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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05. 2018

라이징 포토그래퍼의 첫 번째 스위스 기차 여행


Swiss Rail 

Journey


라이징 포토그래퍼의 

첫 번째 스위스 기차 여행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신인 여행 사진가 프로젝트. 라이징 포토그래퍼가 올해로 2회째를 맞이했다. 3인의 파이널리스트가 이번에 다녀온 여행지는 바로 스위스. 5박 7일의 여정을 마친 파이널리스트는 첫 번째 스위스 기차 여행을 사각의 프레임 안에 어떻게 풀어놓았을까? 웅장하고 다채로운 풍경과 삶의 여유를 담은 사진을 통해 스위스 여행의 순간을 확인해보자.





Bernina Express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스위스에서 기대한 것과 기대하지 않은 것



Day 1 

사실 루가노는 기대하지 않았다

루가노 차니 공원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현지인. ⓒ 박신우


베르니나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티라노까지 가야 한다. 루가노(Lugano)-티라노(Tirano) 구간의 여름 한철 버스 투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곳. 그러나 차니 공원(Parco Ciani) 때문에 이번 여행의 첫 그림이 바뀌었다. 공원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크고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해먹에 앉거나 누운 할머니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구석에서 낄낄거리는 젊은이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이탤리언계였다. 루가노는 이탈리아 북부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웬 일? 백조와 오리가 노니는 공원 호수에서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수영복 가져올걸…. 다들 예쁘고 잘생겼네.” 하고 한국에서 온 오징어는 아쉬워했다. 루가노 호수는 굉장히 깨끗하고 차니 공원은 아름답다. 그것이 좋아 온종일 공원에서 지냈다. 잠시 호텔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는 낮보다 한산해진 차니 공원으로 다시 왔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






Day 2 

루가노에서 이탈리아 티라노까지, 다시 악마의 산까지

이탈리아 문화권에 속하는 루가노의 따스한 풍경. 오스피치오 베르니나(Ospizio Bernina)를 넘어 내려오는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 박신우


루가노역에서 티라노역까지 운행하는 베르니나 투어 버스를 탔다. 티라노로 가는 길에 이탈리아 북부의 그 유명한 코모 호수(Lake Como)가 나온다. 무솔리니가 이곳에서 숨어 지내다 루가노로 넘어갔다고 하는. 출발한 지 약 2시간 30분 후 작은 티라노역에 도착했다. 티라노에서 드디어 베르니나 익스프레스가 출발했다. 기차는 매우 힘차게 해발 2,091미터의 알프 그 륌역(Bahnhof Alp Grüm)까지 올라간다. 한라산 정상보다 높게 기차가 올라간다고 상상하니 진짜 높다! 알프그륌까지 가는 길에 360도로 회전하는 브루시오(Brusio) 철교가 나오는데 애써 찍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은 기차가 지나갈 때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별것 아닌데 진짜 좋았다. 유명한 고전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밖에서 기차를 볼 게 아니라 기차 안에서 밖을 봐야 합니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을 품은 알프 그륌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한창 공사 중…. 공사장 풍경을 지나자 이탈리아어로 ‘악마 같은 여자’라는 뜻의 디아볼레차(Diavolezza)라는 기묘한 산이 나왔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이 산에 아름다운 요정이 살았는데, 사람들을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영원히 사라졌다고 한다.


거칠고 웅장한 매력을 선사하는 디아볼레차 산군. ⓒ 박신우


디아볼레차 정상 인근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 기묘하고 기괴한 매력을 지닌 산이다. 이곳을 깊이 느끼고 싶어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을 찾았다. 큰 바위 밑 그늘에 앉으려고 보니 에델바이스가 있어 그 옆에 조심스레 앉아 산봉우리를 면밀히 관찰했다. 피츠 팔뤼(Piz Palü), 벨라비스타(Bellavista), 크레스트 아구자(Crest’ Aguzza), 피츠 베르니나(Piz Bernina)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초 망원렌즈로 비슷비슷한 사진을 수백 장 찍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다르지만.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빨리 사라졌고 멈춰 있던 것은 여전히 사진에 남아 있다.






Day 3

실스 마리아, 호수의 선장이 태워준 보트와 최고급 저녁 식사

휴양지로 유명한 실스 마리아에서는 마차를 자주 볼 수 있다. ⓒ 박신우


지쳤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니 그럴 수밖에. 쉬고 싶었다. 실스 마리아(Sils Maria)의 호텔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가족 단위로 온 서양인만 100여 명 남짓한 식당에 혼자 앉아 커피와 스크램블드에그, 치즈, 크루아상을 먹고 있으니 꼬마들이 신기한 듯 조심스럽게 접근해선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물 밖에서 걷는 오징어를 처음 보겠지. 실스 마리아는 가족적이고 점잖은 분위기로, 프리드리히 니체, 요제프 보이스, 데이비드 보위 등 여러 저명인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환상적 풍경과 마법 같은 빛에 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014년에 개봉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처럼 이곳을 배경으로 만든 훌륭한 영화도 있다. 이른 아침 실스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호텔 앞에는 말 4마리가 끄는 마차가 서 있었고, 카페는 천천히 문을 열려고 준비 중이었다.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인적 드문 숲에 들어서니 흙, 나무, 아침 이슬의 냄새가 좋았다. 촉촉한 습도에 요란하지 않게 스며든. 그러다 문득 어떤 나무를 만났을 때 감동이 있었다. 확실한 행복, 좋아하는 나무를 보는 것.


실스 호수의 터줏대감인 프랑코 선장. ⓒ 박신우

“40년 넘게 이 일을 해왔는데 매일매일이 달라. 물 위에 비치는 빛처럼 말이야.” 3대째 어부이자 40년 동안 실스 호수에서 배를 운행하며 사람을 태워온 프랑코(Franco) 선장이 말했다. 프랑코 아저씨의 집은 실스 호수 한쪽에 자리한다. 집 창고에 자신의 개인사와 맞물린 마을의 역사를 박물관처럼 꾸몄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나는 낡은 물건에 스며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실스 마리아는 내가 가본 곳 중 최고의 휴양지였다. 그래서 온종일 이 행복한 시간을 꼼꼼히 누렸다. 저녁으로는 농어 요리와 함께 보리와 치즈를 넣고 끓인 수프를 먹었다. 스위스 여행의 최고급 식사를 하고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을 찍으러 다시 호수로 나갔다.


실바플라나(Silvaplana)의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호수. ⓒ 박신우






Day 4

장크트모리츠와 그라우뷘덴의 수호자 피츠 나이르

디아볼레차 정상 봉우리와 그곳을 향해 오르는 산악인. ⓒ 박신우

장크트모리츠(생모리츠)는 스위스 남동부의 휴양지로 인구 10만 명의 중소도시다. 도시는 이름에서처럼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명품 숍이 즐비하다. 1864년 겨울 산악 관광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며, 동계 올림픽을 두 차례나 치르기도 했다. 생모리츠가 처음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이곳의 미네랄 온천 덕분이다. 온천은 무려 3,000여 년 전에 발견되어 도시는 여름 철 스파 리조트로 일찍이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온천을 몰랐다. 알았으면 했을 텐데…. 아침 온도가 4도까지 떨어졌다. 7월 19일에 말이다. 한낮엔 35도까지 올라갔다. 호텔 앞 등산복 가게에 들어가 50퍼센트 세일하는 후드를 하나 샀다. 생모리츠에서 출발하는 2개의 열차는 찬타렐라(Chantarella)를 거쳐 코르빌리아(Corviglia)로 향했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로 수브레타(Suvretta) 지역의 그 유명한 전망 포인트까지 오를 수 있다. 올해 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망원경을 드디어 꺼냈다. 전망대에서 따뜻한 커피 1잔을 주문했고, 망원경을 이용해 진짜 보고 싶었던 피츠 로제크(Piz Roseg)와 피츠 베르니나(Piz Bernina)를 한참 감상했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숭고란 거대한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피츠 나이르(Piz Nair)에서 본 동알프스 산맥은 단순히 포토제닉한 풍경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듯했다. 답은 모르지만 그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좋다. 이 질문에 답하고자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러나 머리가 너무 아프기 시작한다. 거인이 내 머리를 땅콩으로 착각해 엄지로 머리를 미는 느낌. 마침 오후 5시 마지막 케이블카 시간이 다 되어간다. 자전거를 싣고 온 두 남자가 막차에서 내렸다. 5분을 남기고 사진을 찍지 않고 멀뚱히 산을 바라보았다. 기대하던 붉은 노을을 못 봐도 괜찮다. 붉은 코피를 두 번이나 봤으니.


해발 2,091m에 자리한 알프 그륌역에 도착한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 박신우

사실 여행하기 전에는 스위스가 내 취향에 맞는지 의문이었다. 선입견을 갖고 출발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몹시 부끄러웠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다 가본 것처럼 굴었던 건 도대체 무슨 오기였을까?’ 왜 베르니나 익스프레스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에 뽑혔는지 이제 알겠다. ‘스위스’ ‘스위스’ 하는데 이유가 있더라. 루가노와 실스 마리아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와보고 싶고, 피츠 나이르와 디아볼레차에서는 나 혼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취리히공항으로 가는 기차에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형, 형 인스타그램 보니까 형이랑 스위스는 안 어울려. 스코틀랜드로 빨리 넘어와!”






제2회 라이징 포토그래퍼 파이널리스트

박신우는 필름 카메라를 통해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꾸준히 개인 작업을 펼치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싶어 한다.








글/사진. 박신우




다음 이야기

포어알펜 익스프레스, 윤정빈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장승호

라이징 포토그래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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