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Jul 13. 2015

천년 숲의 고장, 함양에 사는 사람

The Forest of Thousand Years

볕이 넘실대는 남쪽 고장에 깊고 깊은 천년의 숲을 품은 도시가 있다. 함양에서 시를 쓰고 술을 빚고 꽃을 말리는 이들이 들려주는 경상남도 함양의 매력.


함양에는 천년 숲이 있다

상림을 산책하는 박행달 시인 © 조지영

함양(咸陽). 햇살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이 둘러싸고 첩첩이 너른 산이 솟은 함양의 공기는 유독 청명하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1,120년 된 인공 숲이 자리한다. 길이 1.6킬로미터, 면적 21만 제곱미터. 참나무·서어나무·느티나무 등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이곳에 서식한다. 평균 수령은 200년. 천년 전에 있던 첫 나무부터 6세대에 걸쳐 내려온 후손이다. 다람쥐, 원앙, 딱따구리와 참새보다 작은 박동새도 이곳에 산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상림공원 초입을 점령한 봄날 오전. 햇살을 받으며 풀밭에 주저앉아 있는 <타워맨> 앞에서 관광 해설사이자 시인인 박행달 씨를 만났다. 중세 유럽의 교회 건물을 의인화해 만든 <타워맨>은 덴마크 작가 란디(Randi)와 카트린(Katrine)의 목재 설치 작품. 우리는 신이 나 조잘대는 무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상림 산책을 시작한다. 오늘날 상림공원은 숲을 따라 울타리를 가지런히 세우고 길을 닦아놓았다. 그럼에도 정돈된 길 너머에서 서로 뒤얽혀 제멋대로 자라는 나무는 야생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는 짙푸른 나뭇잎, 붓질한 듯한 검은 나뭇가지의 곡선. 짙은 공기에는 천년의 세월이 흐른다. 상림은 숲과 공원 사이, 그 어딘가의 공간이다.


박행달 씨는 스무 살에 함양에 온 이래 30년째 매일 혼자 상림을 산책한다. 그녀뿐 아니라 함양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상림에 온다. “천년 동안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된 숲도 없어요. 게다가 시내 바로 옆에, 그것도 평지에 있어 언제라도 쉽게 산책할 수 있죠.” 산책 도중에 그녀는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공원 중간쯤에 이르니 사운정이 나온다. 1,000년 전 홍수 방지 목적으로 상림 숲을 조성한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세기 초 지은 정자다. 우리는 거기 앉아서 중앙산책로를 거니는 이를 구경한다. “함양 사람의 안방 같은 곳이죠. 심신이 아픈 사람은 이곳에 와서 위로를 받아요."


다시 길을 출발한다. 이내 한편에 넓고 평평한 마당바위가 나온다. “저 바위에 자주 앉아요. 등 돌리고 앉아 한참 동안 숲을 바라보고 있지요.” 그 옆을 다람쥐가 휙 지나간다.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만 산다는 날다람쥐도 이따금 볼 수 있다고. 길은 점차 좁아진다. 그녀는 시 이야기를 꺼낸다. “상림에 오면 언제든 영감을 받아요. 어디든 주저앉아 시를 써 내려가곤 하지요. 이곳에서는 날것의 얼굴을 보여주는 시를 쓰게 돼요.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하는 시요. 한번은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어 한밤중에 자동차를 몰고 무작정 달렸죠. 도착하고 보니 상림이더라고요. 여기에서 모든 위안을 받았어요.”


“여기가 상림의 끝이에요.” 길 끝에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세찬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처음 물레방아를 만든 곳이 함양 안의면이거든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예요.” 물레방아를 지나 돌아가니 오른편으로 울창한 숲이, 왼편으로 너른 연못이 펼쳐진다. 상림공원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연못. 여름이면 150여 종의 붉고 흰 연꽃이 뒤덮지만 아직은 맑은 수면 위로 푸른 하늘만 비친다. 바깥에서 본 숲은 유독 깊고 신비로워 보인다. 숲 가장자리에 희고 넓적한 으아리꽃이 피어 있다. 어디선가 ‘따따따딱’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솔길을 가로질러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상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인공 수로를 따라 걷는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해 울타리를 넘어 어둑한 숲으로 들어가본다. 몇 발짝 떼었을 뿐인데 공기가 전혀 다르다. 나무 사이에 한참을 서서 천년 숲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상림공원의 산책로. © 조지영

동네 사랑방이 된 카페 이야기

동네 사랑방 여주인, 카페 빈둥의 이은진 사장 © 조지영

오후 3시 함양 읍내. 여느 때처럼 문을 활짝 열어둔 카페 빈둥 안에는 아주머니 5~6명이 모여 앉아 언성을 높인다. “여긴 지역사회니까.” “그러니까 호칭을 통일하자고.” 한쪽에는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평화로운 얼굴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카페 주인 이은진 씨다. 반대편 구석 자리에서는 말라깽이 소녀가 앉아 동화책을 보고 있다.


이은진 씨는 아메리카노 2잔을 내어주곤 카페를 열게 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 생각했어요. 이대로 계속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우선은 몸부터 옮겨놓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대책 없이요.” 평생 살던 서울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함양으로. 낭만적이고 무모한 귀촌 이래 3년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손님이 올까?’ 싶던 카페는 함양 사람의 사랑방이 되었다.


어느새 휴전 협정을 체결한 아주머니들은 카페를 나서며 이은진 씨에게 손을 흔든다. “저와 남편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교류하는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여기선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다 해요. 영화를 상영하고 물품 판매도 대행하고 공연도 하고. 계절마다 한 번씩 ‘빈둥은 장날’이란 마켓도 열어요. 영리 목적이 아니라 하루 재미있게 놀자는 취지죠. 밤에는 맥주를 판매하고 재즈를 틀어놓는 펍이 되기도 하고요.” 카페 구석구석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가 삐뚤빼뚤 그린 그림, 서툴게 만든 초와 공예품, 청년 음악가 응원 프로젝트 포스터, 계간 문예지 <지글스> 봄호(‘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자질구레한 카탈로그, 한쪽 벽면에 빼곡한 책. “여긴 언제든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공간이 돼요. 함양에 오래 산 분들께는 별스러운 공간일 수도 있어요. 함양에 이런 게 생겼네? 하시겠죠. 지역에 없던 열린 공간이에요.” 카페 이름이 ‘빈둥’이라 카페 주인도 빈둥대기만 할 줄 알았더니 정반대다. “자본이 하는 일에서 벗어나 빈둥대고 싶다는 뜻이에요. 얕은 의미가 아니죠. 빈둥거린다고 해서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카페에 들어선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이은진 씨를 찾더니 선 채로 지역 농산물 마켓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이은진 씨는 흥미로운 얼굴로 경청한다. 함양 사람은 다들 오지랖이 넓은 모양인지 카페 빈둥에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내러 오는 이가 많다. “카페를 찾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함양에 대해 알게 됐어요. 여기선 서로 돌봐줘요. 서울에선 돌봄을 개념적으로 이야기해요. 돌봄에 대해 낭만적으로만 생각했죠. 그걸 함양에 와서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작은 도시가 가진 장점이죠.” 두 딸이 다니는 학교와 남편이 일구는 밭도 카페 손님이 알려준 정보 덕분이다. “저는 여기서 엄청 많이 받아요. 밥도 받고, 반찬도 갖다 주시고, 저 상자에 담긴 책도 다 주신 거예요. 여긴 경계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히 그녀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저도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 바람 집어넣는 일 되게 좋아해요. 여기에 고등학생 죽순이 그룹이 많아요. 그중 빵 굽는 것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어 한번 제대로 구워보라고 부추겼어요. 그 빵을 마켓에서 팔았답니다.”


카페 빈둥에 1시간만 앉아 있으면 초등학생부터 미나리 파는 할머니까지 함양 사람을 다 만나는 듯하다. 아주머니가 떠나자 책가방을 멘 소년 셋이 카페로 들어선다. 이은진 씨는 반갑게 맞는다. “안녕! 어서 와.” 아이들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아가씨 옆 테이블에 익숙한 듯 자리를 잡더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문제집을 뒤적거린다. 물론 커피 주문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이은진 씨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면 단위 학생들은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맞춰야 하거든요.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카페에 손님이 없으면 아무 때나 와 있어도 된다고 했죠.”


해가 기울어간다. “니 여기 있었노!” 카페에서 노닥거리다 엄마에게 들킨 소년은 황급히 도망쳐버린다. “꿈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커피 맛있다고 할 때 제일 좋아요.” 그거면 충분하다. 여태 그녀의 꿈 얘길 실컷 들었으니까.

카페 빈둥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시간을 보낸다. © 조지영

깊고 깊은 골짝에서 빚는 막걸리

막걸리 빚는 남자 안의양조장 이성진 대표. © 조지영

“술 안 마셔요.” 매일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 주인의 대답치곤 의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가 솔직히 고백한다. “중학교 때 몰래 우리 양조장 에서 막걸리 들고 나와 친구들이랑 같이 마시고 그랬죠. 젊을 땐 이 술 저 술 다 마셨어요.” 그제야 안의도가 4대 전승자다워 보인다. ‘도가’란 양조장을 뜻한다.


우리는 허름한 단층 건물의 양조장에 딸린 사무실에서 막걸리 몇 병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한낮이지만 어둑하고 서늘한 건물 안에는 막걸리 특유의 내음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함양 북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안의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안의양조장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다. 덕분에 동네 사람이 언제든 들러 갓 만든 막걸리를 사가곤 한다. 현재 이곳에서 생산하는 술은 수제 탁주인 여유와 안의막걸리 2종류. 안의면의 다른 식당과 가게에서도 안의양조장 막걸리를 쉽게 살 수 있지만 꼭 안의양조장에 와서 직접 사기를 고집하는 단골손님이 많다. 이성진 대표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00년 가까운 세월을 간직한 고즈넉한 분위기는 단지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안의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 조지영

바로 이곳에서 이성진 씨는 아버지가 막걸리 빚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는 서울에서 6년 남짓 회사를 다니다 2007년 고향으로 내려와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없앨 수 없어서요. 막걸리 만드는 게 힘쓰는 일인데 아버지가 몸이 편찮아지셨거든요. 제겐 당연한 일이었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걸 지켜보면서 ‘언젠가 나도 하겠지’ 생각했으니까요.” 평생 막걸리를 만든 노인은 이제 아들이 빚은 막걸리를 하루에 4~5병씩 마신다. “좋다”는 한마디 평이 전부지만.


“아버지 때부터 최고라고 했어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술이죠.” 사실 산과 물이 맑기로 이름난 고장에 함양에서 오래되기로 꼽는 양조장이 자리하고 막걸리 맛도 일품이라는 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이성진 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안의는 함양에서 가장 넓은 면이에요. 물이 많은 고장이기도 하고요. 황석산, 기백산이 둘러싸고 금호강이 흐릅니다. 용추폭포와 화림동계곡의 물이 흘러 내려와 여기서 만나죠.” 장장 23킬로미터가 넘는 계곡을 따라 조선 시대 정자 8채가 자리해 팔당팔정으로 소문난 화림동계곡이 여기에서 차로 단 20분 거리. 선비들이 시를 읊고 막걸리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긴 그곳은 이성진 씨가 매일 아침 막걸리를 배달하러 달리는 코스다. “제일 멋있는 정자가 농월정이었어요. 어릴 때 많이 놀았지요. 계곡 어디로 가면 되는지, 어디가 위험한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계곡 따라 달리 면 아주 좋죠. 봄에는 벚꽃이 도로 양쪽으로 피어 멋있어요. 벚꽃이 휘날릴 때도 멋있죠. 물론 요즘처럼 파랗게 우거진 것도 좋고요.” ‘막걸리 드라이브’ 얘기를 할 때만큼은 그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살짝 들뜨고 풍류객의 얼굴이 비친다.

그런 순간을 빼면 이성진 씨는 영락없이 과묵하고 부지런한 양조장 주인이다. 고된 양조장 일을 그는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아침에 술 걸러놓고 1바퀴 돌고 오후에 돌아와서 일하죠.” 물론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일주일에 막걸리를 두세 차례 만드는데요. 밑술을 만들고 밥을 지어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요. 시간마다 저어줘야 해요. 그러니 계속 양조장에 붙어 있어야 하죠. 다 만드는 데 1달 정도 걸려요. 밤늦게까지 일하는 때도 많아요.” 지금은 어머니와 단둘이 하거나 혼자서 일하지만 한때는 안의면이 북적거렸고 양조장에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성진 씨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땐 여기에 한량이 많이 살았어요. 앉은자리에서 막걸리 1말씩 드시는 분도 있었어요. 저희 양조장에서는 하루에 100말 넘게 빚었어요. 엄청 장사 잘됐죠. 동이 나서 더 못 팔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많이 줄어든 거죠.”


화려한 시절을 거친 양조장을 이어받은 그는 “딱히 소신은 없다”고 무뚝뚝하게 말한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막걸리는 양조장마다 맛이 다 달라요. 같은 재료를 써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르죠. 만드는 시간, 온도, 날씨, 물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잘 만든 막걸리에서는 향긋한 과일 냄새가 나요. 그리고 비 내리는 소리가 나죠.”

이제 발효된 막걸리를 병에 담기 위해 작업실로 들어갈 시간이다. 그와 작별한 후 화림동계곡을 향해 차를 달린다. 찬란한 햇살 아래 말간 수정빛으로 반짝이는 계곡물이 세찬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한복판에 자리한 거연정. 막걸리 마시기에 딱이다.

거연정 앞을 흐르는 화림동계곡. © 조지영

관련기사

천년 숲의 고장, 함양에 사는 사람 Part 2

> 천년 숲의 고장, 함양에 사는 사람 Part 3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친구가 되어 여행 정보도 받고, 다양한 이벤트까지 참여하세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페이스북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카카오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