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참치를 처음 만난 기억은 횟집이 아니라 작은 통조림 캔에서 시작된다. 식탁 한쪽에 늘 놓여 있던 금속 캔을 따면 기름에 잠긴 살결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일상의 단백질이 되었다. 그 안에 어떤 바다가 들어 있었는지, 그 생선이 어디서 어떻게 잡혔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참치는 늘 거기 있었고,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질문이 필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열어온 참치캔의 산업적 출발점이 2차 세계대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쟁은 대규모 병력을 먹여야 했고, 상온에서 오래 보관 가능하며 운송이 쉬운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다. 그 요구에 맞춰 참치는 본격적으로 통조림 산업의 중심에 놓였다. 바다를 빠르게 헤엄치던 포식자는, 인간 사회의 속도와 구조에 맞게 재편되었다. 참치는 단순한 어종이 아니라, 산업과 유통, 보존 기술의 산물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캔에서 만나는 참치와 횟집에서 만나는 참치는, 같은 이름 아래 있지만 서로 다른 종이라는 점이다. 통조림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가다랑어, 영어로는 스킵잭이라 불리는 종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떼를 지어 다니며, 상대적으로 개체 수가 많다. 넓은 바다를 이동하는 이 무리를 찾기 위해 선망 어선은 레이더와 헬기, 소나 장비를 동원한다. 소나가 물속으로 음파를 보내면, 물고기 떼는 화면 위에 하나의 밀집된 신호로 나타난다. 적절한 순간이 오면, 수백 미터 길이의 그물이 원을 그리듯 바다를 감싸고 아래쪽이 조여지며 하나의 거대한 주머니가 완성된다. 생산성과 효율 면에서 이 방식은 압도적이다. 우리가 저렴한 참치캔을 당연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장면이 있다.
반면 횟집에서 ‘참치회’라 불리는 것은 대개 참다랑어나 큰눈다랑어다. 이 종들은 몸집이 크고 지방 함량이 높으며, 시장에서는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상처 하나에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어획 방식 또한 다르다.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줄에 수천 개의 낚싯바늘을 달아 한 마리씩 끌어올리는 연승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이 과정은 대량 포획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과 시간을 요구한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을 상하지 않게 처리해야 한다. 같은 ‘참치’라는 이름이지만, 산업 구조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전혀 다른 자리와 속도로 분류된다.
이 차이를 단순한 서열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가다랑어가 ‘낮은’ 존재이고 참다랑어가 ‘높은’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장 속도와 번식력, 지방 분포, 유통 체계, 소비 문화가 서로 다른 생물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한 결과일 뿐이다. 산업은 생물학적 특성을 읽어내고, 그 위에 가격과 위계를 덧붙인다. 바다는 하나이지만, 시장은 그 안에서 다른 질서를 만든다.
선망 어선이 참치떼를 추적하는 장면은 때로 숨이 막힐 듯 긴박하다. 수평선 위를 맴도는 새들의 움직임, 물결의 색 변화, 소나 화면에 찍히는 밀집 신호가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진다. 그 순간은 단순한 어획이 아니라 시간과 연료, 기상 조건, 판단의 총합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을 떠올리지 않은 채 캔을 연다. 마찬가지로, 접시 위에 놓인 한 점의 참치 뒤에는 긴 항해와 냉동·해동 기술, 국제 경매와 유통망이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그저 젓가락을 들 뿐이다.
나는 요즘 참치를 먹을 때 잠시 생각이 멈춘다. 이 한 캔과 이 한 점 사이에, 전쟁과 산업, 기술과 선택, 바다 위의 추격과 조심스러운 낚싯줄이 겹쳐 있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일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질문을 멈췄던 존재에게, 조금 늦은 관심을 돌리는 것에 가깝다.
바다와 연애를 하다 보니, 이제는 이름 하나로 묶여 있던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게 보인다. 같은 참치라도 어떤 이는 기름 속에 담겨 우리의 일상이 되고, 어떤 이는 얼음 위에 올려져 특별한 순간을 장식한다. 그 차이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식탁 위의 한 점은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