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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25. 2018

발칸반도, 두 나라 이야기



Two Tales of Kosovo & Albania

발칸반도, 두 나라 이야기

지도에서 단번에 찾기 어려운 코소보와 알바니아. 발칸반도 중부의 두 나라는 언어가 같고 문화가 비슷해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그곳으로 날아가 프리슈티나부터 베라트까지 낯선 도시를 마주한다. 뜻밖의 풍경이 팝업 카드처럼 펼쳐지고, 사람들은 이방인을 친구처럼 반긴다.




  ?


물음표의 나라, 코소보

“코소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침부터 드시죠.” 스위스 다이아몬드 호텔 프리슈티나(Swiss Diamond Hotel Prishtina) 매니저가 미소 띤 얼굴로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한 번의 환승, 뇌우로 인한 1시간 지연 후, 코소보 프리슈티나 아뎀 야샤리(Adem Jashari) 국제공항에 착륙했을 때 이미 세 번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였다. 결국 차린 것은 없다지만, 먹을 것은 많은 네 번째 아침을 뜬다. 이쯤은 손님 환대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프리슈티나, 거기가 어디예요?

코소보 독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뉴본 조형물. © 우지경

 문득 프리슈티나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이 떠오른다. 10명 중 10명이 거기가 어디냐고 반문했다. 남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인 줄 알아? 무슨 일이 생겨도 구해주러 못 가. 살아서 돌아와.” 그 표정이 어찌나 비장한지, 잠시 내가 비밀 요원이 돼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건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대부분이 코소보 하면 떠올리는 코소보 내전은 1998년에 일어났다. 축약해서 말하면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과 세르비아 정부군이 대립한 유혈 충돌이다. 1999년 나토(NATO) 병력이 개입해 세르비아의 항복을 받아내며 사태는 종결됐고, 2008년 2월 코소보는 독립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코소보가 안전한지 물어요.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는데 말이죠. 게다가 코소보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기꺼이 밥과 잠자리를 내준답니다.” 가이드 베킴(Bekim)이 웃으며 말한다. 그러곤 거대한 알파벳으로 만든 뉴본(New Born) 조형물을 가리킨다. “‘NEW BORN’의 ‘B’와 ‘R’을 10으로 교체한 게 보이나요? 코소보 독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코소보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죠. 실제로 인구의 70퍼센트 넘는 국민이 35세 이하예요.” 이를 방증하듯 뉴와 본 두 단어 사이로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프리슈티나 인구의 90%가 무슬림이지만 시내 한가운데 성당이 있는 것처럼 다른 종교를 포용한다. © 우지경

베킴을 따라 중심가로 향한다. 하늘은 푸르고 행인은 젊다. 노천카페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가득하다. 위험과  거리가 먼 풍경이다. 카페가 즐비한 거리를 벗어나자 쇠락한 세르비아 정교회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옆에는 쇠사슬에 포박된 채 자유를 달라 외치는 듯한 현대적 건물이 존재감을 뿜어낸다. 크로아티아 건축가 안드리야 무트냐코비치(Andrija Mutnjaković)가 설계한 국립중앙도서관이다.


머더 테레사(Mother Teresa)의 이름을 딴 가톨릭 성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성당 안에는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축복 같은 빛이 스며들고 있다. 무슬림인 베킴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프리슈티나엔 가톨릭이 10퍼센트밖에 없어요. 90퍼센트가 무슬림이죠. 하지만 우린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테레사 수녀를 존경해요.” 마케도니아공화국의 수도 스코페(Skopje) 출신인 테레사 수녀는 어머니가 알바니아계라는 이유로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사랑을 두루 받는다. 코소보에는 머더 테레사 대성당이 있고, 알바니아에는 너너 테레자(Nënë Tereza) 국제공항이 있다. 머더 테라사 대성당 종탑에 오르자, 두 발로 누볐던 프리슈티나의 거리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내려다보인다. 






일단 맥주 한잔 마시고, 페야

“페야(Peja)는 산이 높고 물이 맑아 맥주 생산지로 유명해요. 201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루고바(Rugova) 협곡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몰라요.” 코소보 제3의 도시 페야로 가는 길, 또 다른 가이드 블레리나(Blerina)는 쉴 새 없이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동차는 구불구불 산길을 끝도 없이 오른다. 산 정상에는 ‘바람’이란 뜻의 레스토랑 에라(Era)가 있다. 레스토랑 테라스로 나긋한 바람이 불어온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 페야를 1잔 마셔본다. 쌉싸래한 맛은 부족해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라거 맥주다. 어느새 입안은 청량한 공기 반, 시원한 맥주 반. 고개를 돌려 보니 주위는 온통 초록색 숲이다.


“루고바 협곡으로 갈 시간이에요. 세계에서 7번째로 긴 집라인(zip line)이 우릴 기다리고 있죠.” 블레리나가 일행을 재촉한다. 페야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만 가면 루고바 협곡이다. 강물의 침식과 빙하의 퇴각으로 만들어진 깎아지른 절벽이 29킬로미터나 이어진다. 웅대한 골짜기 사이로는 거센 물결의 비스트리차(Bistrica)강이 굽이쳐 흐른다. 그 풍경이 수려해 ‘코소보의 알프스’라고도 불린다. 직접 보니 타이완의 타이루거 협곡을 복사해서 붙여놓은 듯 흡사하다. 타이루거 협곡과 차이점은 집라인이다. 총길이 700미터로 단 1분 만에 험준한 협곡 사이를 질주할 수 있다. 얇은 줄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일이란 특수 요원이 적진에 잠입하는 것만큼 짜릿한 경험이리라. 단, 낙하 후 강 위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야 ‘미션 컴플리트’를 외칠 수 있다. 



산이 높고 물이 좋은 페야에서 만든 맥주. 페야의 공기처럼 맛이 청량하다. © 우지경

 코소보에는 “집의 주인은 첫째가 신이요, 둘째는 손님, 셋째가 나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던가? 페야에서 약 17킬로미터 떨어진 유니크(Junik)는 이 나라 특유의 환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코소보 내전에도 살아남은 전통 가옥 쿨라(kulla)가 여럿 자리하는데, 그중 350년 된 유메르(Jumer) 할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양모로 만든 둥그런 전통 모자 켈레셰(qeleshe)를 쓴 주인장이 일행을 반긴다. 어스름한 마당 한쪽에선 팔순 노모가 허리를 굽혔다 폈다 반복하며 화덕에 플리(fli)를 굽는다. 반죽을 층층이 쌓아 굽는 플리는 일종의 페이스트리로, 요구르트나 크림을 곁들여 먹는 코소보 전통 음식이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에 먹는 음식을 준비했어요. 서빙은 남자의 몫이죠.” 손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살피며 유메르 할아버지가 손님 대접을 시작한다. 둥근 좌식 식탁 위에 플리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 포가체(pogace), 치즈, 요구르트 등이 착착 놓인다. 코소보 와인과 페야 맥주도. 식사가 시작되자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 3명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메르 할아버지는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박수와 건배 소리가 교차하는 밤, 연주는 멈출 줄 모른다. 자정이 다 돼서야 쿨라를 나서는데, 문간까지 배웅을 나온 할아버지가 “남은 여정에 행운이 가득하길 빕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꼭 다시 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진심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공존과 축제의 도시, 자코바 & 프리즈렌

자코바에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현지인을 흔히 볼 수 있다. © 우지경

 

오늘도 여행자의 발길이 닿지 않은 도시를 찾아 길을 나선다. 가이드 블레리나의 고향 자코바를 지나 코소보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프리즈렌(Prizren)으로 가는 여정이다. 촤르르. 자코바(Gjakova)에 들어서자 자전거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자코바는 지대가 평탄해서 ‘자전거의 도시’로 불린답니다. 카페가 많기로도 유명하죠.” 블레리나가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하둠 모스크(Hadum Mosque)와 시계탑을 제외하면 자코바 거리 풍경의 8할은 카페다. 거리 양쪽에 조르르 늘어선 노천카페가 거리를 이루고 있다. 길의 끝자락 400년 된 숙소를 카페로 개조한 하니(Hani)에서 터키식 커피에 바클라바(baklava)를 맛본다. 쓴 커피 한 모금, 달콤한 시럽을 뿌린 페이스트리 한 입. 자코바를 스쳐 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진한 맛이다.



강 위 석교 앞에 서면 모스크와 세르비아 정교회 등이 한눈에 담기는 프리즈렌.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 우지경

 지코바가 1장의 그림엽서 같은 도시라면, 프리즈렌은 1권의 아름다운 역사책 같은 도시다. 11세기 비잔틴제국이 건설했고, 베네치아공화국이 남긴 석교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쟁에도 훼손되지 않아 그림 같은 풍치가 그대로다. 강 위에 놓인 돌다리 앞에 서면 동로마제국이 세운 요새 칼라야(Kallaja)와 오스만제국 시절 16~17세기에 걸쳐 지은 시난 파샤 모스크(Sinan Pasha Mosque), 세르비아 정교회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대부분이 무슬림인 프리즈렌 시민이 얼마나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종교가 뭐든 프리즈렌 사람들은 카페를 사랑한다. 친구와의 만남도 비즈니스 미팅도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한다. 카페 안에서 수런거리는 말소리도 다양하다. 프리즈렌의 공식 언어만 알바니아어, 터키어,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4개인 까닭이다. 단, 이 도시의 이름을 말할 땐 발음에 주의하자. 영어로 감옥을 뜻하는 프리즌이 아니라 프리즈렌이다.


프리즈렌에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때는 도큐페스트(Dokufest)가 열리는 8월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국제 다큐멘터리 및 단편영화 축제로 요새부터 터키식 목욕탕 함맘을 비롯해 강둑 곳곳이 극장으로 변신한다. 지난해에는 요새에 그랜드피아노를 설치해 달빛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도큐페스트 디렉터 니타(Nita)는 이 영화제를 위해 1년의 반은 프레즈렌에서, 나머지 반은 프리슈티나에서 지낸다.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 그녀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한다. “알다시피 코소보는 고립된 나라예요. 프리즈렌 도큐페스트 영화제는 그런 코소보를 다른 세계와 연결해주는 창이죠.” 그 말을 듣고 수첩에 프리즈렌 도큐페스트를 꾹꾹 눌러 써본다. 코소보를 다시 찾는다면 꼭 영화제에 맞춰 오리라 다짐하며.





우지경은 숨은 여행지를 찾아 100여 개의 도시를 누빈 여행 작가다. <포르투갈 홀리데이> <오스트리아 홀리데이> <배틀트립> 등의 책을 집필했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취재 협조 주 일본 코소보대사관, 알바니아관광청, 터키항공



글/사진. 우지경




Part 2. 느낌표의 나라, 알바니아

발칸반도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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