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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04. 2015

알래스카, 오로라와 전설의 땅

하늘에는 오로라의 빛나는 커튼이 걸려 있고, 땅에는 에스키모의 담대한 전설이 스며 있는 곳. 자연이 말을 건네는 알래스카를 여행한다.


 허태우 ・ 사진 김주원



태양의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파이크스 워터프런트 로지(Pike’s Waterfront Lodge)에 짐을 부리자마자, 일행은 SUV를 타고 숙소를 나섰다. 밤 10시. 차량은 데니스(Denny’s)와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간판이 보름달처럼 빛나는 도로를 달려, 기껏해야 10층 남짓한 건물만 몇 채 서 있는 페어뱅크스(Fairbanks) 다운타운을 지난다. 겨울밤에 묻힌 소도시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간간이 빛을 내던 간판이 모두 사라지자 양옆으로 검은 침엽수림이 펼쳐지고, 왕복 2차선 도로는 끝 모를 장소로 우리를 안내한다. 약 30미터 앞에는 페어뱅크스관광청에서 일하는 셔먼 호그(Sherman Hogue)의 픽업트럭 꽁무니가 보인다. 호그 또한 로비에서 나와 반갑다는 인사를 하자마자 차를 타고 출발했다. 20여 분을 달리자 운전하고 있는 가이드 래리(Larry)가외친다. “저것봐! 오로라가 나타났어! 푸하하, 호그가 속력을 높이는데? 오로라 때문에 안달이구먼!” 그 말을 듣자마자 차창 밖을 내다본다. 저 멀리 북쪽의 밤하늘에 어스레하게 녹색 빛이 서리고 있다. 너무 희미하게 보여서 나는 눈을 비비고 좀 더 집중한다. 분명히 아주 서서히 하늘에 녹색 줄기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마치 길 잃은 은하수가 남몰래 지구에 불시착하려는 듯, 하늘 한구석을 감싼다. ‘저게 오로라라고?’


찬달라 랜치. © 김주원

솔직히 그럴 때, 마음속으로는 약간의 실망이 새나올 수 있겠다.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보던 그 강렬한 빛의 줄기와는 영 딴판이니 말이다. 마치 암실에서 인화에 실패한 희끄무레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일생에 몇 번 보지 못한다는 오로라가 저럴 리 없을 텐데…. 사실 오로라는 언제 어디서 어느 강도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밍밍하던 오로라가 갑자기 미친 듯이 빛나면서 춤을 출 때도 있고, 한창 변죽만 울리다 사그라질 때도 많다. 세계 여러 곳의 연구소가 태양의 자기장과 태양풍의 움직임을 측정해 오로라가 등장할 확률과 강도를 예측한다고 해도 별 소용없다. 구름이 하늘이 덮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페어뱅크스는 북위 65도에서 80도 사이, 오로라가 자주 등장하는 오로라 오벌(Aurora Oval) 지대의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 때문에 이곳은 최고의 겨울 오로라 관찰지로 알려져 있다. 체나 핫 스프링스 로드(Chena Hot Springs Road) 옆에 자리한 찬달라 랜치(Chandalar Ranch). 벌써 몇 명의 여행자가 자리를 잡고 오로라를 기다리고 있다. 주변으로 일정한 높이의 침엽수만 보일 뿐 시야가 탁 트인다.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없다. 모든 존재가 오로라를 위해 뒤로 물러선 듯하다. 그 대신 평생 세도 그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다. 그 가녀린 빛 덕택에 수십 미터 앞 눈밭 위에 삼각대를 설치해놓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하늘을 방해하지 않는다.


페어뱅크스의 후두 브루어리에서 맛보는 맥주 1잔 © 김주원

자정을 넘어서자 오로라의 띠가 서서히 짙은 색으로 변한다. 불과 몇 시간 전과 달리 밤하늘에 뜬 오로라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추위를 피해 로지에 들어가 있던 가이드 래리도 엉거주춤하며 밖으로 나온다. 동쪽 지평선 너머에서 등장한 또 다른 오로라의 띠가 바로 머리 위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억 개의 별과 은하를 배경으로, 하늘의 3분의 1을 덮어버린 거대한 녹색과 연둣빛 노란색의 장막.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바쁘던 사람들은 짧은 탄성을 뱉으며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십수 분이 지나간다. 그리고 갑자기 북쪽 하늘 전체가 빛난다. “어… 어…” 정말 저 우주에 한 움큼 바람이라도 분 것일까? 오로라의 띠가 드넓게 펼쳐지더니, 실크 커튼이 봄바람에 나풀거리듯 유려하고 빠르게 형태를 바꾼다. 오로라의 춤. 거대한 빛의 커튼이 하늘을 채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사진가의 말은 사실이었다. 불과 몇 분 동안,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하늘을 바라본다.


거대한 오로라의 커튼이 하늘을 채우는 불과 몇 분 동안,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하늘을 바라본다.
페어뱅크스의 찬달라 랜치 앞에 버려진 버스와 침엽수 위로 피어오르는 녹색과 보라색의 오로라 ©김주원

동토의 역사


1867년 전까지 알래스카는 러시아 영토였다. 러시아와 유럽의 탐험가가 알래스카에 접근하던 18세기 전에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원주민은 알래스카에서 수천 년 동안 터를 일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약 1만8,000년 전 시베리아를 통해 건너온 몽골리언의 후예다. 몽골의 평원을 질주하던 그들이 과연 어떻게 알래스카까지 왔을까? 이 궁금증을 베링기아(Beringia)라는 지질학의 열쇠가 풀어준다.


오늘날 알래스카의 서쪽 끝에서 시베리아의 동쪽 끝 사이에 놓인 베링 해협(Bering Strait)의 폭은 불과 약 85킬로미터, 평균 수심은 40미터다. 이론적으로 베링 해협이 얼어붙는 한겨울에는 시베리아 동단 우엘렌(Uelen)에서 알래스카 서단 웨일스(Wales)까지 도보 횡단이 가능하다. 단, 영하 40도의 추위와 유빙을 헤쳐가는 사투를 경험해야 한다(실제로 2012년 한국의 탐험대가 성공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미터쯤 낮았던 빙하기에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때는 베링 해협이 육지였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던 그 땅을 베링기아라고 부른다. 약 1만8,000년 전 아시아의 원주민은 시베리아를 출발해 베링기아를 건너 동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아메리카 대륙 깊은 곳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대이동. 에스키모와 아메리칸인디언의 선조는 그렇게 신대륙에 도달했다.사실 알래스카에 거주하고 있는 220여 개의 원주민 종족을 모두 에스키모라고 뭉뚱그려 지칭하기에 무리가 있다. 학계에서는 알래스카 중부와 서부, 시베리아의 유피크(Yup’ik) 인과 알래스카 북부와 캐나다,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이누이트(Inuit) 인을 지칭할 때만 에스키모라고 한다. 그 외에 알래스카 중부와 동부의 아사바스칸(Arthabascan)과 남동부의 틀링깃(Tlingit)은 인디언이고, 얄류산 열도(Aleutian Islands)의 원주민은 얄루트(Aleut)다. 이렇듯 동일한 선조에서 시작해 조금씩 다르게 변해온 알래스카 원주민(Alaska Natives)의 오랜 역사를 짚어보면, 특히 에스키모는 신화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같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자연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존재. 오로라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현상이 자라는 동토(冬土)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 때문에 알래스카에는 신화와 전설이 유독 많이 전해온다. 베링기아 같은 역사적 사실마저 이곳에서는 아득한 신화처럼 들린다.

(왼쪽부터)영하 20도의 추위 때문에 파이오니어 파크에 설치한 철도 구조물에 얼음에 덮여 있다. © 김주원

알래스카의 역사에 사로잡힌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미완성 유작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에 다음과 같이 썼다. “1만 년하고도 수천 년 전의 먼 옛날, 아시아에서 건너온 몽골로이드들도 오늘밤처럼 오로라가 비치는 땅을 남쪽으로 부지런히 내려가고 있었을까? …(중략)… 우리는 각자 상념에 빠져 도래할 시대의 풍경을 더듬었다. 오로라는 어둠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하는 미래처럼 북쪽 하늘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이 글을 남긴 후, 그는 알래스카의 기원을 찾아 시베리아까지 건너가 취재를 계속했다. 그리고 1996년 8월 8일 캄차카 반도 쿠릴 호숫가에서 불곰의 습격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페어뱅크스 대학교 부설 북극 박물관(Museum of the North)의 알래스카 전시실(Gallery of Alaska) 입구. 박제 불곰 오토(Otto)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2미터 67센티미터의 거구를 자랑하는 오토는 1950년 알래스카에서 잡혔는데, 지금은 박물관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초창기 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을 담당하던 오토 W. 가이스트(Otto W. Geist)의 이름을 빌려 애칭을 붙여주었다. 박물관에 찾아온 사람 대부분은 우선 오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관람을 시작한다. “북극 박물관은 1980년 정식으로 개관했어요. 2005년 현재 건물을 새로 지어 이사 왔죠. 북극권 전체의 해양, 야생동물, 역사와 문화, 지질 등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전시하는 페어뱅크스 대학의 연구 중심 박물관이에요.”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테리사 바커(Theresa Bakker)가 유쾌한 목소리로 박물관을 안내한다. 매해 8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이곳은 에스키모 문화와 북극권 연구 분야에서 보고(寶庫) 같다. 알래스카나 북극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북극 박물관만큼 지적 호기심을 제대로 채워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알래스카 각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소개하는 각종 유물과 박제를 비롯해 빙하시대에 냉동된 미라, 매머드와 고래의 뼈 같은 백과사전의 단골손님들 그리고 원주민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예술 작품 등 76만 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왼쪽부터) 북극 박물관의 아이콘인 불곰 오토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알래스카의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북극 박물관 전시장. ©김주원


바커가 박물관 2층 전시실의 한구석으로 일행을 이끈다. “이것 보세요. 제가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오크비크의 마돈나(Okvik Madonna)라고 하죠.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한 에스키모 유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죠. 저 얼굴 표정을 보세요.” 불과 10센티미터 남짓한 상아 조각상 오크비크의 마돈나. 모성을 상징하는 이 조각상은 미소를 지으며 한 아이를 안고 있다. 얼어붙은 겨울의 베링해를 마주하며, 혹은 짧은 여름 언 땅을 비집고 고개를 든 무명초를 보며, 파도는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2,000여 년 전 발견한 조각상에 감동이 어린다. 전설 같은 유산을 전시실에 두고, 이 박물관은 북극의 미래를 담당할 프로젝트도 야심 차게 진행하고 있다. 페어뱅크스 대학이 주도하는 40년간의 해양 연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올해 2억 달러를 들여 건조한 극지방 연구선 시쿠리아욱(Sikuliaq, 원주민 어로 ‘젊은 얼음 바다’라는 뜻)을 띄운다고 하니, 40년간 파헤칠 바닷속 전설은 이내 북극 박물관에서 숨 쉴 것이다.


알래스카에서 사는 법


알래스카 내륙 중심부. 페어뱅크스의 겨울 아침은 어둡다. 오전 10시가 되어서 태양이 알래스카 산맥(Alaska Range) 위로 조금 보일락 말락 한다. 정오가 되어도 태양은 겨우 산맥 위 몇십 미터 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오후 2시가 되면 해가 기울기 시작해 두어 시간 후 밤이 된다. 2014년 동짓날 일출 시각은 오전 11시 경, 일몰 시각은 오후 2시 40분경. 한여름에는 오전 3시쯤 해가 뜨고 22시간이 지나 오전 1시쯤 해가 진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나, 여름에는 영상 20도까지 기온이 올라서 반라의 마라토너가 뛰어다닐 만큼 따뜻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환경을 무릅쓰고 페어뱅크스 일대에 약 10만 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약 1세기 전 알래스카의 골드러시 열풍을 타고 페어뱅크스에 온 사람들이 체나 강(Chena River) 인근에 터를 잡았어요. 초창기만 해도 광산업과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죠. 그후 1970년대 알래스카 파이프라인(Alaska Pipeline)을 건설할 때 도시가 급격하게 커졌어요. 엄청난 수의 인부와 돈이 파이프라인의 거점 중 하나인 페어뱅크스에 몰려들어 붐이 일었죠.” 페어뱅크스관광청에서 일하는 에이미 가이거(Amy Geiger)가 도시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알래스카의 자연을 편애하는 그녀는 가족과 함께 통나무집에 살고 있는데, 실외 화장실이 좀 불편한 것을 빼면 무척 마음에 든다고. 참고로 아웃하우스(outhouse)는 추운 지역의 주거 문화 중 하나인 옥외 화장실. 페어뱅크스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도 ‘화장실’ 대신 그냥 ‘아웃하우스’라고 써놓는다.


알래스카 북부의 유전에서 생산한 석유를 운송하는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파이프라인 건설은 한때 이 지역의 경제를 좌우했다. © 김주원

1867년 미국의 윌리엄 H. 스워드(William H. Seward) 국무장관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올 때 가격은 720만 달러. 시베리아에서나 짓던 아웃하우스를 알래스카에 와서도 짓느라 힘들었던 러시아 인들은 러시아가 얼어 죽기 딱 좋은 땅을 제값에 팔았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몇 십 년 후 알래스카 각지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급기야 막대한 매장량의 유전을 발견하면서 알래스카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 북부 노스 슬로프(North Slope) 지역의 유전에서 아무리 많은 석유를 퍼 올린다 한들 겨울 날씨 때문에 제때 수송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석유 파동으로 세계경제가 휘청하던 1970년대 미국은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북쪽 끝 프루도 베이 유전(Prudhoe Bay oil field)에서 부동항이 있는 알래스카 남부의 발데즈(Valdez)까지 석유 운송 파이프를 건설한 것이다. 80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 부은 당대 최대 규모의 공사로, 길이 약 1,300킬로미터에 이르는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완성했다. 이 파이프를 완공한 후 30년 만에 알래스카의 총생산량은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어떤 학자는 인류가 알래스카에 정착한 후 수확한 모든 농수산물로 벌어들인 돈보다 프루도 베이 유전에서 벌어들인 돈이 더 많다고 추정한다.


파이프를 건설하던 노동자가 모두 떠난 오늘날, 페어뱅크스는 여행과 교육의 도시로 변모했다. 알래스카의 주요 도로망은 페어뱅크스를 중심으로 남·동·북 방향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모험심 많은 여행자는 이 도시를 한번쯤 거치게 마련이다. 이곳을 출발해 더 깊은 야생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가이거가 말한다. “저는 페어뱅크스가 알래스카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고, 사람들이 알래스카 하면 으레 상상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원주민 문화에 둘러싸여 있죠. 겨울에는 밤이 길어서 생활이 정적으로 바뀌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나름대로 잘 적응할 수 있어요. 게다가 오로라를 볼 수 있잖아요.”


가이거의 말처럼 알래스카의 자연과 문화는 진정한 매력 덩어리다. 때로 이 두 요소가 독특하게 결합하는 경우도 있는데, 페어뱅크스에서 차로 1시간 30분 떨어진 체나 핫 스프링스 리조트(Chena Hot Springs Resort)에 가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체나 핫 스프링스 리조트는 이름처럼 온천 지대에 자리 잡은 은둔형 휴양 단지다. 1905년 류머티즘을 앓던 한 남자도 인적이라고는 하나 없는 이 근방을 헤매다 온천을 찾아냈는데, 온천수가 꽤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1911년에 벌써 온천 방문자용 숙소가 문을 열어서 100년 넘게 추위를 피해 찾은 여행객을 맞이해왔다.

페어뱅크스관광청의 홍보 담당자 에이미 가이거 © 김주원

체나 핫 스프링스 리조트에 들어오면, 인터넷 와이파이뿐 아니라 휴대폰도 사용하기 곤란하다. 첨단 문명의 혜택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반면, 리조트의 운영 시스템은 미래 지향적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두꺼운 종이를 보세요! 이걸 압축해서 연료로 씁니다. 저 플라스틱 병으로는 산업용 기름을 추출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재활용할 수 있죠! 우리 노하우를 전수받은 중국의 한 파트너는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리조트의 대표 버니 칼(Bernie Karl)이 호기롭게 말한다. 온천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곳은 리조트 겸 미래 에너지 연구소였다. 지열 에너지 발전을 사용해 전기를 충당하고 자체 비닐하우스에서는 자급자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채소의 생산성을 실험하고 있다. 주 정부와 함께 재생에너지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아마 그의 계획대로라면, 조만간 이 리조트는 에스키모의 전통 마을 이후로, 알래스카 최초의 자급자족 커뮤니티가 될지도 모른다.

강추위를 피해 체나 핫 스프링스 리조트의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근다. © 김주원

물론 체나 핫 스프링스를 찾은 이가 모두 지열 에너지 발전을 연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에선 온천과 다양한 겨울 액티비티를 즐기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리조트 내 오로라 아이스 박물관(Aurora Ice Museum)에서 월드 챔피언의 손길로 완성한 얼음 조각들을 살펴보다 보면 금세 어둠이 내리고, 투숙객의 발길은 본능적으로 온천을 향한다. 짧은 해가 기울고 한겨울 밤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얼굴만 살짝 내밀자 머리카락에 바로 살얼음이 핀다. 이 정도는 한국의 야외 온천에서도 체험할 수 있겠다. 그러니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온천이 이 정도가 전부일 리 없다. 몸이 슬슬 녹아 내릴 때쯤 시선을 하늘로 돌려본다. 쏟아져 내리는 별과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온천의 수증기 너머에서 벌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북두칠성 옆으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

각양각색의 얼음 조각으로 실내를 장식한 오로라 아이스 박물관의 외관 © 김주원

산과 강을 너머 앵커리지를 향해


객차 창밖으로 그저 헐벗은 침엽수만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자연의 극적인 풍경이 시작된다. 페어뱅크스의 알래스카 레일로드(Alaska Railroad) 역을 출발한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기차가 네나나 강(Nenana River) 주변의 거친 벌판을 지나 알래스카 산맥과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에 가까워지자, 주변 풍경이 지구 상의 모든 지질학 요소가 중첩된 것처럼 바뀐다. 유빙이 흐르는 지류와 경사가 심한 계곡을 번갈아가며 지나칠 때마다 승객들은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한다. 저 멀리에는 알래스카 산맥의 숱한 봉우리가 흰 눈에 덮여 도열해 있다. 직사각형으로 된 객실 창문이 낭만주의자가 붓질한 캔버스로 느껴진다.

앵커리지 다운타운에서 마주친 알래스카 원주민의 토템. 알래스카는 원주민과 이주민의 문화가 공존하는 땅이다. © 김주원

페어뱅크스를 출발해 산맥을 가로질러 알래스카 만(Gulf of Alaska)과 면한 작은 도시 스워드(Seward)까지. 알래스카 레일로드는 100년 가까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골드러시 당시 일꾼의 이동과 이주를 위해 운행하기 시작한 철도예요. 오늘날 미국에서 유일하게 플래그스톱(flagstop)으로 운영하고 있죠. 플래그스톱은 승객이 원하는 곳에서 타고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알래스카 산맥에 있는 오두막을 찾아가 쉬거나 백패킹으로 탐험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해요. 많을 때는 기차역이 아닌 데에서 열 번쯤 멈추는 것 같아요.” 이 기차에서 객실 매니저 존 모블리(Jon Mobley)의 말이다. 거친 자연을 통과하고 수시로 승객이 타고 내리기 때문에,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Anchorage)까지 약 570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12시간이 걸린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자랑하는 특급열차가 난무하는 시대에 알래스카 원주민처럼 고고하게 전통을 고수하는 알래스카 레일로드. 거짓말처럼 이 기차를 타는 시간 내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풍경을 감상하다 잠시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식당칸에서 꽤 괜찮은 식사를 하고, 창밖으로 마을과 여행자를 구경한 뒤 잠시 눈을 붙이면 앵커리지에 도착한다.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 달콤한 기분마저 든다.알래스카 최대의 도시 앵커리지는 20세기 초까지 백인 얼굴조차 구경하기 힘든 곳이었다. 1914년 알래스카 레일로드가 중심 기지를 이곳에 세우면서 재빨리 도시화되었는데, 현재 알래스카 주 전체 인구의 40퍼센트가 이곳에 거주한다. 물론 주 전체의 인구가 적다 보니 다른 주의 대도시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낭만적이다. 여행자라면, 이 도시에서 데날리 국립공원의 전초 기지 같은 산악 마을 탈키트나(Talkkeetna)를 갈 준비를 하거나, 앵커리지 남쪽 케나이 반도(Kenai Peninsula)의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으로 관심을 돌릴 것이다.


앵커리지 남쪽으로 스워드 하이웨이(Seward Highway)를 따라가는 드라이브 루트는 가슴이 뻥 둘리게 해준다. 턴어게인 암(Turnagain Arm)을 따라 케나이 반도의 그림 같은 산군이 펼쳐지고 그 안에는 사진집 표지 모델로 쓸 만한 피오르와 빙하가 수만 년 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케나이 반도에서 경험하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의외의 장소에서 기다린다. 턴어게인 암이 끝나는 곳에 있는 알래스카 와일드라이프 보호 센터(Alaska Wildlife Conservation Center)다. 어미를 잃거나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으로, 약 26만 제곱미터 넓이의 부지에 알래스카의 자연을 함축해놓았다.

한 현지인이 스워드 하이웨이 도로변에 멈춰 서서 산양을 포착하고 있다. 턴어게인 암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루트로 유명하다. © 김주원

차를 타고 보호 센터에 들어서면, 진짜 야생을 탐험하는 착각이 든다. 대머리독수리부터 그리즐리 곰(grizzly bear), 무스(moose), 사향소(musk oxen), 엘크(elk), 카리부(caribou)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멸종됐으나 캐나다에서 들여와 보호 중인 우드 바이슨(Wood Bison)까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땅 위에서 야생동물이 서로 무리를 지어 제집처럼 지내고 있다. 재미있게도 이 보호 센터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여러 다큐멘터리의 촬영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실제로 여기에선 누구나 야생 다큐멘터리를 찍어볼 만하다. 무스나 카리부가 철창 바로 앞까지 어슬렁 걸어와 멀뚱하게 눈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그 눈망울에는 알래스카의 자연이 넣어준 감동적인 무언가가 서려 있다.


알래스카의 자연을 함축해놓은 보호 센터에서 어미를 잃은 야생동물이 자립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알래스카 와일드라이프 보호 센터에서 서식하고 있는 엘크가 거대한 뿔을 추켜세운다. © 김주원

100년 전 알래스카에서 사라졌다는 우드 바이슨.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던 동물도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었다. 알래스카에 유럽인이 처음 왔을 때, 원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던 것은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옮긴 각종 질병이었다. 용맹하기로 이름난 에스키모의 전사들이 소리 없이 생을 마감했다. 알래스카 원주민 1만8,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였으나 땅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알래스카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이는 알고 있다. 이 땅이 바로 그들의 삶이라는 것을. 새 삶을 준비하고 있는 우드 바이슨을 보며 에이미 가이거의 말을 되새긴다. “아직 알래스카 주민의 약 16퍼센트는 원주민이에요. 그들의 존재가 지금의 알래스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죠.”

페어뱅크스를 출발해 앵커리지로 향하는 알래스카 레일로드의 오로라 윈터 트레인. 알래스카 산맥이 가까워오자 대자연의 거친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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