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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May 03. 2019

최고의 핀초를 찾아서

스페인 바스크 지역 고유의 타파스, 핀초. 산세바스티안 최고의 핀초는?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을 상징하는 타파스인 핀초를 즐기기에 산세바스티안보다 이상적인 곳은 없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제쳐두고, 이 자그마한 술안주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핀초 바를 순례해보자.



산세바스티안의 플라야 데 라 콘차(Playa de la Concha) 해변. ⓒ JUSTIN FOULKES


스페인 사람에게 타파스의 기원을 물어보면 저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큼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타파스가 술집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말이다. 스페인어로 타파(tapa)는 ‘뚜껑’을 의미하며, 한때는 이름처럼 와인잔이나 맥주잔을 덮는 그야말로 먹을 수 있는 뚜껑이었다. 전통적으로 타파스는 늦은 저녁, 바에서 음주와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제공하던 간단한 음식이다. 스페인 북부의 해안 도시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에서는 이 술안주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라 브레차 시장에 진열된 해산물. ⓒ MARK READ


산세바스티안은 타파스의 일종인 핀초(pintxo)의 본고장이다. 최초의 핀초는 빵 조각에 한 입 분량의 음식을 올린 것으로 매우 단순했다. (핀초는 ‘못’을의미하기도 한다.) 한쪽은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이, 반대쪽은  바스크 지방의 비옥한 푸른 들판과 면한 입지 조건 덕분에 산세바스티안에는 핀초에 사용할 만한 고급 식자재가 풍성했다. 브레차 시장(Mercado de laBretxa)은 지역에서 생산한 모든 식자재를 모아놓은전시장 같 은 곳이다. 향긋한 올리브와 낚싯대로 잡은생선이 얼 음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가운데, 장을 보러 나온  현지인 틈에서 20년 넘게 가이드로 활동한 가브리엘라 라넬리(Gabriella Ranelli)를 만난다.


라넬리는 산세바스티안 사람들이 치키테오 (txikiteo)를 통해 어울린다고 말한다. 집단을 일컫는 쿠아드리야(cuadrilla)를 이룬 친구들이 와인과 핀초를 조금씩 즐기며 밤새 여러 술집을 순례하는 이 풍습은 산세바스티안의 모계 중심 문화에서 비롯됐다. “여자들은 남편을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오라고 허락했어요.” 라넬리가 설명한다.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경쟁이 붙은 술집들은 남자 손님이 좀 더 오래 술을 마시도록 올리브와 고추, 초리소, 소금에 절인 안초비 같은 음식을 냈죠.”




길다는 최초의 핀초로 알려졌다. ⓒ MARK READ


최초의 핀초는 길다(Gilda)라 불렸다. 이는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가 출연한 1946년작 영화의 제목이자 그녀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다. 프랑코(Franco) 독재 시절이던 당시 엄격한 검열을 거쳐 성적 수위가 높은 영화 장면을 모두 삭제했는데, 이를 본 관객은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고. 산세바스티안의 한 바텐더는 통통한 올리브 2개 사이에 안초비와 긴디야(guindilla) 고추를 끼워 만든 안주를 관능의 대명사인 헤이워스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톡 쏘는 맛이 강한 세 가지 재료를 조합한 길다는 내 입맛에 조금 짰다. 최초의 핀초는 구시가의 유서 깊은 핀초 바인 카사 바예스(Casa Vallés)에서 탄생했으며, 1950년대의 모든 술집은 저마다 특색 있는 핀초를 내놓았다. 


1970년대 초반 산세바스티안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등장한 이후 고급스러운 요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핀초 바에도 스며들었다. 오늘날 이 도시는 미슐랭 스타를 17개나 보유했으며, 면적으로만 비교하면 파리보다도 비율이 높다. 이는 산세바스티안 사람들에게 ‘유럽 미식의 수도’라는 긍지를 갖게 했다. 창의력 넘치는 미식 문화는 아켈라레(Akelarre), 아르삭(Arzak),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ín Berasategui) 같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뿐 아니라 실험적 핀초 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 사스피(Bar Zazpi)는 거위목 따개비(gooseneck barnacle)로 만들던 쌀 요리를 해초로 구현한 아로스 베르데(arroz verde)처럼 이국적 요리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안토니오스(Antonio’s)는 바에서 잽싸게 만들어내는 재기발랄하고 혁신적인 요리로 명성을 쌓고 있다.




간바라의 온고스 알라 플란차 콘 예마. ⓒ MARK READ


산세바스티안에 있는 핀초 바의 셰프는 대부분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거쳐 극히 일부만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조리법을 구사한다. 카사 우롤라(Casa Urola)는 제철 채소를 선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채소를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다음 숯에구워 마무리한다. “훌륭한 레스토랑은 공통적으로 유별날 만큼  질 좋은 식자재에 집착하죠. 이곳에서는 원산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라넬리가 말한다. “게다가 핀초 바에서는 종종 스타 셰프도 만날 수 있어요. 구시가에서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마주치거나 간바라(Ganbara)에서는 단골인 후안 마리 아르삭(Juan Mari Arzak)이 모습을 드러내곤 하죠.”


나는 라넬리의 조언에 따라 사람이 가장 몰리는 시간인 저녁 8시 30분에 간바라에 입장하는 것으로 핀초 바 순례를 시작한다. 실내는 이미 인파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밀쳐대고, 바에는 랍스터와 고추, 안초비를 비롯한 한 입 사이즈의 짭짤한 페이스트리를 담은 접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곳을 즐겨 찾는 이는 하나 같이 온고스 알라 플란차 콘 예마(hongos a la plancha con yema, 달걀노른자를 얹은 버섯 구이)를 주문한다. 석양 빛깔을 닮은 달걀노른자를 중심으로 버섯을 꽃잎처럼 흩뜨려놓은 요리다. 다들 고기처럼 단단한 버섯 조각을 흘러내리는 노른자에 찍어 먹는다. 감칠맛이 나는 이 요리는 바스크 지방의 숙성된 화이트 와인 차콜리(txacoli)와 기막히게 궁합이 맞는다. 바텐더는 와인병을 머리 높이로 들고 큼직한 잔에 과장된 몸짓으로 술을 따르다가 몇 센티미터를 남기고 멈춘다. 산세바스티안 사람은 치키테오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바 간다리아스에 수북하게 쌓인 핀초. ⓒ MARK READ


다음 순례지는 간바라 근방에 있는 바 간다리아스(Bar Gandarias)다. 이곳의 바닥은 구겨진 냅킨과 버려진 핀초 꼬지로 뒤덮여 있다. 이는 손님이 많다는 걸 의미하기에 좋은 징조다. 나는 메두사처럼 생긴 앙굴라(angula, 새끼 뱀장어)를 빵 위에 잔뜩 올린 핀초를 골랐는데, 바 옆에 있는 한 남자가 주문한 암염을 끼얹은 자그마한 스테이크 조각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눈치 빠른 바텐더는 이 메뉴를 ‘솔로밀로(Solomillo)’라 일러준다. “하나 드릴까요?”라고 물어본 그는 곧 미디엄 레어로 부드럽게 구운 쇠고기 조각을 내어준다. 이날 하루 종일 먹은 음식 중 단연코 최고였다.


저녁 9시 30분이 되자 바에 사람이 미어터지고, 새로 도착한 손님은 길거리로 나와 핀초와 술잔을 들고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는다. 나는 뒤늦게 나타난 지인에게 입을 맞추며 포옹하고, 케 보니타!(¡Qué bonita!, 너무 예쁜데)라 외치고, 잘 골라 입은 옷에 감탄하고, 와인을 권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30대로 보이는 여자들에게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본다. “산세바스티안 최고의 핀초는 어디에 있나요?” 베르타 유기(Berta Eugui)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구시가에 있는 바 네스토르(Bar Nestor)에 가면 스페인 최고의 토르티야(tortilla, 스페인식 오믈렛)를 맛볼 수 있어요.” 그녀의 친구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오후 1시와 저녁 8시에 하루 두 번만 파는데, 사람들이 1조각이라도 맛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죠.”  




(좌) 바의 창가에 서 있는 네스토르의 동생 티토(Tito). (우)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타파스  또는 핀초로 꼽히는 토르티야. ⓒ MARK READ


다음 날 나는 토르티야를 개시하기 15분 전 바 네스토르에 도착한다. 톱밥이 흩날리는 바닥에는 의자가 없는 테이블 하나와 벽에 고정한 긴 벤치가놓여 있다. 이상하게도 테이블 옆 벽면의 놋쇠 판에는 ‘19번 테 이블’이라고 적혀 있다. 곧 정장 차림의중년 남자 셋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토마토 샐러드와 사각 형으로 잘게 자른 스테이크를 입 안 가득 씹으며 나눠 먹는다. 나는 일단 바에 자리를 잡는다.


작은 주방에선 탁탁 치는 소리와 지글지글 볶는 소리가 들려온다. 1시가 되어가자 바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고, 음식이 나오는 길가 창구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주인장 네스토르의 아내 필라(Pilar)가 소중한 토르티야를 바 위에 올려놓더니 불규칙한 사각형 모양으로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린다. 양파는 먹음직한 캐러멜 조각 같고 감자는 아삭한 맛이 살아 있으며 모든 것이 갓 조리한 달걀에 잘 버무려져 있다. 질 좋은 식자재를 최대한 신경 써서 요리하는 것. 이게 바로 산세바스티안 사람이 가장 능숙하게 해내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완벽한 토르티야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자 필라는 유쾌하게 답한다. “하루에 두 번씩 매일 만들었죠. 거의 40년 동안 말이에요. 그렇게 해보면 당신도 비결을 알게 됩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옆에 서 있는 남자는 토르티야를 3개째 먹어치우고 있다. “스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토르티야를 만들 줄 알죠. 하지만 맛은 모두 달라요.” 그가 포크질을 하며 말을 건넨다. “네스토르의 비법은 서두르지 않는 겁니다. 저는이곳을 매일 찾는데 마치 약을 먹는 기분이에요. 컨디션이 좋지 않 을 때 이 토르티야를 먹으면 몸이 거뜬해지거든요.”


산세바스티안의 여느 훌륭한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네스토르의 식자재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이곳 토르티야의 진짜 비밀은 형체가 없는 시간인 듯하다. 수십 년간 공들여 만든 이 완벽한 요리는 모두에게 잠깐의 휴식을 선사하니까.

ⓘ 가브리엘라 라넬리가 일하는 테네도르 투어스(Tenedor Tours)는 프라이빗 핀초 투어를 운영한다. 145유로(음식과 술 포함), tenedortours.com




Tip: 집에서 토르티야 만들기 

▶ 재료(4~6인분 기준)

큼직하게 다진 중간 크기 스페인 양파 1개해바라기유 또는 향이 강하지 않은 식용유 0.5~0.75L(올리브유를 조금 첨가할 수 있지만 총량의 1/4이 넘지 않도록 주의하자), 껌질을 벗겨 큰 덩어리로 썬 감자 525g크고 신선한 달걀 4개(가급적 유기농 달걀로).  


▶ 레시피 

• 긁힌 자국이 없고 재료가 달라붙지 않는 지름 20센티미터짜리 프라이팬에 양파를 올린다. 오믈렛 팬이나 잘 길들인 주물 팬을 사용해도 좋다. 양파가 완전히 덮일 정도로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양파 조각이 춤추듯 움직일 때까지 5분간 강불에서 볶는다. 불을 줄인 다음 양파가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10분간 더 볶는다. 

• 양파를 볶던 팬에 감자를 넣고 불을 강하게 올린다. 기름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인 뒤, 감자에 포크가 부드럽게 들어갈 때까지 저어가며 20분간 더 익힌다. 이때 재료가 튀겨지거나 갈색으로 변하지 않도록 기름에 삶는 느낌으로 조리해야 한다.

• 큰 그릇에 달걀을 깨 넣는다. 

• 익힌 감자와 양파를 체에 밭쳐 기름을 뺀다. 제거한 기름은 한쪽에 잘 보관한다. 기름을 뺀 감자와 양파를 달걀이 담긴 그릇에 넣고 팬을 깨끗하게 닦는다. 

• 감자와 양파, 달걀을 살살 섞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감자와 양파에 남아 있는 열로 달걀이 뭉근해지도록

놔둔다.

• 깨끗한 팬에 감자와 양파에서 나온 기름을 2큰술 두른다. 불을 높인 뒤 섞어둔 달걀과 감자, 양파를 모두 팬에 붓는다. 이따금 팬을 돌려가며 토르티야를 움직여주거나 주걱으로 가장자리를 긁어 달라붙지 않도록 한다.

• 2분간 익힌다. 바닥이 단단해져서 토르티야 전체가 팬 안에서 쉽게 움직이고 윗면이 아직 부드러운 상태일 때 커다란 접시를 팬 위에 얹는다. 접시를 꽉 잡은 상태로 팬을 뒤집어 토르티야를 접시에 얹는다.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토르티야를 다시 조심스럽게 팬 위에 올린다.

• 강불에서 1~2분 정도 토르티야 아랫면을 완전히 익힌다. 불을 줄이고 1분간 기다린다. 팬 위에 접시를 올린 다음 뒤집어서 토르티야를 접시에 담는다. 완성된 토르티야는 부드러운 질감이 살짝 남아 있어야 한다. 웨지 형태로 자르거나 바 네스토르처럼 사각형으로 잘라 따뜻한 상태에서 맛을 보자.



글. 올라 토머스(Orla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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