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치는 왜 헤엄을 멈추면 안 될까

혜영의 바다 연애 이야기

by 이혜영

최근 새로 시작한 일 때문에, 10여 년 전에 나온 다큐멘터리 〈참치 전쟁〉을 보게 되었다. 화면 속에서 참치 떼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거대한 원양어선의 그물망을 뚫고 빠져나가고, 여러 척의 배가 마치 한 덩어리의 생명체를 쫓듯 같은 참치 떼를 맹렬하게 따라붙는다. 바다는 넓은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숨이 찰 만큼 치열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참치는 ‘빠른 물고기’가 아니라, 속도로 존재하는 생물에 가깝다는 걸.


다큐 중반쯤, 한 전문가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참치는 멈추면 죽습니다.”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극적인 음악도, 과장된 설명도 없었는데, 그 말 하나로 앞서 보았던 모든 장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와 닿았다.


참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멈추지 않도록 설계된 생물이다. 많은 물고기들은 아가미를 여닫는 근육을 사용해 물을 안으로 빨아들이고 내보내면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다. 어항 속 물고기들이 가만히 떠 있으면서도 호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참치는 다르다. 참치는 아가미로 물을 능동적으로 끌어들이는 근육이 거의 없어, 몸이 앞으로 나아가며 물이 자연스럽게 아가미를 통과해야만 산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참치는 천천히라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잠을 잘 때도, 지칠 때도, 심지어 죽기 직전까지도 앞으로 나아간다. 멈추는 순간 물의 흐름이 끊기고, 숨도 함께 멎는다. 이건 인간이 만들어낸 조건이 아니라, 참치라는 생물에 처음부터 새겨진 자연의 설계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다큐 속 장면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물을 빠져나가는 속도, 여러 배가 동시에 쫓아가는 집요함,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전. 그건 참치가 특별히 용감해서도, 경쟁을 즐겨서도 아니었다. 살아 있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이상하게도 참치보다 사람 생각이 먼저 났다. 우리는 요즘 너무 자주 묻는다. 왜 이렇게 바쁜 걸까, 왜 쉬면 불안할까, 왜 잠깐 멈추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탈락처럼 느껴질까. 물론 인간은 참치가 아니다. 멈춘다고 바로 숨이 멎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는 이 감각은, 어딘가 닮아 있다.


참치는 원래 멈출 수 없도록 태어난 생물이다. 하지만 인간의 식탁과 산업, 속도 속에서 그 ‘멈출 수 없음’은 단순히 숨 쉬기 위한 움직임을 넘어, 살아남기 위한 과부하가 된다. 원양어선과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참치는 더 넓은 바다를, 더 오래, 더 빠르게 헤엄쳐야 한다. 자연의 리듬으로 살아가던 존재가 인간의 효율과 속도에 맞춰 재편되는 순간이다.


이 글은 참치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산업을 비난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오늘 내가 먹는 참치가 ‘멈출 수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알고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제안이다. 참치를 불쌍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불쌍함보다는, 이해에 조금 더 가까운 마음이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바다랑 연애 중이다. 연애를 하다 보니, 예전에는 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숨을 쉬는지, 어떤 조건에서 힘들어지는지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빠른 속도를 잠시 늦추고, 그 존재를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참치가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 것도, 아마 그런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사진출처:

https://www.fisheries.noaa.gov/feature-story/fun-facts-about-atlantic-tunas?utm_source=chatgpt.com​​

https://branagan12.weebly.com/blog/the-respiratory-system-of-a-bluefin-tuna?utm_source=chatgpt.com

https://www.wired.com/story/tuna-fish-school-human-engineers-in-hydraul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