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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게 만드는 발명가의 열정

by 이혜진

2013년 2월 특허법원에 발령받아 처음으로 특허소송을 담당하게 되었다. 법정의 분위기와 변론 내용은 민사소송과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소송대리인들은 특허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사진과 동영상이 첨부된 자료로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이러한 특허소송이 참신하고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관계에서 오는 사랑, 좌절, 애환, 고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차가운 기술만이 느껴졌다.


‘왜 특허소송에서는 가슴 뛰는 따뜻한 심장을 느낄 수 없을까?' 스스로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특허법원에는 특허기술을 완벽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했던 김OO 기술심리관이 계셨다. 평소 존경해왔던 김 기술심리관에게 이러한 나의 고민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이때 차분하고 확신에 찬 답변이 들려왔다. "저는 특허 명세서를 보면 발명자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발명에 이를 수 있을지 고심하는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가슴 벅찬 손길을 느낍니다.” 그 후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지독한 특허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보호받기 원하는 발명의 내용이 기재된 특허 명세서는 생소한 기술용어로 되어 있어 이를 처음 접하는 내게는 마치 외국어와 같았다. 김 기술심리관의 조언대로 특허 명세서를 다시금 살펴보았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외국어가 모국어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는 발명자가 종래 기술의 문제점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 좋은 발명에 이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슴 벅찬 손길이 있었다.


다시금 차가운 기술이 느껴질 때, 나는 더 좋은 발명에 이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명자의 가슴 벅찬 손길을 기억한다.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9/88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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