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May 07. 2019

돗토리가 건네는 위로

돗토리현의 소박하고 느긋한 공간들.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치유 여행.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건강한 미식과 온천을 즐겨보자.
소박하고 느긋한 돗토리 라이프를 경험하며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치유 여행.



자연이 보답한 한 끼, 도헨보쿠 


탱탱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소바 면을 몇 번이고 찬물에 헹구는 가와카미. ⓒ 임학현


“오늘 정말 운이 좋네요. 다이센 (大山)산이 저렇게 잘 보이다니.” 이번 취재에 동행한 돗토리현의 김연주 국제교류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한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의 말처럼 차창 너머로 봉우리가 새하얀 다이센산이 줄곧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후지산을 닮은 듯한 다이센산은 수려한 풍광을 간직한 일본 3대 명산 중 하나다. 그 품에 안기듯 다이센산을 향해 한참을 달리자 산 중턱에 덩그러니 자리한 산장에 다다른다. 마침 산장으로 돌아온 채집 식당 도헨보쿠(訪辺歩来)의 주인장 가와카미 노부유키(川上信幸)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마를 한 손에 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여러분을 위해 방금 캔 15년 된 마입니다. 이걸로 특별한 소바를 만들 거예요.”


(좌) 가와카미가 다이센산에서 캔 15년 된 마. (우) 도헨보쿠로 들어가는 입구. ⓒ 임학현


30대에 불현듯 찾아온 암은 가와카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부모와 형제에 이어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암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7년간 이 산장을 지으며 건강에 생활의 초점을 맞췄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중요시 한 건 바로 식습관이다. “식습관을 고친다고 해서 모든 병이 나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저에겐 큰 도움이 됐어요. 식습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채집 음식을 선보이고 있죠.” 가와카미의 철학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직 자연에서 채집한 제철 식자재와 직접 기른 농산물로만 요리하는 것. 인공 조미료는 일절 배제하고 잔류 염소가 함유된 수돗물 대신 지하수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건강을 추구하는 노력도 엿보인다. 25년간 한결같이 건강한 음식을 차려낸 덕분인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도헨보쿠는 올해 처음 발간된 <2019 돗토리현 미쉐린 가이드>에서 더 플레이트 부문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음식을 만드는 가와카미의 집념이 인정받은 것이다.


    

간수로 만든 두부를 곁들인 야생 버섯 소바. ⓒ 임학현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음식이 차례로 식탁에 오른다. 소바는 직접 농사 지은 메밀로 반죽한 면에 산에서 채집한 참마를 갈아 넣거나 간장에 절인 야생 버섯을 올려 완성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종류의 소바지만 식자재 본연의 맛을 잘 살렸다. 디저트로 나온 푸딩은 방목해 키운 오골계의 달걀과 군고구마로만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콤하다. “저는 자연의 악순환이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현대인의 질병인 독감과 알레르기는 모두 면역력 약화가 원인이죠. 건강해지려면 무엇보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깨끗한 자연에서 순리를 따르며 자란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섭취해야 해요.” 분주하게 젓가락을 움직이는 손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가와카미가 단호한 어투로 덧붙인다.



▶ 이곳을 방문하려면?

도헨보쿠는 채집 후 요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한다. 사전에 약속을 잡으면 가와카미와 동행해 직접 버섯 채집을 경험해볼 수 있다. 도헨보쿠를 방문하고 싶다면 전화로 예약하거나 여행사의 예약 대행 서비스(japanian.kr)를 이용하자.





시골에서 빵을 만드는 의미, 다루마리 


다루마리의 와타나베 이타루 · 마리코 부부. ⓒ 임학현


봄비 내리는 돗토리현의 풍경은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다. 길가에 나지막한 목조 가옥이 드문드문 등장하고, 파종을 앞두고 고랑을 낸 밭은 반가운 단비를 흠뻑 머금는다. 돗토리현은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현으로 꼽힌다. 인구 감소는 골칫거리를 안겨주지만, 이는 오히려 강력한 무기가 되어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천혜의 자연환경이 선사하는 편안함으로 힐링이 필요한 여행자를 끌어 모은다. 2015년 6월 빵집 다루마리(タルマーリー)가 오카야마(岡山)에서 돗토리현의 지즈(智頭) 마을로 이사한 이유도 시골의 청정한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라고. “무엇보다 맥주를 만들고 싶었어요. 빵을 구울 때 맥주 효모를 사용하는데, 효모를 만든 김에 맥주를 양조하고 싶었죠. 양조에 필요한 맑은 물과 소맥분을 빻는 제분기를 둘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찾다 보니 돗토리현이 제격이었습니다.” 와타나베 이타루(渡邉格)가 동의를 구하며 아내 마리코(麻里子)를 지긋이 바라본다. 


(좌) 옛 보육원을 개조한 다루마리의 내부. (우) 다루마리의 다양한 천연 효모 빵. ⓒ 임학현


이타루가 펴낸 저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한국에 출간된 이후로 이들 부부는 국내에서도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들은 책에서 강조한 ‘빵을 매개로 한 지역 내 순환’을 더욱 깊숙이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왔다고 한다. 빵에서 시작된 고민은 환경을 거쳐 농업 발전, 지역 내 순환까지 꼬리를 물며 확산됐다. “천연 효모 빵을 만들려면 먼저 대기에서 발효균을 채취해야 해요. 그러려면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데 농업과 임업이 이를 가능케 하죠.” 이타루가 말한다. 최근 그는 마을과 협업해 5년 계획을 세우고, 무농약 · 무비료로 농사를 짓는 자연 재배 농가를 육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 재배한 지역 농산물은 다루마리에서 정당한 대가로 구매해 와 양질의 먹거리로 거듭난다. 상호 협력을 통해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지역에서 수확한 밀을 자가 제분하거나, 농가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로 소시지와 햄버거 패티를 만드는 일도 지역 내 순환을 위한 실천의 일환이에요.” 배턴을 이어 마리코가 부연 설명을 한다.

다루마리에서는 밀가루, 소금, 물, 천연 효모만을 사용해 빵을 굽는다. 고택에 사는 천연균을 배양한 주종으로 만든 식빵, 건포도 효모와 맥주 효모로 발효한 바게트, 호두와 건포도를 담뿍 넣어 통밀 효모로 만든 빵 등 전체적으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효모에서 비롯된 섬세하게 다른 식감과 향미가 미뢰를 자극한다. 물론 천연 효모로 만든 도에 채소와 두유 마요네즈 토핑을 올린 담백한 화덕 피자도 인기가 좋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타루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품종 계량을 하지 않은 곡물로 빵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농가에 부탁하기 어렵다면 결국 제가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MORE TO: 돗토리현의 힐링 먹거리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곁들인 시그너처 팬케이크. ⓒ 임학현

코코 가든 ココガーデン

오에노사토 자연목장(大江ノ郷自然牧場)에서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다. 이곳에선 돗토리현의 깨끗한 자연에 닭을 방사하고, 조개껍질과 유기농 채소 등의 천연 모이를 먹여 기른 닭이 생산한 최상급 달걀로 만든 디저트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는 폭신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팬케이크다. 이 외에도 바움쿠헨,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바로 뒤편에 자리한 오에노사토 빌리지에는 달걀을 활용한 베이커리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입점했으니 함께 방문해보자.

ⓘ 팬케이크 680엔부터, oenosato.com







돗토리현의 특산 해산물로 만든 스시. ⓒ 임학현

사사스시 笹すし

돗토리시에서 대를 이어 운영하는 50년 전통의 초밥집. <2019 돗토리현 미쉐린 가이드>에서 더 플레이트를 받았다. 진흙새우, 게, 바위굴 등 매일 아침 항구에서 공수한 돗토리현의 특산 해산물을 활용한 스시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스시 오마카세는 계절에 맞게 구성이 달라진다. 밥에 설탕과 소금 대신 아카스(赤酢)라는 붉은색의 발효 식초를 넣어 간을 맞추는 에도마에(江戶前, 도쿄식 요리) 스시를 구현했으며, 진흙새우를 다져 넣은 두툼한 달걀말이가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다.

ⓘ 스시 오마카세 4,300엔부터, hal.ne.jp/sasasusi









글. 문지연 사진. 임학현

ⓘ 취재 협조 돗토리현 관광교류국 blog.naver.com/tottori_pref

문지연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날씨가 좋을 때 돗토리사구를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돗토리현을 다시 찾을 생각이다. 사진가 임학현이 동행했으며 모든 사진을 후지필름의 카메라 X-Pro2로 촬영했다.




'돗토리가 건네는 위로'에 이어진 이야기

▶ 돗토리가 건네는 위로 pt.2 - 힐링 스폿

돗토리현 여행 노하우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

▶ 론리플래닛 코리아 웹사이트

▶ 론리플래닛 코리아 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최고의 핀초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