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헤랑가르(Mehrangarh)
메헤랑가르(Mehrangarh) 성벽 아래, 조드푸르의 푸른 지붕들이 아득한 배경이 되었다. 해발 120미터, 거대한 바위산 위에 솟아 있는 이 '태양의 요새'를 오르는 내 발걸음은 유난히 느렸다. 붉은색 성채의 웅장함 속에서 나는 역사가 남긴 가장 어둡고 강렬한 흔적, '사티(Sati)'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티는 남편이 사망했을 때 아내가 스스로 남편의 장례 화장터에 몸을 던져 순사(殉死)하는 인도의 옛 풍습이다. 이 잔혹한 전통은 문득 우리 고대 왕국의 '순장(殉葬)'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산 채로 주군의 무덤에 묻혀야 했던 존재들. 한쪽은 불길 속으로, 다른 쪽은 흙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들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는 점에서 두 전통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세월이 덧칠할 수 없는 슬픔 :
가파른 진입로를 따라 성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성문 중 하나인 '로하 폴(Loha Pol)'에 다다랐을 때, 나는 마침내 그 흔적을 마주했다. 문 안쪽 벽면에는 붉은 안료로 찍힌 수많은 여인들의 손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무선 헤드폰 가이드의 해설은 건조했지만, 벽에 박제된 손자국들의 서사는 묵직한 돌벽을 뚫고 나올 듯 강렬했다. 이 자국들은 1843년 마하라자 만 싱(Maharaja Man Singh)이 사망했을 때,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 그의 왕비와 후궁들이 마지막으로 벽에 남긴 흔적이다.
열다섯 쌍의 손바닥 :
왕권을 상징하는 굳건한 성벽에 찍힌 이 손자국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사랑과 애도라는 미명 아래, 한 인간의 삶이 끝나는 순간에 남겨진 지울 수 없는 항변처럼 보였다. 그들의 피부가 화염 속으로 사라지기 전, 돌에 새긴 마지막 접촉 – 그 순간 그녀들은 인간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벽 아래의 대비와 왕권의 종말 :
성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블루 시티(Blue city)‘ 조드푸르는 푸른색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펼쳐져 보인다. 이 파란색은 원래 브라만 계층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계급과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집까지도 칠해져 평등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성벽 아래 보통 사람들의 삶은 변화하고 진화해왔다.
하지만 성벽 안, 웅장한 궁전(마할)들의 화려함 뒤편에 남겨진 로하 폴의 손자국은 여전히 500년 전의 권위와 관습에 갇혀 있었다. 이제 사티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그 슬픈 '기념비'는 마치 역사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처럼 남아있다.
"지배 계층의 영광을 위해 치러진 이름 없는 희생들은 과연 역사의 일부로 정당하게 기억되고 있을까?"
그러나 정작 이 성을 통치했던 왕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47년 인도 독립이라는 격변의 해, 조드푸르 마르와르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는 마하라자 한완트 싱(Hanwant Singh, 1923~1952)이었다. 그는 즉위와 동시에 자신의 왕국을 해방된 인도 연방에 합병시키는 역할을 해야 했다. 즉, 500년 가까이 이 거대한 요새를 기반으로 사막 왕국을 지배했던 왕조의 주권을 스스로 내놓은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하 폴의 손자국이 상징하는 사티 관습의 쇠퇴와 폐지의 과정은 그 관습을 가능하게 했던 왕권 자체도 마지막 군주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즉, 로하 폴의 손자국이 과거의 여성들에게 부과되었던 잔혹한 희생을 보여준다면, 마하라자 한완트 싱의 역할은 시대의 변화 앞에 주권을 내려놓아야 했던 남성 통치자의 마지막 임무를 상징한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붉은 손자국을 바라보았다. 왕실의 화려한 유물들(무기, 코끼리 의자, 보석)이 가득한 박물관보다, 이 작은 붉은 흔적들이 이 성의 가장 강렬한 '전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어른거리는 고통이...., 성을 내려가는 내내, 나는 현지 보통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이 잊혀진 손자국들의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
성벽 밖으로 나오자, 건너편 언덕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자스완트 타다(Jaswant Thada)’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 도시를 빙 둘러싼 이 거대한 성벽은, 과거 조드푸르 왕국의 힘을 상징했던 모든 것, 화려함, 권위,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적인 희생을 묵묵히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