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모퉁이, 시간을 꿰매는 남자
2026년, 나의 사진 작업 주제는 ‘길 모퉁이 사람들’이다. 화려한 대로변이 아닌, 후미진 골목길 모퉁이에 숨어 있는 작은 ‘하꼬방’. 그 좁은 공간에서 묵묵히 구두를 수선하는 아저씨, 나는 모퉁이를 프레임에 담으면서 작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몇 년 전 인도의 심장, 델리 대학교(University of Delhi, North Campus)에서 마주친 한 장면과 닿아 있다.
인도의 대학, 특히 관공서나 주요 시설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정문에는 총을 멘,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살벌한 경비원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짐짓 너스레를 떨며 실랑이를 벌였다. “저기 안에 보이는 게 간디 동상 맞죠?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저 동상 사진 딱 한 장만 찍고 나갈게요. 부탁합니다.”
끈질긴 부탁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아 낸 나는, 약속과는 달리 셔터만 한 번 누르고는 곧장 캠퍼스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 누가 쫓아올까 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해, 들어온 정문(gate)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출구로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델리 대학교의 노스 캠퍼스(North Campus)는 담장 밖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밖은 경적 소리와 매캐한 먼지, 사람들의 고함으로 뒤범벅된 혼돈의 도가니였지만, 붉은 벽돌로 지어진 대학 건물들 사이는 고요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드넓은 정원, 세월의 때가 묻었지만 기품 있는 식민지풍의 낮은 건물들. 이곳은 오로지 학문을 위해 마련된, 소음이 거세된 성역처럼 느껴졌다.
한국의 대학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하나의 캠퍼스 내에 모여 있는 것과 달리, 인도의 대학들은 단과대학 별로 건물이 뚝뚝 떨어져 분리 독립되어 있다. 그 낯설고 광활한 캠퍼스를 걷던 중, 어느 낡은 대학 건물 모퉁이에 시선이 멈췄다.
그곳에는 요즈음 보기 드문 구두 수선공이 있었다. 붉은 벽돌 건물의 모서리, 한 평도 채 되지 않을 작은 공간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낡은 구두약 통과 못, 가죽을 자르는 칼. 그 소박한 도구들, 수선할 신발들을 펼쳐놓고서, 그는 지나치는 학생들의 닳은 굽을 수선하고 있었다.
이 순간,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나의 대학 시절, 우리네 캠퍼스 본관이나 도서관 옆에도 늘 저런 아저씨들이 있었다. 교직원들의 구두를 닦아 반질반질한 광을 냈고, 학생들은 떨어진 운동화 밑창을 꿰매 신었다. 흙먼지 날리는 교정에서 구두 수선방은 없어서는 안 될 편의시설이자 사랑방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대학가에서, 아니 동네 길모퉁이에서조차 그런 풍경은 자취를 감췄다. 낡은 것은 고쳐 쓰기보다 버려지고, 새것이 그 자리를 너무나 쉽게 대체한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무언가를 고쳐서 다시 쓰는 ‘시간의 결’은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델리의 붉은 벽돌 아래서 그 풍경을 다시 만난 것이다.
학생들은 무거운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머릿속에 미래의 지식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건물을 드나들었다. 수선공 아저씨는 가장 낮은 곳에 앉아, 그 학생들이 지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발’을 고쳐주고 있었다. 머리를 채우는 일과 발을 보살피는 일. 이 기묘한 대비가 델리 대학교의 오후 햇살 아래 그림처럼 펼쳐졌다.
문득, 작년(2024년) 여름 다르질링 여행길에서 만났던 ‘닥터 영(Young)’이 떠올랐다. 서벵골의 차(Tea)밭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서 만난 그는 델리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아마 환경생태학이었던가. 델리가 아닌 그 먼 북동쪽 낮선 지역에서 우리는 델리 대학교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누었다. 지금쯤 그는 학위를 마치고 어디선가 세상을 위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닥터 영도 도서관을 오가며 저 모퉁이의 수선공에게 구두를 맡겼을지 모른다. 인도의 수재들이 미래를 고민하며 걷는 그 길목을, 이름 모를 수선공은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언젠가 이곳도 변할 것이다. 한국이 그랬듯, 저 모퉁이의 작은 하꼬방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시공간을 채우기 위하여, 2026년에는 ‘길모퉁이의 사람들‘를 찾아 작업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늘 아쉽고, 그렇기에 사진으로나마 그 기운을 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에 그곳, 델리 대학교의 그 붉은 벽돌 모퉁이를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