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5
지프는 우리가 조금 전 들렀던 군 검문소로 방향을 틀었다. 검문소에는 아까는 없던, 한참 고참으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서 있었다. 우리를 데려다준 군인이 차에서 내려 병례를 하고, 고참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보초를 서고 있던 군인이 지프 안을 빼꼼히 들여다봤다. 아까 우리를 돌려보냈던 그 앳된 군인이다. 또 쟤네야?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네…. 그의 얼굴이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선글라스를 쓴 고참이 지프 차창으로 다가왔다. 선글라스 너머로 의심에 가득 찬 그의 시선이 흘러넘쳤다. 나와 더스틴을 차례차례, 위아래로 훑어본 그가 말했다.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사전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의 단호한 말투에 미련이 후두득,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우리를 데리고 온 군인들이 미안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두 번을 시도했다. 두 번 다 안됐다. 그럼 안 되는 거다. 더스틴 말대로, 이미 여행의 첫걸음은 시작되었다. 비장한 시작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시작은 시작이다. 이제 미련 없이 걷자. 남쪽을 향해.
노동당사는 뒤는 무너지고 앞부분만 겨우 구색을 갖춰놓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시멘트 건물과 대비되는 새파란 잔디밭에 배낭을 내렸다. 동송에서 백마고지역으로 오는 버스에서 내린 후 세 시간 만에 벗는 배낭이다. 배낭이 떨어져 나간 어깨가 징, 하고 울렸다. 두 팔을 쭉 뻗으니 우두둑, 근육인지 뼈인지 모를 것이 어깨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봉긋 솟은 어깨 근육을 주물렀다. 뭘 해봐도 뻐근함은 그대로다. 첫날인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하나. 무거운 걸 들면 근육이 찢어진다던데. 찢어진 근육은 더 단단해진다던데. 그래. 풀릴게 아니라면 좀 더 단단해져라.
“저기 매점이라고 써 있다. 가서 물 좀 사 와.”
잔디밭에 거의 드러누울 듯이 앉아, 내가 말했다.
“싫어 네가 사와.”
“아 말 좀 듣지 자식이…. 귀찮단 말이야. 목은 마른데 저기까지 걸어갈 힘이 없다….”
햇살에 녹은 듯 흐물흐물 앉아있는 사이, 덩치 큰 관광버스 한 대가 뒤뚱거리며 노동당사 쪽으로 다가왔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더니, 하얀 밥알처럼 머리가 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창이 긴 모자, 목에 두른 카메라, 반팔 셔츠, 긴 바지, 운동화. 철원 단체관광 안내문에 적혀있었을 법한 필수 준비물과 복장을 충실히 따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관광가이드를 따라 노동당사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우리도 여기 온 김에 구경이나 할까? 내가 물었다. 아니,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어딜 들어가. 나는 밖에서 사진이나 좀 찍고 있을게. 더스틴이 대꾸했다.
홀로 노동당사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열댓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스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다. 할머니 한 분이 더스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게 보였다. 더스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언제 쥐고 있었는지 모를 누군가의 카메라로 할머니 할아버지 한 쌍의 사진을 찍었다. 미리 번호표라도 받아놓은 듯 그다음 커플이 더스틴에게 카메라를 쥐어줬다. 더스틴이 나에게 커다란 손짓을 한다. 아…. 비키라고. 내가 배경으로 나온다고….
“내가 장발의 외국인인 데다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전문 사진가라고 생각하셨나 봐.”
카메라 촬영 업무에서 겨우 벗어난 더스틴이 배낭을 메며 말했다. 그냥 네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거야. 앞으로 남의 사진 찍어줄 일 많을지도 몰라. 각오하고 있어. 응…. 매점 들렀다 가자. 물 사야지. 더스틴이 말했다. 음…. 아니…. 그럼 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가야 하잖아. 귀찮아. 지도 보니까 3km 정도만 더 가면 도피안사라는 곳이 있어. 거기도 노동당사 같은 관광지니까 매점이 있겠지. 거기서 또 쉬자. 물도 사서 마시고.
노동당사에서 나와 2km 정도를 걸었다. 길은 도로길에서 시골 흙길로 접어들었다. 철원군에서 조성해놓은 ‘한여울길’이라는 이름의 도보길이었다. 바로 이거야. 내가 바라던 도보여행. 더스틴이 말했다. 이렇게, 연두색 커다란 평야 사이로 난 좁다란 흙길, 그 사이로 걷고 또 걷는 거.
“몇 시간 걸었더니 익숙한 감정이 느껴져. 이렇게 배낭을 메고 몇 시간이고 걷는 거,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잖아. 인도, 히말라야,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하루 종일 걷도 또 걸었었잖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한다리’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내가 말했다. 근데 외국을 걸었을 땐, 외국이라는 공간이 주는 생경함이 있었잖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여행자들도 많이 만나고, 현지인들도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고. 그게 주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을 걸을 땐 아까처럼 관광버스 타고 온 관광객은 가끔 보겠지만, 같이 걷는 여행자는 만날 일이 별로 없을 거고. 현지인들은 나와 같은, 너에게도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고. 우리, 왜 한국을 걷자고 했던 거지? 경비가 더 싸게 드는 것도 아니고.
“더 이해해보자고 온 거지. 너랑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을 아예 떠나 살 수도 있으니까. 그전에 네가 태어나 자란 한국이라는 곳을 더 이해해보자고. 솔직히 너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서울만 익숙하지, 지방은 잘 모르잖아. 경주나 제주도 같은 관광지만 몇 번 왔다 갔다 했을 뿐이고. 그리고 난, 받아들여지고 싶어. 서울에서 4년을 살았는데…. 난 어렸을 때부터 늘 이사를 다녀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어. 그러니까 4년이면 꽤 오래 머문 시간이야. 근데, 늘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이 들어. 물론 내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나를 ‘외국인’으로만 받아들여. 그 너머의 나라는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받아들여줄 마음도 없어. 그러니까 늘 그들이 생각하는 ‘외국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버리는 거지. 그 이미지에 부합하면 좋아하고, 벗어나면 싫어하고. 이렇게 한국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를 하나의 개인으로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이는 도피안사는 생각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매점 따위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노동당사에서 물을 사지 않은 걸 후회하며 수풀 사이를, 물 넘치는 징검다리를, 도로길을 걸었다.
“있다! 가게 있어!”
두 시간쯤 걸어 오덕리에 닿았다. 자전거 도로 저 너머로 초록색 간판 하나가 보였다. 오덕리 슈퍼마켓. 힘이 빠져 달려가지는 못하고, 걸음을 조금 재촉해 마트로 걸어갔다.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구멍가게였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갖추고 있는 알찬 상점이었다. 냉장고에 든 차갑고 큰 물병을 하나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아 시원해. 살 것 같아. 너무 맛있어. 우리는 미슐랭 3 스타 셰프의 음식이라도 맛본 듯 물에 대한 찬사를 늘어놨다.
“계란 먹을래? 구운 계란.”
배낭에서 어제 마트에서 산 구운 계란을 꺼냈다. 나 삶은 계란 안 좋아하잖아. 더스틴이 말했다. 안 좋아하고 뭐고 지금은 배고프니까 먹어야지, 호불호 따질 때야? 계란을 까며 내가 말했다. 자, 한 입 먹어봐. 반들반들한 계란을 더스틴 앞에 내밀었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한입 베어 문다. 음…. 나중에 정말 다급할 땐 먹겠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더스틴이 말했다. 자식이 배가 덜 고팠구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빨며 10분 정도 더 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덕리 마을길은 금방 끊겨버렸다. 도로길을 한참 걸었다. 오른쪽으로 커다란 쌀 공장이 보였다. 장흥리 미곡도정장. 도정장 앞 담벼락에 세워진 사다리 위에서 아저씨 한 분이 가로등을 손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사다리 아래서 지시를 내린다. 저쪽으로 더, 아니 그게 아니고, 이쪽 이쪽! 어이! 할아버지가 외쳤다. 어이! 어이! 돌아보니 아, 우리를 부르는 소리구나.
“저희 부르신 거예요?”
“웨어 아유 프롬?”
할아버지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