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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22. 2019

오지은과, 여행 이틀 전에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여행하는 이유. 

내일모레 방콕으로 떠난다는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을 만났다.
가고 싶은 곳은 웬만하면 다 다녀온 오지은, 맛집 방문 성공률 80퍼센트를 자랑하는 오지은, 여행 에세이로 웃기고 싶은 오지은, 이국의 침대에서 홀로 가사를 쓰던 오지은, 앞으로 몇 번이고 또다시 떠날 오지은을.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지난 5월 싱글 앨범 'NONE'을 냈고 이제껏 2권의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다. 여행에 관한 EBS 라디오 프로그램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heaventomorrow


최근에는 어디를 여행했나요?

연초에 잠깐 교토에 다녀온 뒤로 한동안 못 갔어요. 올봄에 싱글 앨범을 내고 나서 작은 공연을 꽤 많이 했죠. 아, 이번 목요일에 방콕에 가요. 플뢴칫(Ploenchit) 지역의 호텔에 머물 예정인데 호텔을 중심으로 3박 5일 일정을 짰어요. 온종일 호텔에만 있다가, 바로 앞에 마사지받으러 갔다가, 팟타이 먹으러 갔다가 돌아와 호텔 수영장에 누워 있을 거예요. 반경 500미터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도록 계획했어요. 방콕은 물가도 싸고 맛있는 것도 많아서 좋아요.


여행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편이죠?

네, 식당을 가장 열심히 찾아요. 제게 여행의 70퍼센트는 밥인 것 같아요. 구글 지도에서 숙소 주변을 확대해 그 주변 식당을 하나씩 다 확인하죠. 저는 그게 즐거워요. 평점 4.3 이상인 곳은 전부 체크해놓고, 현지인의 리뷰가 많을수록 신뢰해요. 맛집 방문 성공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이에요.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찾거든요. 미리 정보를 아주 많이 수집해놓되,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고 현장에서 기분에 따라 어디로 갈지 정해요. 흔히 얘기하는 대로 ‘훌쩍 떠나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면 실패할 확률이 높거든요. 아시다시피 동북아인(그녀가 여행 에세이에 즐겨 쓰는 표현)은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있나요?

힘들 때면 저도 모르게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어요. 스카이스캐너에 목적지를 ‘everywhere’로 설정하고 날짜만 입력해 가격별로 쭉 보는 거죠. 이번 방콕행 티켓도 그렇게 해서 발견했고요. 주로 혼자 떠나나요,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떠나나요? 반반인데, 두 여행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은 그저 즐겁기 위한 여행이고 혼자 가는 경우는 어떤 욕심과 목적이 있는 여행이죠. 성찰을 하거나 가사 쓰거나, 상반기를 정리하고 하반기 계획을 세우거나.


정말 가사를 쓰러 떠난 적이 있나요?

3집 타이틀곡 ‘고작’이라는 노래는 가사가 하도 안 나와서 오키나와 잔파곶의 작은 게스트하우스 이층 침대 아래 칸에 커튼을 치고 웅크리고 앉아서 썼어요. 거기까지 가야만 나오는 가사였나 봐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의 문을 여는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서일까요? 낯선 곳의 숙소까지 찾아가는 여정도 물론 도움이 됐겠죠. 만일 핀란드가 가까웠다면, 아마 핀란드 어느 지방의 작은 게스트하우스 이층 침대에 똑같이 웅크리고 앉아 썼을 거예요. 바르셀로나에 2달 사는 동안 ‘서울살이’ 같은 3집 노래 몇 곡을 쓰기도 했어요.


핀란드를 좋아하죠?

헬싱키에 1달을 머물며 3집을 구상했어요. 핀란드의 칙칙함을 좋아해요. 데스 메탈이 국민 가요이면서 생뚱맞게 무민처럼 끝내주는 것도 만들고, 이딸라 도자기도 있고요.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세련된 미끈함에 비해 핀란드에는 고유한 투박함이 있어요. 저는 유럽에 갈 때 일부러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를 경유한 적도 많아요. 공항에서 제가 좋아하는 연어 수프도 먹고요. 없으면 실망하면서 다른 걸 먹고…


헬싱키 말고 또 핀란드에서 여행한 곳이 있나요?

오래전 오로라를 보러 겨울에 핀란드 비사투파(Visatupa)의 작은 로지에 4박 정도 머문 적이 있어요. 끝내 오로라를 보지는 못했지만. 낮에는 숲 트레킹을 하고 밤에는 코코아를 마시며 오로라를 기다렸어요.


이제껏 낸 여행 에세이 2권 모두 기차 여행에 관한 것이죠.

기차를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낸 책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에서 떠난 여행은 론리플래닛이 꼽은 유럽 최고의 기차 코스 중 골라서 간 건데요. 그 리스트에서 못 간 곳 중에 여름에 어울리는 여행지를 가보고 싶어요.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 웨스트 하일랜드 라인이나 노르웨이 피오르를 보는 기차 여행요.


오지은 씨 에세이를 보며 눈물이 나기도 했고, 깔깔 웃기도 했어요.

웃기고 싶어요! 최대한 웃기려고 쓴 책이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예요. 제 음악이 진지한 편이라 공연하면서도 노래 중간중간에 멘트로 웃기며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요. 웃음에 대한 동경이 있는 듯해요. 여행 중 힘든 상황에서도 최대한 웃긴 포인트를 찾아내 거기에 집착하곤 하거든요. 에세이에 쓴 라스페치아(La Spezia)의 ‘응급실의 지배자’도 그랬죠. 응급실에서 몸은 아프고 힘든데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웃긴 거예요(내용이 궁금하다면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참고하시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여행 작가는 누구인가요?

분하지만 빌 브라이슨요. 처음 읽었을 때엔 쇼크를 받았어요.

빌 브라이슨처럼 웃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에세이를 쓸 때와 가사를 쓸 때의 감각이 어떻게 다를까요?

에세이 1권을 쓰는 데 거의 1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여행을 재구성하면서 여행을 아주 천천히 다시 하는 기분이었어요. 에세이를 쓸 때의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났을 때의 저예요. 새벽에 최대한 맑은 마음으로 쓰거든요. 가사는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버려야만 하는 마음을 모아서 써요. 에세이는 그걸 완전히 버리고 정제된 마음으로 써야 하는 글이죠. 에세이든 노래든, 쓸 때엔 정말 힘든데 일단 만들어놓고 나면 누군가에게 효용이 된다는 게 신기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일 뿐인데. 앞으로도 계속 신기해하고 싶어요.


오지은 씨와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아마도 사람은 모르는 곳을 상상하고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는데 왠지 가고 싶어’가 제 마음입니다. 저는 숙소에 누워서 ‘지금 골목 밖에 뭐가 있을까?’를 상상할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막상 가보면 실망할 수도 있잖아요.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는 순간이 좋죠.


이제껏 가장 좋았던 여행이 궁금해지네요.

음, 런던 템스 강변을 혼자 이이언 솔로 앨범을 들으며 걷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My Little Piggy’라는 곡을 30번도 넘게 들었어요. 늦봄, 5월 정도였던가, 다들 가족끼리 돌아다니고, 비눗방울이 날리고, 혼자인 건 나뿐인 것 같고, 노래는 아름답고. 엄청나게 쓸쓸한데 그게 싫지만은 않은 기억, 지금은 굉장히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런던 이층 버스에서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들은 기억도 나네요. 런던과 언니네 이발관이 꽤 잘 어울려요. 특히 5집! 2집도 괜찮아요.



오지은의 여행 TMI


비행기 통로 좌석 vs. 창가 좌석

창가 좌석. 벽에 기대 잘 수 있고, 눈앞에서 해가 뜨고 지고 별이 뜨는 것도 볼 수 있고.


책 1권 vs. 음반 1장

책 1권. 구체적으로는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


좋은 호텔 vs. 좋은 공연

좋은 호텔. 가본 곳 중 가장 호화로운 곳은 바르셀로나의 호텔 엘 팔라스(Hotel El Palace). 사실 조식만 먹으러 갔는데, 너무나 극진하게 대접해줘 감동했다.


오지은이 추천하는 방콕 여행 플레이리스트


Tahiti 80 - Heartbeat

The Beatles - Drive My Car

Getz/Gilberto - Desafinado

Chet Baker - Let’s Get Lost

Jimi Hendrix - May This Be Love



글. 이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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