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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수필가 Aug 12. 2018

우연성에 대한 회고

a stroy about coincidence #1

혹시나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인사해요.


그녀는 나를 에둘러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생각이 문장이 되어 [혹은 말이 되어] 내뱉어진 순간에 나는 불확실성의 바다 어딘가로 내던져지는 기분이었다.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는 그 바다에서 나는 허우적대다가 이내 체념했고 나조차도 모르는 곳으로 떠밀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랑에 있어서, 혹은 그 모든 남녀 관계에 있어서 우연성이란 절대적이다.

그녀와 나는 서울의 한 외국어 강좌에서 만났다. 주지하다시피 서울에서 들을 수 있는 외국어 강좌의 수는 못해도 수백 개는 될 것이다.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을 확률, 마침 짬이 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었을 확률, 그러므로 말미암아 나와 그녀가 같은 외국어 강좌를 선택할 확률, 이 모든 우연의 일치가 있지 않고서는 이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시작되었다.]


그러한 기적적인 확률을 뚫고 우리는 만났고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끌림을 느꼈고 그것이 한 번의 필연적인 만남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또다시 우연성의 숙제를 던진 것이다.


지난 일주일, 나는 그녀가 나에게 내준 우연성의 숙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대충 안다. 우리는 만나서 어디서 주로 밥을 먹고 어디서 주로 운동을 하고 쉬는 날엔 주로 뭐를 하는지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 반경이 묘하게도 겹쳐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었던 마음을 억누르고 최대한 평소와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만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행동을 했던 까닭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충동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력했던 명제는 누구도 소중한 관계를 우연성의 바다에 내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계의 지속을 끝낼 때 [그러나 그 책임을 벗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한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뭐". 이렇게 내던져진 관계는 사실 그 파탄의 혐의를 내가 아닌 운명에게 덮어씌울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의 기저엔 그러한 의식[혹은 무의식]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어찌 보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이고 일종의 경계이다. 그녀는 나에게 우연을 허락하였지만 의도된 만남, 지속적인 그리고 반복적인 만남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연 역시 그녀의 의지에 의해서 회피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는 한 여자에게 거절당한 이야기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구태여 길게 풀어놓는 이유는 수많은 영화나 노래에서 말하는 운명의 다리 같은 것이 놓이길 바라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고 또, 토로되지 못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사랑에 있어서 우연이란 그 둘을 만나게 해 줄 때 단 한 번만 의미가 있다. 그 이후를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의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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