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소한 사건사고

그럭저럭 잘 살아요

by 무나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너무 자주 들어서 그야말로 귀에 딱지가 앉아버린 말이 있다. '넌 독기가 없어서 문제야.', '뭘 하나 해도 독기를 품고 제대로 해.' 독기 타령에 이골이 나 버려서 어느샌가부터 '난 정말 독기가 없는 아인가 봐. 없으니 없는대로 살아야지 뭐.' 하고 체념해버렸더랬다. 그렇게 질리게 듣던 낱말인 독기의 뜻을 최근에 찾아보니 '독의 기운,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어린 나에게 독기의 사전적 정의를 바랐던 것 같지는 않고 과제 집착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확실히 악다구니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어린이였던 본인은 합리화에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피아노 콩쿨을 나가면서도 상을 받으면 칭찬받아서 좋고, 못 받으면 다음 콩쿨곡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용돈이 늘면 살 수 있는 게 많아져서 좋고, 용돈이 줄면 절약정신이 생기니 좋고. 뭐 그런 식이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래서 뭔가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끈질기게 매달려 이루어낸 성과가 거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꽤 답답한 구석이 있었을 것 같다. 특히 교육열이 뜨거웠던 엄마에게 나 같은 미지근한 성정의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래서 늘 듣던 소리가 '독기를 가져라'였던 것이다.




청소년기를 지나가며 종종 했던 생각은 '왜 나에게는 황당무계하거나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였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남의 관심을 끌만한 흥미롭고 신기한 경험담들이 몇 개씩은 있는데 나에게는 도대체 그런 이야기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밥을 먹고, 등교해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고. 학원을 갔다가 집에 와서 숙제를 한다. 이런 지루한 일상이 매일 반복될 뿐 새로운 일이라고는 도통 펼쳐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런 생각은 계속되었다. 어른이 되면 뭔가 멋지고 신나는 일이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았는데 현실은 일상의 내용이 바뀔 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같은 수업, 같은 친구들, 같은 알바. 언제나 심심하고 지루해. 저 친구는 술자리에서 이야기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산더미 같이 있는데. 왜 그런 일들은 나를 빗겨갈까? 착하지만 재밌지는 않은 사람. 성격 좋고 잘 어울리지만 개성은 없는 사람. 그게 나라는 사람의 별 것 없는 인상이란 말인가.




이에 대한 나만의 해답에 대해 써볼까 한다. 독기 없던 어린이는 커서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무난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기보다는 중간 즈음에 머무르며 하루하루를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안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자극적인 경험이 찾아오길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난 어릴 때부터 '큰일날 뻔했어' 싶은 일 근처에도 안 가는 성향이었나보다. 놀랄만한 일이라고는 저녁 노을이 오늘따라 장관이라든가, 처음 도전해본 음식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든가 하는 소소한 일뿐이지만 그만큼 작은 일에도 큰 감명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내일도 찾아올 나만의 '소소한 사건사고'를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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