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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15. 2019

오스트리아식 여름 바캉스

산과 호수, 청정한 산간 마을. 알프스산맥 동쪽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알프스의 수도

티롤

(좌) 인스부르크의 구시가와 맞닿은 강변에는 컬러풀한 가옥이 줄지어 있다. (우) 구시가의 바로크 건축 사이로 보이는 베르크이젤 스키 점프대. ⓒ 김병준


프랑스 니스에서 서서히 고도를 올린 알프스의 산줄기는 스위스와 독일,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오스트리아까지 약 1,200킬로미터로 뻗어나간다. ‘하얗고 높은 산들’을 뜻하는 알프스의 평균 고도는 2,500미터. 어지간한 높이와 풍경 정도로는 명함조차 내밀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몽블랑(Mont Blanc)이나 마터호른(Matterhorn), 돌로미티(Dolomiti) 같은 스타급 봉우리를 찾기 힘든 오스트리아 알프스가 조금 시시할지 모르겠다는 선입견이 들었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산군이 시야를 채우는 티롤주에 진입하기 전까지 말이다.


오스트리아인 상당수는 ‘알프스의 수도’를 티롤의 주도 인스부르크(Innsbruck)라 주장한다. 2,000미터 남짓의 고봉으로 에워싸인 이곳이 동계올림픽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늘어놓으면서. 1964년, 1976년 동계올림픽에 이어 2012년 유스 동계올림픽까지 인스부르크는 세 차례 겨울스포츠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도시 남단에 랜드마크처럼 우뚝 솟은 베르크이젤(Bergisel)이 올림픽의 상징적 무대. 1923년 건립 이후, 2012년 자하 하디드가 참여해 레너베이션한 현대적 스키 점프대는 한여름에도 근사한 전망을 과시하느라 분주하다. 퓨니큘러를 타고 베르크이젤의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를 남북으로 가르는 인강(Inn River)과 어우러진 도심 전경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반대편에는 이탈리아 돌로미티로 향하는 철로가 장엄한 산줄기를 따라간다.



인스부르크 구시가의 골데네스 다흘 앞 노천카페에 모여 있는 여행객. ⓒ 김병준


인스부르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 자리한 도시이기도 하다. 영화로운 과거의 기억은 구시가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박공지붕에 금박 기와 2,657개를 얹은 골데네스 다흘(Goldenes Dachl)과 새하얀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은 가장 화려한 증거물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최초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는 두 차례 인스부르크의 왕궁을 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생전 16명의 자식을 뒀는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왕가로 정략결혼을 보냈고, 그중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유명하다. 호프부르크 왕궁의 호화로운 응접실에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일군 유럽 왕가의 초상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좌) 근사한 전망을 가진 제구르베(Seegrube)의 노천 레스토랑. (우) 인스부르크의 하펠레카어에서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장엄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 고현


인스부르크가 알프스의 수도라 자긍심을 갖는 결정적 근거를 도시 뒷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하 하디드가 유작으로 남긴 노르트케테(Nordkette) 트램에 탑승하고,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면 해발 2,255미터의 하펠레카어(Hafelekar) 정상 부근까지 단 20분 만에 도달한다. 슬리퍼 차림으로 마실 가듯 오를 수 있기에 산 위에서 경험하는 장면은 여느 도심 공원과 다를 바 없다. 첩첩이 펼쳐지는 알프스 산야를 배경 삼아 덱 체어에 누워 책장을 넘기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고 맥주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느긋하게 여름의 햇살을 만끽한다. 트레킹화의 끈을 동여매는 하이커와 케이블카 아래로 가파른 산악 구간에서 페달을 밟는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이 여기가 알프스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스키 시즌이 끝난 뒤

슈투이벤 폭포의 비아 페라타 코스를 오르는 클라이머. ⓒ 고현 / 외츠탈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산악 자전거 투어. ⓒ 김병준


“사실 티롤만큼 와일드한 지역도 드물죠.” 외츠탈(Ötztal)의 피부르거 호수(Piburger See)에서 만난 크리스(Chris)가 말한다. 독일 뮌헨부터 친구들과 캠퍼밴을 끌고 여행 중인 그는 곧 클라이밍 포인트를 찾아 떠날 참이다. 호수 근방에 약 159미터로 흐르는 슈투이벤 폭포(Stuibenfall)라면 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법하다. 700여 개의 계단과 80미터 길이의 출렁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놓인 트레일을 걷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모험 같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절벽에 설치한 확보물과 로프를 붙잡고 폭포를 기어오르는 비아 페라타(via ferrata) 코스도 기다리고 있다.


외츠탈 남쪽의 졸덴(Sölden)은 겨울철 스키어의 성지로 꼽힌다. 초심자부터 국가대표 알파인스키 선수까지 자신의 기량을 테스트하기 좋은 천연 슬로프가 수십 킬로미터로 이어진다. “10년 전만 해도 외츠탈은 오직 스키 여행지였죠.” 졸덴 부근에 있는 스파 호텔 아쿠아 돔(Aqua Dom)의 매니저 토마스 미니홀트(Thomas Minihold)가 말한다. 7년 전 레너베이션을 마친 아쿠아 돔은 외츠탈 여행의 카테고리를 확장시킨 주인공이다. 3개의 돔 형태로 설계한 야외 풀과 슬라이드를 갖춘 키즈 풀, 프라이빗 실내 스파로 이뤄진 이 호텔은 아프레스키를 넘어 당일 여행자도 계절에 관계없이 즐겨 찾는다. 여기에 MTB 투어도 외츠탈의 새로운 액티비티로 떠오르는 중이다. 눈이 녹은 슬로프 자리를 지그재그로 연결한 자전거 트레일은 최적의 다운힐 코스로 손색없으며, 자전거 수납용 케이블카도 갖춰져 있다.



(좌) 가이슬라흐코글산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아이스 큐 레스토랑. (우) 엘더플라워를 가미한 레모네이드. ⓒ 김병준
007 엘리먼츠 앞으로 펼쳐진 알프스의 전경. ⓒ 김병준


지난해 여름에는 졸덴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한적한 도로의 옥외 간판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배너가 이를 알려준다. ‘007 엘리먼츠(007 Elements)’는 영화 <007 스펙터>의 촬영지인 해발 3,058미터의 가이슬라흐코글산(Gaislachkogl Mountain)에 들어선 전시관. 영화 제작진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만년설로 에워싸인 알프스의 고봉을 케이블카로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산 정상 아래 동굴을 활용한 007 엘리먼츠는 입김이 나올 만큼 서늘하다. 제임스 본드의 철두철미한 첩보 작전을 오감으로 경험하도록 전시를 구성했고, 영화에 등장한 랜드로버 디펜더를 바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놓았다. 매끈하게 유리로 감싼 아이스 큐 레스토랑(Ice Q Restaurant)은 영화 속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공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여자 주인공 매들린 스완 박사가 근무하는 클리닉이었는데, 지금은 근사한 전망과 함께 수준 높은 티롤식 고메 요리를 선보이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아웃도어 테마파크

Summer Waltz

에어리어 47에는 한여름 더위를 날릴 수상 어트랙션이 즐비하다. ⓒ 김병준


외츠탈의 약 2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부지에 자리한 에어리어 47(AREA 47)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아웃도어 테마파크다. 5월부터 10월까지 집라인, 래프팅, 캐니어닝, 웨이크 케이블 등 다양한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워터 에어리어는 유럽 최대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슬라이드와 캐논볼 등을 갖췄으며, 로지나 티피 텐트에서 하룻밤 머물러도 좋다.

ⓘ 워터 에어리어 25유로부터, area47.at




글. 고현 사진. 김병준

고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김병준은 무쏘를 끌고 유라시아를 횡단했으며, 당시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여정 동안 도합 트램 2회, 퓨니큘러 4회, 케이블카 16회, 슬라이드 1회 탑승하며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넘나들었다.

ⓘ 취재 협조 오스트리아관광청 한국사무소(austria.info/kr), 터키항공(turkishairlines.com/ko-kr)




'오스트리아식 여름 바캉스'에 이어진 이야기

오스트리아식 여름 바캉스 pt.2 - 잘츠부르커란트

오스트리아식 여름 바캉스 pt.3 - 케른텐

오스트리아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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