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동행자, 가네샤

신들의 나라, 인도

by 론리포토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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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3천만의 은유

몇 년 전 방콕을 경유한 비행기는 콜카타 국제 공항에 밤 자정을 넘겨 도착했다. 여행자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의 숙소 근처를 택시는 1시간여 동안 헤매었다. 숙소의 간판들이 불이 꺼지니까 숙소를 찾지 못한 것이다. 택시 기사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바가지를 씌울까? 숙소 근처를 새벽에 1시간 정도를 헤매었으니,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때 택시 안 백미러 옆에서 코끼리 가네샤(Ganesha) 그림이 박힌 펜던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도의 신은 인도의 인구수만큼 많다고들 하며, 흔히 '3억 3천만'이라는 숫자로 회자된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단순히 물리적인 양을 뜻하지 않는다. 신이 무수히 많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곧 신이라는 힌두 철학의 거대한 은유다. 인도의 풍경은 이렇듯 신화와 현실이 공존하는 기묘한 무대다. 동네 어귀, 비좁은 골목 안, 심지어 달리는 릭샤의 운전석까지 형형색색의 신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행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마주하는 신은 단연 가네샤(Ganesha)다. 그는 여행의 모든 장애물을 없애 줄 것이라는 믿음의 상징으로 그곳에 서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신들과 일상의 신들

힌두교의 거대한 근간에는 우주를 창조하는 브라흐마(Brahma), 유지하는 비슈누(Vishnu), 그리고 파괴를 통해 재창조를 이끄는 시바(Shiva)라는 삼주신(Brahma, Vishnu, Shiva)이 버티고 있다. 그들은 거시적인 우주의 질서를 관장한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척박한 실제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들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일상의 신들이다.

가네샤(Ganesha)는 코끼리 머리를 한 시바의 아들로, 모든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호출되는 '시작의 신'이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여행을 떠날 때, 인도인들은 가네샤 앞에 고개를 숙인다. 또한, 원숭이 형상을 한 하누만(Hanuman)은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충성심과 헌신의 상징으로 민초들의 사랑을 받는다. 악을 물리치는 강인한 여신들인 두르가(Durga)와 칼리(Kali)는 인도 여성들의 내면에 흐르는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함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 신들은 박물관의 유리 벽 뒤에 갇힌 유물이 아니다. 재래시장의 소란스러운 흥정 소리 속에, 먼지 날리는 길 위의 경적소리 속에, 그리고 이름 모를 이들의 희로애락 속에 함께 숨 쉬는 동료이자 가족이다.


밤늦은 기차역, 가네샤를 만나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위험과 장애는 필연적으로 닥쳐온다. 정해진 시간표는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고, 예약은 확인되지 않으며, 길은 예고 없이 끊긴다. 어느 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 도착한 낯선 기차역이 그랬다. 칠흑 같은 어둠, 몇 시간째 연착된 기차, 그리고 겨우 찾아갈 숙소마저 문을 열어줄지 불확실한 상황은 이방인에게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불안과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대합실 기둥 옆에 놓인 작은 가네샤 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안료는 세월에 씻겨 반쯤 벗겨졌지만, 그 코끼리 신은 소란스러운 역사의 소음 속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발치에는 낡은 천 하나에 몸을 의지해 깊은 잠에 빠진 인도인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기차 연착은 분노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가네샤가 허락한 잠시의 휴식처럼 보였다. 그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내가 느끼던 당혹감은 서서히 부끄러움으로 변해갔다.


장애물을 대하는 마음의 맷집

가네샤가 장애를 없애준다는 말의 참뜻을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앞의 돌덩이를 기적처럼 치워주는 물리적인 마술이 아니었다. 어떤 풍파가 닥쳐도 내 마음이 쉽게 다치지 않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맷집'을 키워주는 일이었다.

밤늦게 도착해 숙소를 찾는 고단함은 여전한 애로사항이다. 하지만 이제는 릭샤 운전석 옆에서 반짝이는 가네샤 스티커를 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신은 내 길을 아스팔트처럼 평탄하게 닦아주는 존재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는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동행자다. 인도는 그렇게 수억 명의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매일의 장애물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가네샤의 미소를 닮은 인도인들의 얼굴 속에서, 길 위를 걸어갈 작은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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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