잠겼다 다시 남해에서 빼꼼 등장한다. 그래서 남해는 어디를 가도 낮은 산이 쉴 틈 없이 솟은 지형이다. 여러 톤의 초록색 크레파스로 삐죽삐죽 칠한 듯한 산 발치를 굽이굽이 따라가는 길. 바야흐로 쑥의 연한 싹이 올라오고 벚꽃 피는 계절이라 신록 사이로 드문드문 연분홍빛이 섞여 있다. 그러니 수시로 차를 세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올해로 40년 된 중현떡집은 이름대로 남해도의 북서쪽 끝자락 중현리에 위치한다. 윤기가 차르르 감도는, 둥글둥글하고 탐스러운 남해 쑥떡으로는 일인자로 꼽는 곳이다. 벚나무가 지키는 빛 바랜 우체국 옆, 아담한 밭이 내려다보이는 떡집에 들어선다. 사실 매장이 아니라 작업장인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외지인은 별로 없다. 떡집을 2대째 물려받은 정지훈 씨는 부모님과 둘러앉아 늦은 점심 식사를 막 마친 참이다. 어머니 유봉점 씨는 손에 피크닉 음료수를 1팩씩 쥐여주고, 정지훈 씨는 우리를 위해 따로 남겨둔 쑥떡 반죽을 1덩어리씩 떼내어 비닐 랩에 싼다. 우아하리만치 짙은 초록빛이 감도는 반죽이 어찌나 차진지 잡아당기는 대로 쭉쭉 늘어난다.
“윗마을에 사는 외할아버지가 매일같이 들렀는데, 어머니가 외할아버지 드리려고 떡을 이렇게 덩어리째 뭉쳐놓곤 했어요.” 아홉 살 때부터 방앗간에서 일손을 거들었다는 정지훈 씨가 전국에 배송 판매하는 쑥떡의 유래를 설명한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접고 4년 전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돌아온 그가 온라인으로 떡집을 홍보하자 명성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쑥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우렁이 농법으로 직접 농사 지은 무농약 찹쌀과 쑥, 약간의 설탕이 전부예요. 사실 만드는 과정보다도 재료를 준비하는 데 더 오래 걸리죠. 이를테면 LED 조명을 켜놓고 쑥의 이물질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제거해야 하거든요.” 남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야생 쑥은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향이 가장 좋다. 이제 2주 후면 새 쑥이 다 올라올 테다. 정지훈 씨는 쑥 캐는 지역 할머니들로부터 쑥을 공급받는데 할머니 수가 점차 줄고 있어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직접 볶아 만든 국산 콩고물을 버무린 쑥떡을 맛본다. 은은한 쑥 향과 찹쌀 내음, 달지 않고 고소한 콩고물이 잘 어우러진다. 자연 그대로의 식자재에 구태여 무엇을 더하려 하지 않은 것이 미덕이다. “식혜를 곁들여도 좋고, 조청에 찍어먹어도 맛있어요. 저는 백태콩보다 강낭콩 고물을 더 좋아해요.” 정지훈 씨가 덤덤히 말한다.
“그러나 열흘 정도 지나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 키미앤일이, <바게트 호텔 2>(2017)
차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남해’라고 쓰인 표지판을 마주칠 때마다 뜬금없이 설렌다. ‘남쪽 바다’라는 단순하고 낭만적인 뜻의 이 지명은 고유명사 ‘남해’의 그늘을 완전히 벗지 못한다. 지리적으로 남해군은 남해읍이 있는 남해도와 창선도를 비롯해 60여 개 섬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지족리에서 창선대교를 타고 지족해협을 건너 창선도로 향한다. 고즈넉한 섬을 기대했지만 도로변에 횟집이며 카페, 펜션이 줄을 잇는 풍경에 조금 실망한다. 다행히 목적지인 창선도 북단의 단항마을은 뜨내기를 상대하는 가게 대신, 기대하던 섬마을 풍경을 보여준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사천의 삼천포항에 닿는 이 마을에 온 이유는 천연기념물 제299호에 지정된 왕후박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벚나무가 늘어선 마을 해안가에서는 작은 섬 소초도와 대초도 그리고 사천 땅의 실루엣까지, 무수한 푸른빛으로 풍경이 그림처럼 완성된다. 선거 캠프 조끼를 입은 남자가 휑한 해안 도로에서 유세 활동을 하고, 바지락을 캔 아낙네는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집으로 향한다. 사내아이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다가 해변에 내려가 왁자지껄 조개를 줍다가, 이방인의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인다. 유독 활달해 보이는 아이에게 중현떡집에서 싸준 쑥떡 1팩을 건넨다. 입맛에 맞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얘들아, 쑥떡이다!” 하고 신나게 외친다.
해가 지기 전에 왕후박나무를 보러 간다. 마을의 수호목이라는 나무는 반짝이는 사천만을 굽어보며 논밭 한가운데를 떡 지키고 서 있는데, 멀리서 보면 꼭 거대한 브로콜리 같다. 전설에 따르면 500년 전 이 마을에 살던 노부부가 어느 날 큰 물고기를 낚았다. 희한하게 배속에서 씨앗이 나와서 그것을 집 앞에 뿌렸더니 이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스릴도 교훈도 딱히 없는 얘기지만,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매년 나무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왜구를 무찌른 뒤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전해내려온다. 이곳의 들과 바다가 그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주었을까? 나무가 높으면 그늘도 큰 법이다. 쓰러질 듯 드리운 가지는 무수한 보호대로 받쳐놓았고, 넓은 그늘에는 정자를 세웠다.
사위가 컴컴해진 후, 비파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북스테이 겸 카페인 산책에 도착한다. 외진 길가에는 가로등 하나 없다. 별이 드문드문 떠 있는 하늘을 보니 구름이나 해무가 낀 모양이다. 산책은 남해도 남쪽 평산리의 바닷가 언덕 위, 정원 딸린 작은 집에 자리 잡고 있다. 흰 잡종견 장군이가 꼬리를 흔들고 맹렬히 짖으며 길손을 반긴다.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조숙·문동원 부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부엌과 식당, 라운지를 겸하는 북 카페에는 1인 출판사 남해산책의 대표이자 작가인 김조숙 씨와 목공예가 문동원 씨의 모든 것이 배어 있다. 손수 만든 나무 도마와 목조 탁자, 직접 그린 그림, 비파 청. 남편이 만든 목조 책장에는 아내가 지난겨울 출간한 첫 소설이 꽂혀 있다. 밤이 아직은 제법 쌀쌀해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 들어간다. 향초를 켠 듯 알싸한 향이 스친다. 부부는 비파나무 가지를 끓인 차를 내오고, 우리는 남은 쑥떡 1팩을 내놓는다. “이곳을 사들였을 때 정원에 비파나무 200그루가 있었어요. 누군가 우리한테 전생에 엄청난 복을 지은 거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비파나무는 1그루만 있어도 그 집에 환자가 없다는 귀한 나무래요.” 김조숙 씨가 어제 저녁 투숙객이 남기고 간 치킨에 소주를 기울이며 말한다. 연중 따뜻한 남해안에서 바닷바람을 맞고서 자라는 비파나무는 건강에 이런저런 효능이 있다고. 괜스레 건강해지는 기분에 달큼한 향이 감도는 차를 꿀떡꿀떡 받아 마신다.
해가 뜨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가파른 언덕 아래로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종려나무 아래 묶인 윤슬이라 불리는 한 살배기 검은 염소가 닥치는 대로 풀을 뜯다가 힘차게 뜀박질을 하고, 고양이 민들레가 그 옆을 기웃거린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는 집 안에서 그간 잊고 있던 아침의 미덕을 누린다. 아직은 늑장 부릴 시간이 있다는 안도감과 우아하기까지 한 방만함. 김조숙 씨가 나무 도마 위에 놓인 샌드위치와 드립 커피, 비파차를 내온다. 장군이가 식빵 귀퉁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구슬 같은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본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인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생을 산책하듯 살겠다는 뜻이기도 해요.” 김조숙 씨가 말한다. 부부는 거기에 딱 맞는 낙원을 찾았다. 인생에서 소수의 사람만 누리는 행운 아닐까. “남해는 어쩐지 사람을 감싸주는 따뜻한 기운을 갖고 있어요. 위로를 주고, 때로 친구 같기도 하죠.” 오늘 하루도 바쁘게 흘러갈 것이다. 투숙객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청소를 한 다음에는 틈틈이 목공 작업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또 틈틈이 풀을 매야 하므로. 부부와 헤어져 다시 차를 타고 다랭이마을을 지나 해안 도로를 달린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너머로 노도의 푸르스름한 윤곽이 보인다. 300여 년 전 저곳으로 추방된 서포 김만중에게는 이 가없는 바다가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으리라.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올해 벚꽃 구경은 남해에서 다 했다. 임학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사진가다.
글. 이기선 사진.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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