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축복, 버스 안의 그녀들

by 론리포토아이


인도 여행 초기에 마주한 시내버스의 풍경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사리를 입은 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왼손 주먹 위를 오른 손바닥으로 '짝! 짝! 짝!' 소리가 나게 몰아치듯 두드렸다. 그 소리는 버스 안의 시끄러운 소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리드미컬하게 들렷다.

그녀는 나에게 다소 저돌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했고, 주변의 아이들은 그 광경이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그 동작을 보았을 때 나는 당혹감에 얼굴을 붉혔다. 한국에서 남녀 간의 외설스러운 행위를 조롱 섞어 비유할 때 쓰는 손동작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대낮에 버스에서 대놓고 이런 요구를 한단 말인가?'라는 오해 섞인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대중교통이 정차한 틈을 타 한두 명씩 빠르게 옮겨 다니며 남성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당시의 나는 그저 지독한 호객 행위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몇 년전 뭄바이 메트로 퇴근길에 옆자리에 앉은 중년 아저씨에 의하면 유낙(Unak) 이라 한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인도 사회의 가장 비주류이면서도 가장 뿌리 깊은 전통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또 그들은 히즈라(Hijra), 혹은 지역에 따라 키너(Kinner)라 불리는 '제3의 성' 사람들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문화권에서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복장과 행동 양식을 따르는 이들을 통칭한다. 이들은 단순히 성 소수자를 넘어, 종교적·문화적으로 신의 축복을 전달하는 주술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아 왔다.


버스 입구에서 올라탄 두 명의 히즈라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사리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걸음걸이와 단단한 골격에는 숨길 수 없는 남성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짙은 화장과 과감한 장신구는 세상의 시선에 굴하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통로를 따라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는 그들의 행위는 단순한 구걸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기이한 의식에 가까웠다.


"따까(Taka), 돈을 줘. 신의 축복을 내릴 것이다.“


마침내 한 히즈라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강렬한 눈빛에 압도된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갑을 열어 10루피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그녀는 지폐를 한 번 훑어보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뻗어 내 머리를 '탁' 하고 만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접촉이었다. 그것은 부드러운 쓰다듬도, 친구의 장난스러운 장난도 아니었다. 거칠고 단단한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묘한 압박감,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기운을 내 머릿속으로 밀어 넣는 듯한 주술적인 감각이었다. 순식간에 축복을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다음 승객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전통적으로 히즈라는 결혼식이나 출산 같은 경사스러운 자리에 초대되어 복을 빌어주고 대가를 받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들은 극심한 차별과 소외 속에 놓여 있다. 취업이 어려운 그들에게 대중교통에서 박수를 치며 머리를 만져주고 소액을 받는 '바다이(Badhai)'는 슬픈 생계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동시에 나의 카메라 프레임에 그녀를 담았다. 낯선 이방인이 코앞에서 렌즈를 들이대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찰나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사리 아래 감춰진 삶의 고단함, 사회적 멸시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려는 강인함, 그리고 생존을 위해 축복을 팔아야 하는 비애가 그 웃음 뒤에 서려 있었다.


인도의 뒷골목과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하려 애썼던 나에게, 버스 안에서의 이 짧은 만남은 가장 깊숙한 인도의 단면이었다. 신성함과 비천함, 축복과 구걸이 한데 뒤섞인 이 나라의 가장 솔직한 초상화였다. 그녀들이 떠난 뒤 버스 안은 다시 일상의 소란으로 채워졌지만, 내 머리에 남은 그 묵직한 손길의 잔상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인도에서 마주한 가장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역설이었다.


Tip : 인도에서 히즈라를 만났을 때 인도인들은 보통 이들을 무시하거나 눈을 피하지만, 여행자에게 다가올 경우 5~20루피 정도의 소액을 주면 기분 좋게 '축복'을 빌어주고 떠난다. 거절하고 싶다면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하고 시선을 피하는 것이 소란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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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