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리플래닛의 에디터와 사진가에게 요청했다. 다시 돌아가기를 꿈꾸는 일생일대 여행지 단 1곳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미션 임파서블’ 같은 그날의 혹독한 여정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2012년 11월호에 실린 ‘인생은 즐거워’ 기사에서 비롯됐다. 2017년 가을,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났을 때 나는 기사의 아말피 코스트를 떠올리며 무모한 계획을 급하게 추가했다. 로마 남쪽 으로 300킬로미터를 달려 아말피에서 밤을 보낸 다음, 아말피 코스트를 경유해 나폴리공항으로 빠져나오기. 일정상 이 모든 것을 만 20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그렇게 차를 렌트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폼페이를 지나 소렌토 반도(SorrentoPeninsula)에 접어들었을 때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아찔한 산간도로를 2시간가량 더 달린 끝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언덕 중턱에 자리한 숙소까지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낑낑대며 캐리어를 옮기고 나니 그야말로 녹초가 됐다. 테라스 밖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왔건만, 조명이 거의 없는 외진 곳이라 별 감흥을 느낄 새 없이 곧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고행 같은 여정에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운무 사이로 본연의 파란빛을 발산하는 지중해의 절경과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파스텔 톤 가옥 그리고 그 사이를 가느다랗게 잇는 아말피 코스트의 해안 도로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매혹적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쫓겨 실제 아말피 코스트를 온전히 만끽한 시간은 1시간 남짓뿐이었지만, 구불구불 해안선을 달리던 그 순간은 내 인생 최고의 드라이브로 각인됐다. 다시 아말피 코스트를 찾는다면 기필코 기약 없는 일정으로 떠날 것이다. 당시 기념품 상점에서 무심히 고른 리몬첼로도 절벽 위 근사한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홀짝이면서.
by 편집장 고현(@kohyun23)
지난 2월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조만간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수첩에 이렇게 시작하는 메모를 썼다. “L.A.는 도로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막히는 도로 위 차 안에 갇혀 있는 시간에.” 여름이 오기 전에, 4~5월쯤이 좋겠 지. 한데 이런 다짐을 한 직후에 코로나19가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신기루 같은 꿈이 탄생한 곳, 옛 영광을 찾아온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별을 밟고 지나다니고, 자유로움이 공기처럼 흐르는 곳. 짧은 취재 일정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을 나열해본다. 다운타운의 에이스 호텔 옥상에서 밤 보내기, 클리프턴스 리퍼블릭(Clifton’s Republic)의 네버랜드 같은 실내에서 공연 보기, 베니스 해변에 하염없이 누워 있기…. 대신, 요즘엔 스케이트보드를 연습하고 있다. 언젠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탈 수 있기를 막연히 바라면서. 다시 여름이 오기 전에, 4~5월쯤이 좋겠지.
by 에디터 이기선(@lee.kisun)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캅카스 산맥.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 산맥으로 알려진 곳이다. 조지아에서 외길 군사도로를 따라 북상하다가 러시아 국경에 닿기 전,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라는 마을이 나온다. 한밤중 스테판츠민다에 도착해 마을에 하나뿐인 호텔에서 잔 다음 날 아침, 숙소 창문 커튼 사이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새벽 햇살이 우뚝 솟은 카즈베기(Kazbegi)산을 비추면서 붉은 기운이 만년설을 타고 서서히 아래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붉은색이 주황색, 노란색으로 바뀌더니 이내 산봉우리는 하얀 광채를 뿜어냈다. 해발 5,033미터로 조지아 제3의 고봉인 카즈베기산은 백두산처럼 화산 분화로 생겨난 성층화산이다. 장엄한 카리스마를 지닌 카즈베기산의 매력은 산 아래 언덕에 있는 자그마한 성당 덕분에 더욱 빛이 난다.
성당이 서 있는 해발 2,170미터의 언덕 위에 올라가면 돌로 만든 성당 건물은 작기는커녕 꽤 우람하다. 그러나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거대한 카즈베기산을 배경으로 두고 자리한 이 성당은 아주 작게, 마치 장난감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조지아어로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라 불리는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Gergeti Trinity Church)은 14세기에 지은 것이다. 마을에서 성당까지 가려면 떡갈나무 숲을 지나는데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녹색 융단이 깔린 듯한 초원과 하늘 위로 높게 솟아 오른 설산 그리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석조 성당. 이런 요소가 조합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하얗게 빛나는 만년설을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장소는 세상에 흔치 않다. 물론 히말라야에 가면 만년설을 품은 산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고봉들은 대부분 깊은 산중에 있어 제대로 보려면 산속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최근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까지 차량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닦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걸어 올라가면서 느끼던 감흥은 좀 줄어들겠지만 다음에는 좀 더 편하게 캅카스의 장관을 만나고 싶다.
by 사진가 박종우(parkjongwoo.net)
사실 여행지에서 길을 잃어본 기억은 많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구글맵에 접속하면 내가 가야 할 최적의 경로를 알아서 찾아주기에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여행이 좀 더 빨라지고 정교해진 탓에 내가 보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음식은 사람들의 리뷰와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매체, 브랜드와 취재를 다니면서 여행에 대한 설렘이나 두려움, 기대 같은 것이 차츰 사라졌다. 미리 짜놓은 동선 안에서만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7년 방문한 대만 윈린(雲林) 역시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취재로 떠났지만 다른 여정과 조금은 달랐다. 일단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된 취재였다. 1년에 단 한 번 타이완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 격인 원소절(元宵節)을 기념하기 위해 등불 축제를 여는데, 그해 개최지인 윈린의 등불축제와 도시를 취재하는 일정이었다. 조용한 소도시지만, 가이드 없이 도착한 첫날부터 에디터와 나는 헤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이가 없어 거의 의사소통이 불 가능했고, 온통 한자어로 가득한 거리에서 숙소와 저녁을 해결할 만한 식당을 찾는 일부터 곤혹스러웠다. 한참 골목 여기저기를 헤매다 찾은 결론은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과 컵라면 한 그릇. 프로 여행가라 자부하던 관념이 모두 사라진 이 소박한 저녁 식사가 도리어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다행히 다음 날부터는 타이난(臺南) 출신 가이드 케빈(Kevin)을 만나 남은 일정 동안 윈린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곳은 사실 특별한 볼거리나 멋진 풍경이 없는 소박한 동네지만,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당시 취재를 담당한 유미정 에디터의 글처럼 ‘사소한 일상을 만나는 비일상적인 여정’.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긴이 시점에 문득 그곳을 떠올리는 이유도 내가 그리워하는 진정한 여행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by 사진가 김주원(joowon.myportfolio.com)
편집. 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