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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Sep 21. 2019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하루

1920년대의 영광을 뒤로, 새로운 에너지로 떠오른 동네 LA 다운타운.

빛나는 베니스 비치와 할리우드 너머,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는 영광의 1920년대를 뒤로하고 한동안 잊혔다가 최근 다시 힙한 동네로 부상했다. 하루 동안 다운타운을 걸으며 로스앤젤레스를 바꾸는 에너지를 발견한다.



1917년 문을 연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최근 레너베이션을 거쳤다. ⓒ 이기선


로스앤젤레스를 설명하는 한 가지 단어는 다양성이다. 화려한 할리우드와 베니스(Venice), 세련된 동네로 떠오른 실버 레이크(Silver Lake), 코리아타운 등 특색이 전혀 다른 지역이 모여 로스앤젤레스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단 하루만 머물게 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바로 지금, 도시를 바꾸는 변화를 엿보기 위해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DTLA)로 향한다.


인터컨티넨탈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InterContinental Los Angeles Downtown)의 70층 로비에서 체크인을 한 뒤, 휘어진 야자수와 고풍스러운 건물을 지나 다운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그랜드 센트럴 마켓(Grand Central Market, grandcentralmarket.com)으로 간다. 휴식 시간에 짬을 내 시장을 돌아다니던 타코 노점 직원 안드레스 헤르난데스(Andrés Hernández)는 사진 찍는 내 모습을 구경하다가 말을 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헤르난데스는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하고 낮에는 시장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번다. 이는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를 이루는 무수한 이야기의 일부다. 잠시 뒤 그는 다시 헤드폰을 끼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웩슬러스 델리의 루빈 샌드위치. ⓒ 이기선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로스앤젤레스가 압축된 장소 같다. 다양한 문화권이 혼잡하게 섞여 있고, 종종 엄청난 인파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데이트를 하던 엘살바도르 식당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긴 줄을 기다릴 인내심만 있다면 이 시장에서 엘살바도르 타코와 에그 샌드위치, 중국식 완탕면까지 맛볼 수 있다. 정통 유대교식 델리 웩슬러스 델리(Wexler’s Deli, wexlersdeli.com)에서 수제 패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G&B 커피(G&B Coffee, gget.com)로 간다.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찰스 바빈스키(Charles Babinski)와 카일 그랜빌(Kyle Glanville) 듀오가 연 이 카페는 원두 사전 분쇄 방식을 선구적으로 도입했고, 직접 제조한 아몬드 밀크를 넣은 라테로 유명하다. 이곳 바리스타는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일한다. 심지어 결제할 때 “카드를 열어둘까요?”라고 물으니 카페인 애호가를 위한 논알코올 바와 다름없다. 다운타운 토박이인 옆자리 손님이 브래드버리 빌딩(Bradbury Building)과 에인절스 플라이트(Angel’s Flight)에 들러보라고 추천한다. 두 장소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화로운 로스앤젤레스를 증명하는 랜드마크다.



에인절스 플라이트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아이콘이다. ⓒ 이기선


그랜드 센트럴 마켓 건너편 에인절스 플라이트(angelsflight.org)로 향한다. 이 오렌지빛 철도 케이블카는 빌딩 숲 사이에 불시착한 타임머신처럼 보인다. 1901년 개통한 에인절스 플라이트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주민의 수고를 덜어주었으며, 한때 할리우드 사인만큼이나 유명한 도시의 아이콘이었다. 지역 재개발과 예산 부족 문제로 30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고, 21세기 들어 운행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다가 2017년 컴백했다. 동명의 형사 소설을 쓴 소설가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는 에인절스 플라이트의 의미를 멋지게 설명했다. “내게 에인절스 플라이트는 살아 있는메타포다. 올드 로스앤젤레스와 뉴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다리 말이다.” 그의 소설 속 살인 현장이든, <라라랜드>에서의 로맨틱한 키스 장소든 에인절스 플라이트는 감쪽같이 소화했다. 케이블카가 멈춰 서자 몇몇 관광객이 올라타 황급히 셔터를 누른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는다. 도착 지점에 있는 매표소 직원의 미소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다 알아요. 너무 멋지죠?’



로 DTLA의 한가로운 오후. ⓒ 이기선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아르데코 양식 등의 기념비적 건축이 수두룩한 다운타운을 탐험할 때 리사이클링 공간은 흥미롭고도 실용적인 지표가 된다. 이를테면 섬세한 철제 세공 계단을 품은 브래드버리 빌딩 1층에는 블루 보틀 커피가 자리하고, 유서 깊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시어터(United Artists Theater)에는 에이스 호텔이 들어서 있으며, 그래피티로 뒤덮인 1920년대 아이스크림 공장은 갤러리와 바버숍이 어우러진 더 컨테이너 야드(The Container Yard)가 되었다. 로 DTLA(Row DTLA, rowdtla.com)가 들어선 거대 창고 단지는 20세기 초 철로 변에 세운 시장 겸 창고 시설이었다.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의 제조 시설이 문을 닫은 2017년, 이 창고 단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총 6개에 달하는 단지에 60여 개의 상점과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도예 클래스가 진행 중인 스틸 라이프 세라믹스(Still Life Ceramics, stilllifeceramics.com)에서 지역 작가의 작품을 구경하고, 교통표지판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지나 쭉 늘어선 부티크를 따라 거닌다. 콘크리트 풍경 위로 눈부신 일요일 오후가 흘러간다.



더 래스트 북스토어는 옛 은행의 구조를 재치 있게 활용한다. ⓒ 이기선


어둑해질 무렵 더 래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 lastbookstorela.com)에 도착한다. 20세기 초의 은행을 개조한 서점에 들어서자 고대 신전에 있을 법한 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으리으리한 홀이 펼쳐진다. 서점을 설립한 조시 스펜서(Josh Spencer)는 단지 역설적인 어감이 좋아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만, 출판 시장이 꾸준히 하락세를 그리는 현실에 비춰보면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이곳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스펜서가 다운타운의 작은 아파트에 차린 온라인 전문 판매점에서 시작해, 캘리포니아 최대 규모의 독립 서점이 되었다. 책과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몽상가에게는 희망을 주는 장소다. 아직 상황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는 희망, 꿈을 꿔도 괜찮다는 희망. 서점은 2개 층에 걸쳐 새 책과 중고 서적을 포함해 25만 권에 달하는 책을 장르와 테마에 따라 구분해놓았는데, 앤티크 소품을 활용해 각 구역을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꾸며놓아 마치 책을 위한 전시실이나 전당처럼 보인다. 나는 그래픽 노블 던전과 책의 터널, 미스터리 소설 금고를 하염없이 헤맨다. 경비원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영업 종료를 외칠 때까지.




▶ LOCAL’S KNOWLEDGE

스틸 라이프 세라믹스는 몇몇 지역 작가가 협업해 운영하는 곳으로 주기적으로 도예 클래스를 연다. ⓒ 이기선

“로 DTLA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가구 · 조명 상점인 A+R과 패션 편집숍 LCD예요. 비앙카(Bianca)의 피자는 꼭 먹어보세요.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늘 어디선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아츠 디스트릭트(Arts District)의 아트 갤러리 하우저 앤드 워스(Hauser & Wirth)도 추천해요.”

– 스틸 라이프 세라믹스의 리테일 직원 매기 로스(Maggie Ross)













▶ CLIMB HIGH FOR SLEEP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도를 즐기는 방법은? 캘리포니아 최대의 옥외 전망대 OUE 스카이스페이스 LA(OUE Skyspace LA)에서 유리 슬라이드 타기 아니면 인터컨티넨탈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잠들기.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로스앤젤레스의 건축평론가 피터 레이너 밴험(Peter Reyner Banham)의 저서에서 영감받아 디자인했는데, 남부 캘리포니아만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70층 로비에서 체크인할 때부터 시작해 객실에 머무는 내내 통창 너머로 꿈같은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2019 캘리포니아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스테이크하우스 라 부셰리(La Boucherie), 높이 335미터로 미 서부에서 가장 높은 옥외 바(bar) 스파이어 73(Spire 73)이 있다.

dtla.intercontinental.com


▶ DOWNTOWN STARS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를 문화 명소로 만드는 데 공헌한 곳.


더 브로드(The Broad)

신디 셔먼,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비롯 걸출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 최근 구사마 야요이의 <미러 룸>을 추가했다. ⓘ thebroad.org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1979년 시작한 이 미술관은 마크 로스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포함해 수천 점에 이르는 전 세계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내에 2개 지점을 운영한다. ⓘ moca.org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Walt Disney Concert Hall)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테인리스스틸 외관이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풍긴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홈 공연장이며 록 밴드 피닉스부터 소니 롤린스까지 이곳에서 공연했다. ⓘ laphil.com


Tip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여행 필수 정보

인천국제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까지 유나이티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약 70만 원부터, united.com/co/kr). 론리플래닛 <베스트 캘리포니아>(안그라픽스, 1만 8,500원)와 로스앤젤레스관광청 공식 웹사이트(kr.discoverlosangeles.com)에서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운타운의 웬만한 장소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고 버스와 메트로도 잘 갖춘 편이다. 로스앤젤레스 컨서번시(Los Angeles Conservancy)는 다운타운 도보 투어를 운영하는데 아르데코, 다운타운의 역사 등 여러 테마로 프로그램을 짰다(laconservancy.org).




글/사진. 이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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