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절반은 바다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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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정말?”
산소라면 늘 숲을 떠올려왔기 때문이다. 나무, 잎사귀, 초록. 환경을 생각할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다. 바다는 그보다 훨씬 크고 넓지만, 산소를 만들어낸다는 느낌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바다는 먹을 것을 주는 곳이거나, 쉬러 가는 곳이거나, 보호해야 할 자연쯤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들이마시는 산소의 약 절반은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그 산소를 만드는 주인공은 고래도, 물고기도 아니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바다 표층에서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만들어낸다. 규모로 보면,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큰 산소 생산 시스템이다. 숲과 들판을 모두 합친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이다.
이 사실이 놀라운 이유는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더 놀라운 건, 우리가 이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바다 덕분에 숨 쉬면서도, 바다를 산소의 출처로 떠올리지 않는다. 바다는 너무 넓고, 너무 깊고, 대부분의 작동이 표면 아래에서 조용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이 무감각이 조금 이해된다. 지구는 초록보다 파란색에 가깝다. 표면의 대부분이 바다다. 그 넓은 파란 면에서, 매일같이 산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잘 느껴지지 않는다. 늘 거기 있었고, 특별히 고장 나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다는 쉽게 배경이 된다.
늘 존재하는 조건처럼 느껴지고, 당장 문제가 없어 보이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산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줄어들기 전까지는,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산소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관계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바다를 관리하고 이용하는 쪽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바다가 만들어주는 조건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조차, 바다 표층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광합성의 결과다.
이건 환경을 보호하자는 도덕적인 주장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훨씬 개인적인 문제다. 내가 숨 쉬는 조건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조건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반복적인 작동 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숲을 떠올리며 숨을 고르는 것과, 바다를 떠올리며 숨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숨은 선택이 아니다.
바다가 산소를 만들어내는 일을 멈춘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선택으로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도, 다른 자원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제야 바다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살게 하고 있던 존재였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나는 오늘도 바다와 연애 중이다.
연애를 하다 보니 알게 된다. 어떤 관계는 즐겁게 해주기 전에, 이미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는 걸. 너무 조용해서, 너무 오래 곁에 있어서, 그 역할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절반이 바다에서 온다는 사실은,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시선을 조금 옮기게 만드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우리는 소비자이기 전에 호흡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니까.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