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하는 자영업자의 사업 개선을 돕자는 의도로 보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 식당>이다. 소규모 식당이 밀집한 동네 골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식당을 찾아낸다. 백종원 씨는 매출 부진의 원인을 찾아내 메뉴 개발은 물론, 운영 노하우를 알려 주기도 하고, 회생할 방법을 제안하는 등 자영업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결과, 여러 식당이 기사회생하여 활기를 띠고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음식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히 보게 되었다. 컨설팅 해준 식당들이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내용이었다. 피자집이었다. 직사각 모양의 피자가 주 메뉴다. 이곳에서도 백종원 씨가 메뉴 개발에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였다.
식당 맞은편에 멀찌감치 차를 대고 방송국 카메라가 상황을 살핀다. 직원인 듯 보이는 청년이 앞치마를 벗으며 식당 문을 나선다. 휴게 시간까지는 삼십 여분 이상 남아 있다. 그가 떠난 피자집 문을 열고 들어간 제작진은 눈앞에 펼쳐진 식당의 모습에 당혹스럽다. 때 국물이 흐르는 조리기구와 기름때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가스관, 주방 냉장고에 있어야 함에도 손님용 테이블이 있는 홀 한쪽에 쌓여있는 식재료들… 예전의 피자집 사장은 식당 위생 관리가 철저했다.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에 프로그램 진행자와 제작진의 기대도 컸다고 한다. 백종원 씨가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아까 그 청년이 허겁지겁 식당으로 돌아온다. 기분 탓일까, 그의 얼굴은 푸석해 보였고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이다. 보건증 발급을 받으러 외출했다는 이유를 대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백종원의 질책이 이어진다.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 초심은 어디 갔느냐’ 등등. 청년 사장은 고개를 꺾은 채 담임선생님 앞에 선 학생처럼 야단을 맞는다. 그는 제작팀이 떠나자 가게 문을 닫고 청소를 시작한다. 나흘 동안 청소를 하고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는 마무리 멘트로 피자집 에피소드는 끝났다.
식당 문을 닫아걸고 주방 청소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는 젊은 사장을 보며 울컥했다. 왜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짜르르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동병상련(同病相憐). 나는 자영업자도, 식당 주인도 아닌데, 무엇이 나와 비슷해 보였을까. 내가 컨설턴트였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진행자가 젊은 사장을 나무라기 전에 좋은 낯과 목소리로 물어봐 줬다면 어땠을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어떤 게 힘들어요? 얘기해 봅시다.”
뻔한 핑계가 대답으로 돌아올지언정, 따뜻한 말로 품었으면 싶었다. 진행자는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건지, 그 상황에서 피자집 사장에게 필요한 건 따끔한 일침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방송의 특성상 원하는 콘셉트를 위해 다른 내용은 편집, 삭제한 결과일지도. 방송이 되진 않았지만 백종원이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그렇담 그걸 좀 보여주지… 방송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랫사람 꾸짖듯 하는 모양새에 화도 좀 났다고 하면 과장인가.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주방 위생 소홀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머리끈을 동여맸다. 전국으로 방송되는 TV 화면에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냈다. 의욕을 불태웠는데 어쩌다 비 맞은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런 그를 보며 왜 남의 일 같지 않았을까.
타성과 게으름의 결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밤낮없이 피자가게 운영에 몰두하느라 있는 대로 팽팽하게 끌어올려진 열정이, 지친 건 아닐까. 식당을 운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요구할 거다. ‘심야식당’이 아닌 다음에야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식재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메뉴의 가격으로 직결되니 건강하고 맛있는 데다, ‘착한’ 가격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아프면 안 된다. 주방장이 곧 사장인 작은 가게에는 대타가 없기 때문이다. 아프거나 힘들어서 일정과 다르게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 식당은 ‘불성실한’ 식당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불철주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순댓국 하나로 오십 년을 이어 온 노포(老鋪)가 아니라면 신 메뉴 개발도 해야 한다. 그릇은 항상 반짝여야 하고 주방엔 그을음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매일 해내야 한다. 식당이나(?) 해 볼까는 농사나(?) 지을까 와 비슷한 말이다.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피자집 청년이 방송 효과를 겨냥했던 걸까? 일단 방송에 나면 그 자체로 엄청난 홍보가 된다. 요식업계의 큰 손이 컨설팅을 했으니 맛도 괜찮지 않겠는가. 소문이 번지면 알려지지 않은 골목 피자집의 승승장구는 따 놓은 당상이다. 어떤 돈가스 식당은 사장의 지나친(?) 성실함과 융통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골목식당> 덕분에 손님이 수십 미터씩 줄을 선 채 기다리는 대박(大舶)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쉬운 길을 내주던가. 당장은 방송 덕을 볼 수도 있겠으나 알려진 간판 아래로 사람을 계속 부르는 건 제 힘이다.
밥을 한 끼쯤 건너뛰면 당사자 배만 고플 뿐 겉으로 드러나는 건 거의 없다. 식당의 주방도 그런 듯하다. 하루쯤 청소를 안 해도 별 차이 없다. 음식쓰레기봉투는 손님 테이블 위치에선 안 보인다. 달걀의 신선도는 깨뜨려보기 전엔 모른다. 가스관에 기름때가 끼어도 화구에 불 붙이는 데 이상 없다. 새벽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어제 사용한 재료가 남았다. 신선하진 않지만 익혀 내면 손님은 모른다.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앞치마가 더러워졌지만 빨아봐야 어차피 다시 지저분해질 테니 며칠 더 입기로 한다. 손님은 잘 모른다. 그저 ‘여기, 전하고 뭔가 달라진 거 같다’고 아주 조금씩 느낄 뿐이다. 홀에 퍼진 무거운 공기가 피자와 손님들에게까지 닿으면 테이블을 채우는 고객의 수가 차차 줄어들 뿐이다. 시쳇말로 약발(?)이 떨어진 거다. 컨설팅을 받았던 식당 중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곳도 꽤 된다고 한다. 약발을 이어지게 하는 건 한결같음이다. 방송이나 유명인의 도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동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물론, 장사에 애정이 있다는 전제하에, 지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모든 힘을 쏟다 보면 결국엔 지치기 마련이다. 지치면 계속 해 갈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중요한 건 지속하는 것이다. 지속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
활기가 사라진 골목상권에서 애를 쓰는 식당 자영업자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려는 진행자가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 대표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조건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씁쓸한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사업 능력과 경험을 살려 골목식당을 도우려는 그의 선의(善意)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만 하더라도 상가에 가보면 그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즐비하다. 자영업자 혼자 골리앗 같은 큰 회사의 자본력이나 영업능력, 운영 시스템을 따라갈 수 있을까. 대기업에게 자영업자는 한낱 다윗에 불과하다. 성경에서는 결국 다윗이 이겼지만 자본이라는 무기 앞에 자영업자는 무엇으로 돌팔매를 삼을 수 있을까. 진행자 백종원 대표는 움직이는 광고판이기도 하다. 여러 방송에 종횡무진 출연하면서 음식 문화판도에 영향을 끼친다. 입맛의 평준화는 둘째 치고, 그의 요란한 컨설팅이 또 다른 소외를 낳지 않기를 바란다. <골목식당> 방송에서는 기울어진 자영업자를 일으킨다. 현실의 상권에서 그는 자영업자의 자생능력을 앗아가고 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 어쩌고는 관두더라도(그가 제주도에 세운 호텔이나 학교를 운영하는 외에, 요식업 사업의 대부분이 작은 가게에서 만들어 파는 것들이다). 선의로 포장된 포식(捕食)을 알아채야 한다.
함께 하면 지속하기가 수월하다. 네모 피자집 젊은 사장이 ‘피자 H’나 ‘도**피자’ 규모를 꿈꾸었을까. 그가 자신의 기준을 마련해 ‘지속할 수 있는 열정을 지닌’ 맛있고 행복한 피자집 쥔장이 되길 바란다. 골목의 다윗들과 ‘으쌰 으쌰’ 연대하기를 바란다. 피자집과 중국집이 골목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수많은 다윗이 필요하다. 다윗 부대의 전략이 절실하다. 개개의 다윗이 가진 무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체 모를 동병상련을 느꼈던 나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쓰는 글이 나의 돌팔매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