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왜 향유고래는 그토록 깊이 내려갈까: 탄소의 길

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by 이혜영

다큐멘터리 화면 속에서 향유고래는 잠시 수면에 머문다. 큰 숨을 들이마신 뒤, 몸을 기울여 아래로 향한다. 수면 위에 남아 있던 빛은 빠르게 옅어지고, 파란색은 곧 검은색으로 바뀐다. 수심 표시는 순식간에 천 미터를 넘긴다.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어려운 깊이로, 그 거대한 생명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려간다. 숨을 멈춘 채로, 오직 먹이를 향해 내려간다.

이 장면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대부분의 고래가 이렇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혹등고래는 빛이 닿는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다. 크릴과 작은 물고기를 몰아 공기방울 그물로 포획하며, 집단의 호흡과 타이밍으로 사냥한다. 대왕고래 역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졌지만, 사냥의 무대는 주로 표층과 중층이다. 크고 힘센 몸을 가졌다고 해서 더 깊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고래에게 바다는 여전히 빛이 남아 있고, 시야와 속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향유고래는 그 흐름에서 벗어난 존재다. 고래들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깊이를 일상적으로 드나든다. 그곳은 수압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방향 감각조차 무력해지는 세계다. 향유고래는 이 극단적인 환경을 피해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깊이를 자신의 삶의 범위로 삼았다.

그 선택의 이유는 명확하다. 거대 오징어를 비롯한 심해 두족류들이 그곳에 살고, 동시에 그 깊이는 다른 포식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향유고래는 더 빠르거나 더 공격적인 경쟁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공간으로 내려갔다. 빛을 포기하는 대신, 경쟁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향유고래는 바다의 가장 깊은 층위와 일상적으로 연결된, 거의 유일한 고래가 되었다.


그 깊이는 단순히 어두운 공간이 아니다. 바다의 심해는 시간이 쌓이는 자리다.


우리가 지상에서 내뿜은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공기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산화탄소가 바다로 들어오는 출발점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공기와 바닷물이 맞닿는 바다 표면에서, 이산화탄소는 농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하듯 서서히 바닷물 속으로 녹아든다. 바다가 탄소를 ‘흡수한다’고 말할 때, 그 첫 장면은 이 눈에 띄지 않는 기체 교환이다.


바닷물 안으로 들어온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물과 반응하며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형태로 나뉜다. 일부는 탄산이 되고, 대부분은 중탄산 형태로, 소량은 탄산염으로 바닷물 속에 균형을 이루며 존재한다. 이 변화 덕분에 탄소는 다시 공기 중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않고, 바닷물 속에 더 오래 머물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바다 표층에서는 두 갈래의 길이 열린다.


하나는 생물의 길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햇빛이 닿는 바다 표층에서 바닷물 속 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이때 탄소는 처음으로 생명의 몸이 된다. 그 몸은 동물성 플랑크톤에게 먹히고, 다시 더 큰 생명으로 이어진다. 이 먹이사슬의 흐름 속에서 남겨진 배설물과 사체는 작은 입자가 되어, 눈처럼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생명이 탄소를 몸으로 만들고, 그 몸이 다시 바다 아래로 돌아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물의 길이다. 차가운 바닷물은 탄소를 더 많이 품고 무거워진다. 그 무게는 바닷물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탄소는 심해 순환에 실려 표층과 점점 멀어진다. 이 과정에는 생명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 빛도, 먹이사슬도 없다. 물의 온도와 밀도 차이, 순환의 힘만으로 탄소는 조용히 깊은 바다로 이동한다. 이렇게 내려간 탄소가 다시 위로 섞여 올라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는 생명의 몸을 거쳐, 다른 하나는 물의 무게를 타고, 탄소는 모두 아래로 향한다. 그 도착지가 바로 심해다. 대기와의 연결이 느슨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자리다. 수십 년, 수백 년, 때로는 그보다 더 오래.


향유고래가 오르내리는 깊이는 바로 이 느린 저장의 층위와 겹친다. 대부분의 고래가 빛이 있는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는 동안, 향유고래는 바다가 무엇을 맡아두고 있는지를 몸으로 오가며 드나드는 존재다. 고래의 몸이 통과하는 어둠은, 바다가 감당해온 무게의 두께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바다가 탄소를 흡수해준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가볍다. 바다는 탄소를 없애주지 않는다. 맡아두고, 품고, 오래 붙잡아둘 뿐이다. 그 과정에는 깊이와 시간이 필요하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향유고래는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다. 어둠을 통과해 빛으로 돌아온다. 그 짧은 전환은 바다가 얼마나 많은 일을 보이지 않게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위에서 숨 쉬는 동안, 바다는 아래에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바다와 연애 중이다. 연애를 하다 보니 알게 된다. 모든 관계가 밝은 곳에서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걸. 어떤 관계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무게를 견딘다. 향유고래는 고래들 중에서도 그 깊이를 선택한 거의 유일한 존재다.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바다가 어떤 일을 맡아두고 있는지를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바다는 지금도 말없이, 그 깊이를 유지하며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사진출처>

https://manoa.hawaii.edu/exploringourfluidearth/physical/ocean-depths/pressure/compare-contrast-connect-deep-divers​​

https://en.wikipedia.org/wiki/Biological_p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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