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31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둔 경우가 많아 이력서가 조금 지저분한 편이다. 자주 직장을 구해야 했던만큼 자기소개서도 많이 써봤다. 10년 전 초안에 비하면 내 자기소개서에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초안은 아마 제멋대로 였던 듯. 학교 취업준비 모임 샘플 자소서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자소서 형식을 베꼈던 것 같다. 지금 읽어보라고 하면 아마 너무 부끄러워 일주일 정도 식음을 전폐할 것 같다. 현실적인 몽상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문구를 옛다! 자랑스럽게 첫 문장으로 썼던 것 같다. 잠깐만 떠올려만 봐도 오늘 저녁을 굶고 싶네..
그 후 경력이 쌓여가면서, 지원동기와 내가 왜 너네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설명하는 글을 반바닥 정도 쓰고, 그다음은 경력기술을 줄줄 썼던 것 같다. 옮겨다닌 회사가 하나, 둘, 늘면서 경력기술이 늘어났다. 이력서와 함께 자소서도 지저분해졌다. 그래도 나는 그 방식을 고수했다. 그게 편하니까.
이번에는 생애 처음으로 자소서를 선배 한 명에게 보여줬다. “다녔던 회사별로 쓰면 안 돼”라는 단정적인 조언을 얻고 다 뜯어고쳤다. 선배의 코치와 함께 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새로 작성한 자기소개서 상에서 나는 그들이 찾는 바로 그 인재였다. 전문성 있고, 계획적이고, 고집부리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계약직으로 일해 경력이 뚝뚝 끊기긴 했지만 그 조직에서 나를 거부했던 건 아니고, 다니던 회사와 연관되지 않는 모든 활동들도 업무의 연장선상이었다. 길게 여행을 갔던 과거는 부정했다. 면접에서 물어볼 상황을 대비해, 앞으로는 긴 여행을 가지 않을 것처럼 미리 말을 꾸며뒀다.
헌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은 경력은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다. 프레임에 맞게 꾸며 가공할 수 있다. 딱히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관심사가 많아 이런저런 일을 해봤다. 끈기가 없고 쉽게 질려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사일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타입은 아니다. 사실 회사일보다는 그 외의 것들에 관심이 많다. 웬만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회사는 돈 때문에 다닌다. 돈만 아니면 회사 같은데 안 다니고 싶다. 사회성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소수 있지만, 모든 이와 두루 잘 지내는 편은 아니다. 고집이 세고, 남의 말도 잘 안 듣는다. 특히 회사의 ‘규율’을 우습게 여기는 점은 상사들이 거슬려한다. 길게 여행을 갔던 내 과거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기회를 틈타 꼭 다시 긴 여행을 갈 계획이다.
후. 후련하다.
이번에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기운이 다소 가라앉았었다. 나 자신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취업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은 회사를 최우선으로 여길, 열정을 바칠, 인성이 좋고 사회성이 밝은, 지금까지의 경력이 너무나 훌륭해 가르칠 필요 없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어떤 한가지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판단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테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도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그 ‘좋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사람인지는, 내 방식대로 찾고 싶다.
“때때로 넌 스스로 무엇이 될지를 정해야만 할 순간이 올 거야. 절대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너 대신해줄 수는 없어.”
영화 문라이트에서 후안이 꼬마인 샤이론에게 해 준 말이다. 난 꼬마가 아니지만, 후안의 말을 적어놓기로 한다. E.E. 커밍스의 말도 적어놓기로 한다.
“당신을 모든 이와 똑같이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 세계에서,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싸움 중 가장 고단하고 어려운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을 절대 멈추지 말아라.”
자소서 얘기를 하다 너무 멀리 왔다. 어쨌든, 나는 그냥 나다. 그 말을 못해서 면접을 준비하는 며칠간 꽤나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