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LO(You Only Live Once)나 워라밸(Work Life Balance)과 같이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며 즐기는 삶이 큰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 몇 년간 관광산업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호황기를 맞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떠나 힐링을 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문화가 있는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요즘,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날로 늘어남과 동시에 다시금 국내 제주 여행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사시사철 색다른 모습의 자연과 다양한 문화를 간직한 제주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미 제주의 유명한 장소들을 탐방했거나 조금 더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면 테마가 있는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떨까.
제주는 전국 17개 시도 중 등록된 국·공·사립 미술관 수(21개)가 네 번째로 많은데(경기 52개, 서울 45개, 전남 32개 순), 인구당 시설 수를 살펴보면 전국에서 가장 많아 양질의 미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트 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문화체육관광부 2019년 1월 통계 기준). 게다가 제주에는 국·공·사립 미술관뿐 아니라 동서남북 곳곳에 숨은 보석 같은 예술적 장소들이 있어 ‘미술’을 테마로 한 제주 아트 투어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여기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하는 제주 아트 투어로 특별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에이트 인스티튜트의 여행 코스를 따라 새로운 제주를 만나보자.
제주를 예술의 섬으로 일컫게 된 가장 핵심적인 장소를 말한다면 단연 아라리오 뮤지엄을 꼽을 수 있다. 2014년 ‘영혼을 머금고 있는 미술관’을 지향하며 문을 열어 1990년대 제주 도심의 관문 역할을 한 구시가지의 사무 공간, 영화관, 숙박 시설의 3개 건물을 레너베이션했다. 이 공간들은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세계적 수준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해외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한국 작가를 포함한 아시아 작가들의 성장세에 주목하면서 특정 시기, 국가, 매체에 한정되지 않은 폭넓은 장르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또한 YBA 영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부터 세계 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 신표현주의 흐름 속 주요 작가들을 망라하는 아라리오 뮤지엄의 전시는 단순히 선진화된 유럽, 미주 미술만이 아닌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의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주옥같은 라인업을 보여준다. 이는 21세기 가장 동시대적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가히 국내 최고 수준의 컬렉션이라 할 만하다.
또한 아라리오 뮤지엄을 방문한다면, 아라리오가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와 합작해 지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도 둘러보길 추천한다. 지역의 개성을 살린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디앤디파트먼트숍’을 비롯해 제주산 식재료를 사용하는 ‘d식당’, 디자인 제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사람들이 머물렀던 장소는 그 시간의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 소중한 공간이 된다. 아라리오 뮤지엄과 같이 오랜 시간 기억을 축적한 공간들을 새롭게 레너베이션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한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 아름다운 혁신 사례 중 하나로 제주 중선농원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문정인·김재옥 부부가 선친의 노고가 서려 있는 농원을 보존하기 위해 건축가 김원 선생과 그의 제자 최원석 소장, 그리고 갤러리2 중선농원을 운영하는 정재호 대표와 고심 끝에 만들어낸 결과다.
감귤 농원의 큰 창고, 작은 창고, 거주 공간은 각각 미술 전시 공간, 카페 및 예술 인문 도서관 ‘청신재’, 게스트하우스 ‘태려장’이 되었다. 감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비영리 복합 문화 공간은 시간의 흔적과 자연적 요소를 최대한 살려 물리적 혹은 시각적으로 건물 내부와 외부의 자연을 이어준다. 건축물의 옛 구조를 그대로 살려 보존하는 등 자연을 훼손하지도, 자연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도 않은 채로 존재한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공간에 자리한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는 문화 공간으로서 전시뿐 아니라 강연을 진행하기도 하며, 근처 커뮤니티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작업을 통한 전시를 펼치기도 한다. 자연과 함께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기억, 예술, 그리고 새롭게 창출되는 가치가 공간을 더욱더 풍요롭게 한다. 공간의 이름마저 부모님 함자에서 딴 ‘태려’와 손주들의 중간 이름을 딴 ‘청신’으로 지을 정도로 의미가 깊은 만큼 이곳을 방문한다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글. 박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