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여러 번 읽어야겠다.

투덜거리기 2

by 두지

한 번 읽었던 책의 내용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 봤던 영화의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참 좋게 봤던 영화인데. 평범한 영화도 아니었고 어떤 센세이션이 있었던 영화인데. 그것도 최근에 극장에서 봤는데. 남편이 이 장면 기억나지? 저 장면은? 그 장면 있잖아.라고 하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뭐란 말인가?


재밌게 봤던 책이나 영화의 그 ‘좋았던’ 감정만 잘 남아있어도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더 욕심을 내야겠다.

그토록 좋았던 거라면, 자꾸 만나고 또 만나서 내 안에 더 오래 깊숙이 자리 잡도록 해야겠다.

좋아하는 걸 만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자두가 맛있다고 한 번만 먹지 않는 것처럼. (비싸면 어쩔 수 없지만)

친구가 좋다고 1년에 한 번만 보지 않는 것처럼. (바쁘면 어쩔 수 없지만)

했던 대화라고 또 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처럼. (또 하면 더 재밌다)

재미있게 읽은 책은

좋았던 영화는

다시 보련다.

내 세계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책을 한 번만 읽는 편인데

권여선의 단편 <봄밤>은 두 번 읽었다.

좋아서 또 읽었고 또 읽으니 더 좋았다.

한번 더 읽어야겠다.

책을 여러 권 섭렵하려는 싸구려 욕망은 집어치우고

천천히, 오래, 여러 번 읽어야겠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 권여선의 봄밤, 혹은 김수영의 봄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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