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 및 치료방법 발명은 궁극적으로 환자를 수술하거나 치료 및 진단하는 의료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의사나 의료기관이 그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이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특허침해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의사들은 특허침해 소송을 피하기 위하여 환자들에 대한 최선의 치료 방법을 포기하고 특허권 침해의 우려가 없는 차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실제 상황에서는 특허권자인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관련 회사들이 의사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는 많지 않다. 만약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해당 특허를 이용한 것을 이유로 특허권자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의사의 자유로운 치료행위를 제한함으로써 환자의 생명권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Long QT Syndrome 유전자 치료와 관련하여 미국의 특허권자가 이를 사용하는 캐나다의 Eastern Ontario 어린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고, 앞으로 이러한 소송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 사건의 개요
캐나다의 Eastern Ontario 어린이 병원(the Children’s Hospital of Eastern Ontario, CHEO)은 2014. 11. 경 Long QT syndrome(LQTS)과 관련된 5개의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Transgenomic사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하였다.
LQTS는 유전에 의한 심장질환으로 위 유전자 변이를 보유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여 적절한 치료가 행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심장 이상으로 어린 나이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https://www.bostonscientific.com/en-US/patients/health-conditions/long-qt-syndrome/description.html
CHEO는 해당 질병이 의심되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LQTS 관련 유전자 진단을 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시술을 행하여 왔는데, 이와 같은 소송을 제기당함에 따라 LQTS 진단 검사를 중단하게 되었다.
나. 소송경과
CHEO는 Transgenomic사의 소제기에 대응하여 “인간 유전자는 상업적 또는 다른 목적으로 특허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위 소송 과정에서 해당 병원 관계자는 “우리 의사들은 특허권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하지 못하게 막아 어린 환자들이 죽어가거나 방치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었다.
우리 의사들은 특허권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하지 못하게 막아 어린 환자들이 죽어가거나 방치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캐나다에서는 LQTS 유전자 특허권의 행사로 인하여 어린 생명들이 죽을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특허권자에 대한 비난과 함께 유전자 특허의 적격성의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 2016. 3. 9. 극적으로 특허권자인 Transgenomic사와 사이에 “Transgenomic사는 CHEO와 캐나다의 다른 공공의 병원들과 연구소들이 비영리적으로 캐나다 사람들을 대상으로 LQTS 검사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합의에 의하여 캐나다 병원들과 연구소들은 법적인 제한이나 실시료를 지급함이 없이 LQTS 검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가. 미국
미국 특허법 제101조는 치료 방법 발명을 특허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관계로 의사들은 치료 행위 과정에서 체득하게 된 치료 방법들에 대한 특허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처음으로 의사들 사이에서 특허침해 소송이 제기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는 한 안과의사가 다른 안과 의사를 상대로 자신의 백내장 치료 방법 특허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치료 방법 발명 특허는 의사의 치료행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치료 방법 발명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하는 것과 치료 방법 특허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방법이 논의되었다. 결국에는 1996년 35 U.S.C. 287(c)항을 신설하여 의료 행위는 침해금지나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예외조항을 두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35 U.S.C 287(c)(2)(A)는 “의료행위란 신체에 대한 의료 또는 외과 절차 행위를 의미하며 (i) 특허받은 장치, 제조물 또는 조성물을 그 특허에 위반하여 사용, (ii) 특허받은 조성물의 용도를 그 특허에 위반하여 실시, (iii) 생명공학(bio-technology) 특허에 위반하여 방법(process)을 실시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약의 새로운 사용에 관한 특허 및 유전자 치료방법 등의 바이오특허의 사용에 대하여는 의사 등이 면책되지 않으므로, 그 면책되는 범위는 통상의 기기를 이용한 수술방법과 같은 좁은 범위로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나. 일본
일본은 의료 행위를 특허 보호의 대상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의료업은 산업이 아니다”라는 해석에 근거하여, 인간을 수술, 치료 또는 진단하는 방법은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발명”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인간을 수술하는 방법으로는, 외과적 치료의 방법(절개, 제거, 천자, 주사, 주입 등), 인간의 몸 내에서 의료적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카테터 (catheter) 또는 내시경 등을 몸에 삽입, 이동, 조작, 가동, 추출}, 수술을 위한 준비적 처치(수술을 위한 마취 처치, 주사 전 피부를 소독하는 방법 등)가 있다. 인간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질병을 치료 또는 억제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의약을 투여하는 방법 또는 물리적 처리를 하는 방법, 인공 장기 또는 의족 등을 인체에 심는 방법,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 치료를 위한 준비적 처리, 치료효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보조적인 방법(재활치료 방법 등), 치료와 관련된 간호를 위한 방법(욕창 방지 방법 등)이 있다. 인간을 진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인체의 건강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MRI 검사를 통해 뇌졸중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 등이 있다.
반면, 인간을 수술, 치료, 진단하는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로는, 의료장비 또는 의약품 같은 물건 자체, 의료장비의 작동을 조절하는 방법, 인체의 기관에서 측정되는 구조와 기능들에 의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인체로부터 분리된 샘플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특히 인체로부터 분리된 샘플을 처리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인체로부터 분리된 샘플을 인체로 다시 되돌리지 않는 경우, 인체로부터 분리된 샘플을 인체로 다시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인공뼈와 같이 의약적 물질을 제조하는 방법 등은 인간을 수술, 치료, 진단하는 방법에 해당하지 않아 특허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을 수술, 치료, 진단하는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가 상당히 넓다고 할 것이다.
다. 유럽
유럽은 1973년 유럽 특허 조약(European Patent Convention, EPC) 제52조 (4)항에 의하여 의료방법에 관한 발명에 대하여 산업상 이용 가능한 발명이 아님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그 후 2007. 12. 13.부터 시행되는 개정 조약에서는 EPC 제52조 (4)항 규정을 삭제하고, 제53조 (C)항에서 수술, 치료, 진단의 방법에 의한 인간과 동물의 몸의 치료·처치를 위한 방법 발명을 불특허 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EPC 제53조 (C)항 규정은 방법 발명에만 한정되기에 물건 발명에는 그 적용이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방법에 사용되는 수술, 치료 또는 진단을 위한 장비 등은 특허받을 수 있고, 인공기관 또는 의족 등 물건 자체 또는 이와 같은 물건을 만드는 방법은 특허받을 수 있다.
특허적격성에서 제외되기 위해서는 치료 및 진단 방법은 살아있는 인간 또는 동물의 몸에 실제로 행하여져야 한다. 따라서 혈액은행에서 저장을 위한 혈액의 처치 혈액샘플의 진단 테스트는 특허적격성이 인정되는 반면 혈액을 동일한 몸으로 되돌리는 혈액투석에 의한 혈액 처치는 특허적격성에서 제외된다. 수술에 의한 처치는 치료목적이 외과적 방법에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으므로 미용의 목적을 위한 수술이나 외과적배이식(外科的胚移植)은 모두 특허적격성이 없다고 본다.
라. 우리나라
우리나라 특허법에 의료행위에 관한 발명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특허 실무는 의료행위에 관한 발명은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고, 대법원 2015. 5. 21. 선고 2014후768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시 한번 사람의 질병을 진단·경감·치료·처치하고 예방하거나 건강을 증진하는 등의 의료행위에 관한 발명은 특허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한편, 인간을 수술, 치료하거나 진단하는 데 관련이 있더라도 특허 대상이 되는 유형으로는 다음과 같은 발명을 들 수 있다.
① 인간을 수술하거나 치료하거나 또는 진단에 사용하기 위한 의료 기기 그 자체, 의약품 그 자체
② 신규한 의료기기의 발명에 병행하는 의료기기의 작동방법 또는 의료기기를 이용한 측정방법 발명이 그 구성에 인체와 의료기기 간의 상호작용 또는 실질적인 의료행위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③ 인간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배출된 것(소변, 변, 태반, 모발, 손톱 등) 또는 채취된 것(혈액, 피부, 세포, 종양, 조직 등)을 처리하는 방법이 의료행위와는 분리 가능한 별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것 또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인 경우 등
그리고 대법원 2015. 5. 21. 선고 2014후768 전원합의체 판결은 의약의 투여용법과 투여용량에 관한 발명이 특허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특허실무도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범위가 상당히 넓다고 할 것이다.
LQTS 유전자 검사 분쟁 사건에서는 특허권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특허권자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한 특허권 행사를 포기함으로써 분쟁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향후 특허권자가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상대로 한 특허소송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특허 제도는 치료 방법 발명을 특허 대상으로 인정하되 의사의 의료행위에 관한 면책 규정을 두고 있고, 반면 유럽, 일본 및 우리나라의 특허 제도는 치료 방법 발명을 특허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치료 방법 발명의 경우 미국은 의사의 면책 범위가 협소하고, 유럽, 일본 및 우리나라는 특허적격성을 인정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으므로, 어느 특허 제도에 의하든지 순수한 의료행위만이 면책대상이 되거나 특허적격성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의사의 치료행위가 치료 방법 관련 특허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게 된다.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발명이 오히려 의사의 의료행위를 제한하여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발명이 오히려 의사의 의료행위를 제한하여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발명자가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을 발명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면, 의료 기술 혁신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나 노력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치료방법 발명을 보호하고 이와 함께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특허 모델이 절실히 필요하다.
치료방법 발명을 보호하고 이와 함께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특허 모델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