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에서 발견한 지구 번영의 조건.
세계적 권위의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생물종 내 다양성을 강조한다. 가축화된 닭은 복제 닭에 가깝다. 인간이 알을 잘 낳는 종만 인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비슷해진 유전 형질은 한 마리가 병들면 전체가 몰살당하는 조류독감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 인간 사회에서도 다양성 부족은 부작용을 낳는다. 문화적으로 동일해진 사회는 창의력이 고갈되고 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다. 어떻게 하면 다양성이라는 금과옥조를 지킬 수 있을까? 멸종되었던 황새의 서식지를 마련하고, 도서관에 다문화 섹션을 마련하는 등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씨름하는 충남 사람들을 만났다.
은성농원 정제민 대표는 국내 최초로 10년 전 사과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여러대의 경험이 축적된 해외 와이너리와 겨루자니 쉽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술 붓기였어요. 한국 소믈리에들은 국내산 와인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그런데 최근 국내 와인을 잘 모른다는 자성이 일고 와인 맛도 성숙해지면서 특급 호텔에서도 많이 찾고 있어요.” 은성농원의 사과 와인 ‘추사’는 우리술품평회에서 과실주 대상을, 세계적 권위의 몽드 셀렉션에서 동메달을 수상했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과일 와인을 만드는 데는 난관이 많다. “식감은 떨어져도 가공용 사과로 술을 담그면 맛이 더 좋아요. 국내에서는 그런 이해가 부족해 생식용 과일만 생산하죠.” 그는 국산주가 뿌리내리려면 술 이름을 들었을 때 지역이 떠올라야 한다고도 말한다. “농가에서 주류를 생산하는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château, 포도 농원)’ 개념이 자리 잡아야 해요. ‘누구네 밭의 어떤 품종으로 만들었다’가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거죠.” 추사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자 달콤함이 혀를 감쌌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금빛 액체는 입안 가득 향긋함을 남겼다.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몽로 107-25
1971년 4월 1일 <동아일보>에 멸종 위기 황새 한 쌍이 발견되었다는 반가운 뉴스가 실렸다. 그러나 이틀 후 뉴스는 뜻밖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수컷 황새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황새는 100km 거리의 사물도 볼 수 있어요. 수컷 황새가 둥지 근처에 나타난 사냥꾼을 발견하고 어미와 새끼를 지키기 위해 대신 총에 맞은 거죠.” 강희춘 자연생태해설가가 들려주는 사연에 탄식이 터졌다.
그 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러시아 등지로부터 황새를 입양, 멸종 45년 만에 자연 번식에 성공했다. 방사지로는 논밭에 미꾸리 같은 먹이가 풍부한 예산군이 선정됐다. 예산 황새공원에는 황새의 습성과 논 생태계에서 황새의 우산종으로서의 역할 등에 대해 알려주는 황새문화관, 황새 120여 마리가 자라는 비공개 구역인 야외 습지원 등이 있다. 운이 좋으면 길이가 2m에 달하는 날개로 하늘을 가르는 황새를 볼 수 있다.
ⓘ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대리길 62-19
길이 200m가 넘는 굴 끝까지 항아리가 줄 지어 있다. 토굴 속 온도는 냉난방기 없이 연중 14~16℃를 유지한다. 광천 토굴 새우젓은 금광에 보관한 새우젓이 맛이 훨씬 깊고 풍성하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소비되기 시작했다. “차가운 새우는 절대 안 사요. 유산균이 죽어서 이 맛이 안 나죠.” 해방 후 곡괭이로 파서 만든 토굴에서 3대가 함께 새우젓을 생산하는 중앙토굴새우젓 신근석 대표의 설명이다. 토굴 발효 새우젓은 핑크빛이 돌며 감칠맛이 깊고 뒷맛이 깔끔하다. “수입 새우젓 은 유통을 위해 소금을 배로 넣고, 그 소금의 쓴맛을 가리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넣어요. 잘 숙성시킨 국내산 새우젓은 그럴 필요가 없죠.”
새우젓은 음력 6월에 담근 육젓을 최고로 친다. 충분히 자란 산란기 직전의 참새우 육젓은 새우 살이 통통하다. 광천 토굴 육젓의 가격은 한 드럼당 2,000만 원에 달한다. 이 귀한 새우젓을 토굴에 쌓아둔 신근석 대표의 표정이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이렇게 비싸면 누가 찾겠어요. 중매인의 농간으로 새우 값이 너무 올랐어요. 새우젓 생산자끼리 새우를 사지 말자고 했는데 몰래 사더라고요.” 신 대표의 고민에 공감하는 생산자가 늘어난다면 우리는 더 건강한 새우젓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 144
아이들이 빈백에 누워 뭔가에 깊이 빠져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휴대폰이 아닌 책. 어른들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나 라운지 체어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들어서 있다. 누군가는 등을 바짝 세우고, 또 누군가는 몸을 늘어뜨린 채. 충남도서관의 독서 풍경은 이 공간의 실내디자인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도서관에서 한 달 살기는 없나요?” 일행 중 한 명이 휴양지에 온 듯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2018년 개관한 충남도서관은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최우수 등급을 획득하고 유니버설 건축설계 디자인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장애인과 고령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인정받았다. 2층 높이까지 뻗은 독서 계단 끝에 휠체어 리프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의 서적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섹션도 눈에 띈다. “충남도서관이 늘 푸른 지식의 상록수가 되길 바랍니다. 물리적으로는 인정받았으니 이제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자 해요. 큐레이터, 독서치유상담가, 빅데이터 전문가 등 전문 인력 확충이 절실합니다.” 충남도서관장 나병준의 바람이다.
ⓘ 충남 홍성군 홍북읍 도청대로 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