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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Nov 06. 2015

강화도에서 만난 뜻밖의 공간

Unexpected Island

섬의 산과 들과 바다를 거닐며 의외의 장소를 발견해보자. 그곳에는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어울려 있다.


 이기선 ・ 사진 정수임


들을 걷고 산에 오르다


어느 오후의 시골집. 거실의 널찍한 나무 테이블 위에 <킨포크> 과월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새하얗게 칠한 벽에는 하루에 1장씩 찢어내는 예스러운 달력과 낡은 전신 거울이 붙어 있다. 방문 위에 걸어 늘어뜨린 인도네시아 발리산 바틱 천에서 히피 분위기가 풍긴다.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작은 마당이 보인다. 마른 모래밭, 흰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 빨랫줄에 널린 이불, 그 너머로 평화로운 들판. 완벽한 적막과 평화가 감돈다. 이곳이 섬이라는 표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로 큰 섬 강화도의 흔적 또한.


슬로 라이프를 표방하는 게스트하우스 모두의별장은 강화도 섬 남쪽의 화도면, 마니산 북쪽 어귀에 숨어 있다. 낮은 뒷산을 등지고 너른 들을 마주 보는 파란 지붕의 개량 한옥. 동네의 여느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 집은 서울 출신의 네 젊은이가 함께 운영한다. 1명씩 번갈아가며 숙소를 맡는 운영 방식 덕분에 이곳을 찾은 손님은 그들 중 1명을 꼭 만나게 된다. 디자이너와 문화 기획자로 구성된 네 친구들은 ‘ㅇㅇ은대학’이라는 청년 활동 그룹에서 일 하던 중 인연을 맺었다. 그룹에서 강화도 지역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사용하던 집을 작년 여름부터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손수 만든 원목 가구부터 노출 콘크리트 벽까지 구석구석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거실 한복판의 널찍한 테이블은 앉아서 일하기 편리하도록 디자인했다.

게스트하우스 모두의별장의 거실. © 정수임

오늘의 당번인 전종원 씨는 그 테이블에 앉아 곧 창간할 독립 잡지의 디자인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는 모두의별장에 합류한 지 3개월쯤 됐는데, 강화도에 올 때마다 이 집에만 머무르는 통에 섬의 다른 곳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청소나 설거지 탓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 있으면 아침과 저녁에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고요한 마당을 내다보는 그의 얼굴이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을 찾은 듯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인다. 다른 친구의 사정도 비슷하다. 맨발로 마당을 걷거나, 뒷산에 앉아 멍하니 바람을 맞거나, 근처의 폐허가 된 모텔에 놀러가거나, 논밭으로 나가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거나. 종종 재미있는 일도 벌인다. 마을 부녀회장을 요리사로 초대해 게스트하우스 손님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떤 적도 있고, 겨울날 1박2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서 귤을 까먹고 만화책만 보며 뒹굴거린 적도 있다고. 1개월에 한 번씩 진행하는 ‘모두의식탁’은 킨포크식 소셜 다이닝 이벤트로, 손님과 함께 강화도 제철 재료로 요리하고 나눠 먹는 자리. 최근 몇 달간 쉬었지만 올가을에 다시 열 계획이다. 조만간 꽃게, 굴, 멍게와 웃음 소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울 것이다.

모두의별장의 공동 운영자인 전종원 씨가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앉아 있다. © 정수임

화도면에는 세상사를 잠시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그곳은 해발 472미터에 자리하며 누구나 다 아는 장소다. 모두의별장에서 차로 5분만 달리면 마니산 입구가 나온다. 강화도의 상징과 같은 산이지만 초입에서부터 별나게도 뉴 에이지풍의 분위기가 흐른다. 매표소 앞에 이곳이 ‘역사적으로 기(氣)의 발원지’이며 ‘기 측정 결과 상서로운 곳’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이 문구는 등산로를 걷는 동안 몇 번 더 볼 수 있다). 1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이르는 계단로는 꽤 가파르고 초반에는 주변 경치도 거의 볼 수 없는데, 중턱에 이르면 갑자기 발아래로 탁 트인 바다와 들판이 나타나 땀을 식혀준다. 솔직히 이때까지 마니산의 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 사람도 참성단에 이르면 살짝 감동할 듯하다. 수천 년 전부터 돌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는 사각형의 제단에서 하늘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워 보인다. 너른 들과 서해 바다는 수천 년 전에도 그 모습이었을 듯하다. 여기서 몇 분 더 걸어가면 둥근 헬리콥터 착륙장이 있는 마니산 정상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보는 참성단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마니산의 신성성을 믿는 것은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 동 트기 전 산에 올라 종일 참성단을 지키는 관리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단군을 섬긴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녀에 따르면 가장 기가 센 곳은 엄밀히 말해 마니산 정상이 아닌 참성단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마니산 기슭에 사는 두꺼비. 마니산 정상에서 본 참성단 © 정수임


마니산 참성단에서 내려다본 풍경. © 정수임

빵을 먹고 차를 마시다


“여기가 시골이지만, 우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시와 동일한 곳이에요.” 강화도의 카페 주인이자 찻잔 수집가이며, 환경론자이자 중고 책 판매 사이트 운영자인 젊은 남자가 말한다. 그는 지금 섬의 남동쪽, 탁 트인 갯벌 풍광으로 유명한 선두마을 초입에 있는 자신의 카페에 앉아 있다. 화창한 오후. 전면 유리창으로 갯벌과 푸른 들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저편에 마니산이 우뚝 솟아 있다.  테라스에서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커플이 커피에 치즈케이크를 곁들여 먹고, 한쪽에서는 중년 여성 무리가 수다를 떨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강화도 남쪽 해안을 따라 전원 주택풍으로 지은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겉보기에는 그린 홀리데이도 그런 카페 중 하나인 듯하다. 마당의 거대한 분수, 동화에 나올 법한 2층짜리 벽돌집,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탁 트인 전망. 한데 이곳의 진가는 따로 있다. 이 일대에서 최초로 생긴 빵집으로 매일 아침 구워내는 빵이 오후면 동이 난다는 것과 주인이 직접 로스팅해 내리는 커피 향이 유달리 달콤하다는 것. 벽에는 주인 김훈 씨가 수집하는 현대미술 작품이 걸려 있고, 2층의 한쪽 벽면이 거대한 책꽂이로 돼 있으며 종종 회화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테이블마다 놓인 꽃은 카페 앞 야생화 밭에서 따온 것.


“마타리, 벌개미초, 들국화.” 김훈 씨의 어머니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한 투로 화병의 꽃 이름을 읊는다. 야생화 밭을 가꾸고 카페에 꽃을 장식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김훈 씨는 마니산 어귀에서 나고 자랐다는 어머니의 ‘환경론자’ 피를 물려받았다고. “강화도는 청정 지역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죠. 카페를 통해 자연 속 휴식을 제공하려고 해요.” 덩어리째 파는 묵직한 빵이 그 증거 중 하나. 건강과 영양을 고려해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산 유기농 통밀로 빚는다는 빵의 깊은 맛에는 분명 저 들과 갯벌도 한몫했을 것이다.

(왼쪽부터) 그린 홀리데이의 대표 메뉴인 무화과 캉파뉴. 커피를 내리고 있는 카페 주인 김훈 씨. © 정수임


강화도에 카페 열풍이 일기 훨씬 전부터 전등사 내에는 죽림다원이라는 그럴 듯한 찻집이 있었다. 그린 홀리데이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 기슭이 나온다. 절의 한쪽 구석,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뒤에 있는 죽림다원은 결코 경건한 분위기의 장소는 아니다. 한옥 안에 동양적인 음악을 틀어놓았고, 인테리어는 다소 촌스러우며, 쌍화차, 모과차 등 고풍스러운 이름의 차 맛은 엄청나게 달다. 전등사 곳곳에 큼직한 홍보 현수막을 붙여놓았고, 조잡스러운 기념품 가게도 있다. 1,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이 폐쇄적인 사찰보다는 들고나는 역사의 현장에 가까웠다는 점을 떠올리면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절을 감싸는 삼랑성(三郞城)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단군 시대에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19세기 말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죽림다원 자리는 본래 조선시대 전등사에 주둔한 승병의 초소가 있던 터다.

전등사 내의 찻집 죽림다원. © 정수임

스님들이 손수 가꾼다는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풍경만은 더없이 평화롭다. 절 뒤쪽,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정족산 산길로 이어진다. 저 아래, 겹겹이 쌓인 기와지붕 너머로 푸른 산과 바다, 건너편 섬의 그림자까지 아른거린다.

전등사 뒤편, 정족산사고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 정수임

바다로 나가 해를 보다


당신이 강화도 어디에 있든, 세상과 외따로 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돈대를 찾아가면 된다. 일단 바다로 나가, 해변을 따라서 쭉 걸어가자. 운이 좋다면 얼마 안 가 길가 혹은 언덕 위에서 공터를 빙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성곽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각형, 원형 등 형태는 다르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비슷하다. 성곽 한쪽에 뚫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면 한복판의 공터에 수풀이 우거졌고, 성곽 너머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돈대가 강화도 해안에 53곳이나 존재한다.

섬 남동쪽 선두리 인근의 갯벌. © 정수임

섬 남쪽 바닷가에 있는 후애돈대는 아마 강화도에서 제일 찾기 쉬운 돈대일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는 규모의 갯벌을 따라 선두리 해안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자. 선두4리항에 이를 즈음, 도로 바로 왼편으로 널찍한 직사각형의 돈대가 보인다. 이 돈대를 없애면 마을에 재앙이 찾아온다는 얘기도 전해 내려온다.


조선 시대 병사들이 숨 죽이며 적을 감시했을 톱니바퀴 모양의 성곽 너머로는 오로지 갯벌뿐. 서해의 갯벌이 무슨 색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묵처럼 검다가, 흙빛이다가, 은빛으로 번쩍이니까. 갯벌은 군데군데 야트막한 언덕으로 부풀어 있고, 그 사이로 뱀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이 나 있다. 고즈넉하지만 위협적인 풍경이다.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끈적한 갯벌 한복판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갯벌 끝에는 동검도, 영종도, 신도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후애돈대 © 정수임

석양을 향해 해안도로를 좀 더 달리면 얼마 안 가 동막해변이 나온다. 해 질 녘,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해변 위로 쏟아진다. 아담한 초승달 모양의 동막해변은강화도 유일의 모래 해수욕장으로, 인기가 많아 평일에 찾아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모래는 짙은 카페 라테빛이고, 그 위에 어른 발자국, 아이 발자국, 갈매기 발자국이 어지러이 섞여 있다. 해변 한쪽에는 엄마와 아빠, 아이 2명이 둘러앉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갈매기는 하릴 없이 종종거리며 모래 위를 점검하고, 웨딩 촬영 중인 커플이 맨발로 바닷가를 거닌다. 모래사장은 녹다 만 흑설탕처럼 질퍽해지다가 시커먼 갯벌로 이어진다. 너른 갯벌이 눈부시게 번쩍이고, 저 멀리서 오늘의 마지막 순간까지 뛰노는 꼬마 2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동막해변에도 돈대가 있다. 그것도 일몰을 감상하기 딱 좋은 돈대가. 분오리돈대는 해변 동쪽 끝의 언덕에 숨어 있어 모르는 이는 지나치기 십상이다. 돈대로 오르는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언덕길에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이파리가 줄줄이 매달린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야, 너 아까시나무도 모르냐?” 나무 이름을 물어보자 언덕 어귀에서 곡물을 파는 할머니가 대뜸 핀잔을 준다. 들풀이 제멋대로 자란 돈대 안에는 태곳적 같은 묘한 느낌이 감돈다. 사위가 적막하다. 거친 섬 바람에 무성한 아까시나무가 우수수 흩날리는 소리뿐.

울퉁불퉁한 돌 계단을 올라 성곽 위를 한 바퀴 돌면, 머나먼 수평선에 섬들이 낮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까 지나온 해변의 여행객이 점으로 보인다. 성곽에 앉아 내려다보면 기우뚱하게 궤적을 그리며 기우는 해와 비슷한 속도로 바닷물이 소리 없이 밀려 들어온다. 해변에 물이 다 차고 얼마 안 있어 불타는 해가 검은 산 뒤로 사라진다. 성곽을 거닐던 연인이 돈대를 떠난 후에도 하늘의 푸른빛은 몇 분 더 지속된다. 곧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해변 뒤쪽 길가에 즐비한 횟집이며 카페가 불을 밝히고 손짓하리라. 그 전까지는 조금 늑장을 부려도 좋다.

석양이 분오리돈대에 내리쬔다. © 정수임

마실 가다


이발소, 슈퍼마켓, 목욕탕 굴뚝. 빛 바랜 낮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잿빛 골목에 지방 소도시다운 복고 분위기가 흐른다. 그 틈에 폐허처럼 남아 있는 고려궁지와 강화산성이 강화도 특유의 고즈넉한 느낌을 더한다. 섬으로 피난 온 왕, 1,000년 넘게 이어진 외세의 침략. 강화읍내에 첩첩이 쌓인 역사의 흔적은 확실히 밝지만은 않다.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흔히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강화의 활기찬 현재가 진행 중이다. 읍내의 남동쪽 외곽 사거리,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거대한 상가 건물 같은 곳에서.


수십 년 된 노점식 재래시장이던 강화풍물시장이 2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이사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정겨운 시장 풍경은 전과 같다. 넓은 1층 공간을 과일, 곡물, 채소, 해산물 점포가 메우고 노련한 상인이 손님을 맞는다. 올해로 84세가 된 삼풍상회 주인 할머니도 여전히 가게를 지킨다. 옛날식으로 수숫대를 엮어 만든 귀여운 수수 빗자루를 내놓고 해맑게 웃으면서. 여기에 새로 더한 풍경도 있다. 점포마다 매달린 표지판에서 활짝 웃고 있는 가게 주인의 얼굴, 건물 1층 모퉁이의 신식 카페, 벽에 붙어 있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의 시장 지도, 논밭 앞에 자전거가 서 있는 자전거 렌털 숍 풍물씽씽의 전단지, 2층 식당가의 화덕 피자 가게.


화덕식당에 가려면 밴댕이 무침 식당과 순대국밥 식당, 찐빵 가게를 지나야 한다. 화덕에서 피자를 꺼내는 청년을 그린 알록달록한 벽 너머, 오픈된 주방을 둘러싼 바에는 엄마와 아이가 앉아서 피자를 잘라 먹고, 젊은 여자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한가운데, <무한도전> 가요제 노래가 흘러나오는 주방에서 청년 셋이 고구마 껍질을 벗기거나 반죽을 치대는 데 열중해 있다. ‘청년이 풍물시장에 왔다’는 뜻의 ‘청풍상회’가 시장에 들어온 지 2년이 흘렀다. 요즘은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두 친구를 제외하고 엠키와 베니스, 충 이렇게 3명이 매일 나와 피자를 굽는다(이들은 본명 대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화덕식당의 갓 구운 밴댕이 피자 © 정수임


힙합 래퍼인 엠키가 화덕에서 밴댕이 피자를 꺼내자 금세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퍼진다. 치즈를 듬뿍 얹은 노릇한 도 위에 강화도 명물인 밴댕이와 청양고추, 파를 더해 느끼하기보다 고소하고 매콤하다. “저희 중에 요리를 해본 친구가 1명도 없었어요. 시장 식당 어머니들이나 단골손님이 이렇게 해보라고 가르쳐주시고, 그러다 보니 점차 나아졌죠.”


한번은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을 딱하게 여 긴 상인의 제안으로 도 안에 강화도 속노랑 고구마를 넣은 고구마 칼조네를 개발했는데 이게 히트를 친 적도 있다. 텃세가 심하다는 시장의 식당 주인들이 그들에겐 엄마나 다름없다. 힘든 얘기를 들어주고, 밥 먹고 가라며 상도 차려준다고. 청년들이 온 뒤로 시장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고도 한다. 화덕식당은 청년들과 시장 상인, 손님들이 다 함께 만들어낸 공간인 듯하다.


“단골손님과 ‘노가리’ 까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은 꽤 진지하다. 우리나라 곳곳에 힙합 문화를 정착시키고, 강화도 지역 젊은이들과 함께 먹고 사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준다는 꿈. 이들이 꿈을 이룰지 아닐지는 사실 중요치 않은 듯하다. 요리도 할 줄 모르던 이가 처음 정착한 강화도의 시장에서 유쾌하게 어우러져 살고 있으니까. 한창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하나둘 손님이 들어오고 손도 바빠진다. 손님에게 건네주는 피자 상자에는 ‘활짝 피자, 화덕 피자’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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