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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an 18. 2021

고즈넉하게, 혼자서 안동 여행

시대마다 이념과 문화가 달라졌음에도 안동은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과거의 유산을 잘 보존한 덕에 정신문화의 수도로 자리 잡은 안동. 힘차게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안동의 어제와 오늘을 둘러보았다.





성리학의 근간

도산서원. ⓒ 임학현

안동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도산서원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원은 전국 곳곳에 600여 개가 분포돼 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대한민국 대표 서원으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근간을 세운 퇴계 이황이 설계하고 머물렀던 영남 사림의 중심이라는 점이다.


지금이야 잘 닦인 산책로로 서원에 편히 들어설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과거의 문인과 유생들은 낙동강 옆 좁은 길을 통해 드나들어야 했다. “우리 선조들은 학문을 닦는 것과 산에 오르는 것을 동일시했어요. 길을 거닐며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그 이치를 삶에 투영한 거죠.” 김정희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과거 시험이 치러지던 시사단을 지나 500년 된 왕버들나무를 뒤로하니 서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나타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직접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과 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산서원으로 나뉜다. 서원 중심에 위치한 대강당인 전교당과 퇴계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는 보물로 지정됐을 만큼 가치가 높다.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며 거처하던 도산서당과 학문에 열중하라는 뜻에서 ‘공(工)’자 모양으로 지은 기숙사 농운정사는 퇴계 생전에 축조한 것이다. 농운정사 창문의 높낮이와 위치가 제각각인 것이 독특한데, 자유로운 모양으로 내부에 생기를 불어넣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다름의 미학일까. 마루에 걸터앉자 춤을 추듯 불어오는 바람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느긋한 강물이 흐르는 마을

맹개마을. ⓒ 임학현
토굴에서 숙성되는 중인 진맥소주. ⓒ 임학현

농암종택 근처에 위치한 맹개마을은 최근 안동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정확히는 농암종택에서 내려와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맹개는 ‘해가 잘 드는 외딴 강 마을’이라는 뜻. 덜컹거리는 트랙터에 잠시 몸을 맡겨야만 비로소 마을에 닿을 수 있다. 이윽고 절벽 아래 흐르는 강줄기를 배경으로 고요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맹개마을은 주민들이 모두 떠나 버려진 척박한 땅이었다. 14년 전 귀농을 준비하며 우연히 이곳을 발견한 농촌 공동체 ‘밀과노닐다’의 박성호 대표가 하나둘 매만진 덕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 밀과 메밀을 재배하는 밭과 이를 재료로 만든 술을 보관하는 토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소목화당과 별채 정도가 마을의 전부. 그렇지만 여느 곳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퇴계 이황도 이곳을 자주 지나며 시조에 그 흔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밀과노닐다 역시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진맥소주다. “보통 안동 소주는 쌀이나 찹쌀이 주재료예요.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소주는 밀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 대표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밀을 예끼마을의 술도가에서 누룩과 섞어 담고, 이를 가져다가 토굴에서 발효 및 숙성 과정을 거쳐 증류하면 진맥소주가 완성된다. 한 입 머금자 입안 가득 밀꽃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마을 풍경과 꼭 어울리는 맛이다. 그렇게 맹개마을은 안동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내고 있었다.






뿌리 깊은 선비 문화

삼신당. ⓒ 임학현

낙동강이 감싸 안고 흐른다고 해서 이름 붙은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지금도 마을에 거주하는 후손들 덕에 살아 있는 유산으로 여겨진다.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은 마을 중앙에 위치한 삼신당. 600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 주위로 많은 이의 소원이 적힌 종이가 걸려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와와 초가지붕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의 집들도 삼신당을 바라보게 배치돼 있다. 풍산에 살던 류종혜공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처음 지은 집인 양진당과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사대부 가옥의 전형적 형태를 띠는 화경당이 대표 건축물이다. 한두 시간이면 마을 전체를 간단히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어찌 쉽게 가늠할 수 있으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춤으로 알려진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이곳에서 비롯했다. 서낭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별신굿의 일환으로, 탈을 쓰고 불교의 타락상과 양반에 대한 풍자, 서민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양반들이 불놀이와 시회를 즐겼다는 선유줄불놀이와 함께 현재까지 전승되며 마을의 의의를 더하고 있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삼신당의 나무처럼 하회마을은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해왔다.



전혜라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사진가 임학현과 이번 안동 취재에 동행했다.






글. 전혜라 사진.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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