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도비가트 : 마천루 아래 널린 도시의 그림자

뭄바이의 명소, 도비가트(Dhobi Ghat)

by 론리포토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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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도시철도, 마할락시미(Mahalaxmi) 역을 나서는 작은 계단에서 주머니 속 10루피 동전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 그 찰나, 길바닥에 앉아 구걸하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애원하는 아이의 눈동자. 그것은 내가 서 있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깊은 어둠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역사 밖 도로변에는 뭄바이의 명소 중 하나인 '도비가트(Dhobi Ghat)'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조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난간에 기대어 신기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뭄바이 최대 부자들이 사는 고층 아파트와 피닉스 몰 같은 거대 쇼핑몰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빨래들의 행렬이 이질적 장면, 가장 높은 곳의 삶과 가장 낮은 곳의 삶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이질적인 풍경이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세탁소, 도비가트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빨래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비왈라(Dhobi Wallah)'라 부른다.

나는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간다. 예전에는 입구에서 푼돈을 쥐어주고 들어 갔었는 데, 이번에는 아무런 제재 없이 나를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어두침침하고 좁고 어두운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빨래 꾸러미를 어깨에 멘 청년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좁은 통로에서 그들과 어깨를 부딪칠 때마다 도시의 소음은 희미해지고, 물 비린내와 세제 냄새, 그리고 삶의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내부에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세탁조가 격자무늬처럼 펼쳐진 거대한 노동의 현장이 드러났다. 사방에서 물을 뿌리고, 옷감을 내리치고, 비틀어 짜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내 기억에 있는, 이제 그 원초적인 노동의 리듬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쉼 없이 돌아가는 수십여 대의 세탁기들이 각각 뿜어내는 둔탁한 기계음이었다. 시대의 변화는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곳, 이 불가촉의 공간에도 어김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세탁조 위로 쏟아지고 있지만, 구석진 안쪽 공간은 여전히 습하고 어두웠다. 그 그늘진 곳에서 도비왈라의 가족들은 묵묵히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낙들이 이미 세탁이 끝난 도시의 빨래들을 건물 지붕 가득 너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도, 노동으로 인한 땀을 씻어내기 위해 물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도비왈라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호텔 시트, 병원 가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옷까지. 뭄바이의 모든 더러워진 것들은 이곳으로 모여 다시 깨끗해진다. 도비가트는 도시의 청결과 위생을 담당하는 거대한 심장이지만, 정작 그 심장을 뛰게 하는 이들은 힌두 사회의 카스트 계급에도 끼지 못했던 불가촉천민들이다. 수천 년간 대를 이어온 이 직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그들의 신분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실상 외국인들도 불가촉민에 낀다.

마당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빨래가 널려 있는 사이에서 뛰어논다.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회색빛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꽃과 같았다. 카메라를 향해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지붕 위에 있는 주인이 올라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철제 계단을 타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빨랫줄에 널린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뭄바이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고층 빌딩들이 병풍처럼 우뚝 서 있다. 젊은 여성이 능숙한 솜씨로 빨래를 널면서 카메라를 들이 대면 수줍어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지붕 저쪽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손을 들어 인사를, ‘나마스테‘... 빨래 뒤로 숨은 그녀의 작은 미소는 거대한 빌딩 숲과 대조적이다.

나는 어두운 입구를 빠져나와 다시 도시의 소음 속으로 돌아왔다. 도비가트는 단순한 빨래터가 아니었다. 그곳은 뭄바이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가장 고단한 노동 속에서도 삶의 희로애락이 펄떡이는, 살아있는 도시의 심장이었다. 나는 그 심장 박동 소리를 가슴에 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의 나의 침묵의 시간은 뭄바이 거대한 피닉스몰 지하의 스타벅스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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