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4
백마고지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 노동당사로 이어지는 5km 거리의 찻길을 걸었다. 도로 왼쪽은 수풀로 덮여있었는데, 걷는 길 내내 가시철조망이 연결되어 있고 중간중간 ‘지뢰(Mine)’라고 적힌 새빨간 경고 표지가 달려있었다.
“우리가 걷는 이 동네 이름이 대마리거든? 어제 동송 시내 모텔에서 있을 때 조금 찾아봤는데, 여긴 원래 북한 땅이었대. 1967년인가 남한 땅이 되고 나서 정부에서 사람들을 이 마을로 이주시켰나 봐. 북한 바로 아랫동네니까, 여기다 사람들 살게 하면 농사지어서 식량도 늘고, 아무래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 북한이 쳐들어오면 대응도 빠르고 그렇다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천막에서 살면서 농사지을 땅을 개간하고 그랬는데, 전투 지역이었다 보니까 땅에 묻힌 지뢰들이 아직 많았던 거야. 그거 제거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대.”
“그게 아직 제거가 다 안된 거야?”
“그러니까 지뢰 조심하라고 이렇게 표시가 되어있겠지…. 갓길에 너무 바짝 붙어서 걷지 마. 지뢰 밟으면 어떡해….”
21세기에 지뢰라니.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사라지거나 아물기 마련이라던데, 지뢰는 제거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나 보다. 그런 나라에 살고 있었구나 우리. 아직 불발 지뢰가 땅 아래 묻어져 있는, 전쟁 중인 나라. 지뢰 경고 표지의 새빨간 색감이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초록색 논밭의 색감과 묘하게 어울린다. 마을로 빠지는 길이 나오는 삼거리. 벽돌색 도로표지판이 등장했다. 앞으로 쭉 가면 3km 노동당사, 좌측으로 8km 가면 월정리 전망대. 가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뭘 저렇게 적어놨지. 예전에는 갈 수 있게 해 줬던 건가…. 내가 중얼거렸다. 8km면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인데. 아무리 북한이라지만 지척에 있는 곳을 투어가 아니면 못 간다니. 심술 나.
“야, 저기 군인들한테 한 번 물어볼까?”
조금 더 걸으니 군 검문소가 보였다. 뭘 물어봐? 더스틴이 대꾸했다. 혹시 월정리 전망대에 들어갈 수 있는지 말이야. 관광안내소에서는 투어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군인들은 또 다를 수도 있잖아. 군인들이 관리하는 곳이니까 권한도 있을 테고, 그러니 상황이 되면 잠깐 허락해줄 수도 있고.
“물어본다고 손해 볼 건 없지. 근데, 월정리 전망대를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가야 하는 이유가 뭐야?”
“야, 내가 몇 번 말하냐! ‘철마는 달리고 싶다’! 거기에 그 녹슨 문구가 서 있다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발견하기 위한, 우리 여행의 의미심장하고 비장한 시작을 위해서라고.”
군부대 앞을 슬쩍 엿봤다. 군인 한 명이 100살은 넘은 고목처럼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저렇게 움직임 없이 서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지루하기도 할 거고…. 나는 군인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군인은 기다란 장총을 들고 있었다. 저거, 진짜 총이겠지? 가지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시작된 발걸음이 나를 천천히 군인 앞으로 데리고 갔다. 군인이 총을 슬쩍, 뒤로 뺐다. 이 군인,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앳되다. 하긴, 이제 20대 초반이겠지?
“저기요.”
나의 말에 군인의 눈이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슬쩍, 내쪽으로 움직였다.
“저기, 그게요.”
너무 캐주얼한가. 군인처럼 말해야 하나. 좀 더 사무적이고 공적으로 말해볼까. 배낭을 앞뒤로 메고 머리를 하나로 대충 묶은, 트레이닝 바지와 트레킹화를 신은 우리의 모습은 우리 앞에 선 군인들과 너무 달랐다. 여행-호국, 군복-츄리닝, 총과 방패-배낭, 짧게 깎은 머리와 군모-대충 묶은 긴 머리.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존재가 마주한 대립. 이질감. 불편함.
“저희가 국토종단 중인데. …. 오늘이 그게. 첫날이거든요. 월정리역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거기까지 걸어갔다가 금방 나오면 안 될까요?"
내가 말을 좀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저기요! 하고 크게 내지른 내 목소리는 '국토종단'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월정리역'에서부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최전방에서 심각하게 국방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 앞에 서서 재미없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기분이랄까. 괜히 왔다. 괜히 물어봤다. 아무도 말이 없다. 질문을 띄운 나도, 내 옆에 선 더스틴도, 질문을 받은 군인도. 군모 아래로 동그랗게 그늘진 군인의 앳된 얼굴에 시퍼런 당황이 묻어났다.
"그게…. 걸어가실 수는 없을 텐데…. 차를 타야 갈 수 있는데…. 상병에게 여쭤볼게요 근데…. 상병이 지금 안 계셔서….”
한참 뜸을 들인 끝에 군인이 말했다. 그의 답변은 반갑지 않지만, 어설픈 말투는 꽤 반갑다. 군복에 군모를 쓰고 있을 뿐, 총을 들고 있을 뿐, 그도 우리처럼 어설픈 면이 있고 당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그렇구나. 감사해요. 괜히 곤란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내 말에 군인이 살짝 미소를 보였다. 우리는 뒤로 돌아 다시 노동당사 방향으로 걸었다. 이제 고집 그만 부릴게. 철원 최전방 지역에 와서 안보 지역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니, 너무 무모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아까 백마고지역에서 이미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한 거야. 그러면 된 거지. 더스틴이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5분쯤 걸었을까. 탈탈탈,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군용 차량이 등장했다. 차가 우리 앞에서 멈춰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드릴게요."
뒷칸에 타고 있던 군인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아니에요. 저희 국토종단 중이라 걸어가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근데 잠깐. 저 사람들 군인들이잖아. 아까 군부대 앞에 서 있던 병사보다는 짬밥이 훨씬 되어 보이는데…. 더스틴, 한 번만 더 시도해볼까? 월정리 전망대까지 걸어서는 못 가더라도, 군인들이랑 가면, 그것도 군인들 차를 타고 가면 갈 수 있지 않을까? 군 검문소까지는 어차피 아까 관광안내소에서 백마고지기념관으로 갈 때 걸었던 길이니까, 되돌아 가는 길에 차를 탄다고 해서 차를 안 탄다는 행동강령을 어긴다고 할 수도 없어. 이미 걸음은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기회가 왔을 때 월정리 보고 가면 좋잖아. 쌀알을 발견한 참새의 날갯짓처럼 빠른 나의 속삭임에, 더스틴이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한 번만 더 해보자.
“근데요. 저희가 월정리역에 꼭 가고 싶은데. 오늘 월요일이라 월정리 들르는 안보투어는 인원이 안 차서 운행을 안 한대요. 그래서…. 혹시 이 차 타고 갈 수 있을까요? 군용 차량이니까 거기 갈 수 있지 않아요?”
“아…. 그래요? 그럼 일단 타보세요. 저희랑 같이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그치? 갈 수 있지 않아?”
군인이 옆에 앉은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될 거 같은데? 일단 타세요! 옆자리 군인이 말했다. 나는 신이 나서 차량 위로 올랐다. 타도 되는 거야? 머뭇대던 더스틴도 차에 올랐다. 푹신한 카시트에 앉아 앞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방지턱을 지나던 지프차가 덜컹거렸다. 가방 속 수첩이 공중으로 붕 떴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군인이 몸을 비틀어 우리를 바라봤다.
“국토종단하시면, 철원에서 어디까지 걸으시게요?”
“아 그게…. 부산. 부산이요.”
내가 말했다. 부- 하고 발음할 때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산-하고 발음하자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을 털어냈다. 걷기 시작한 지 이제 두 시간. 벌써 이렇게 말해버려도 되나. 부산에 간다고. 걸어서 부산까지 갈 거라고. 부, 산, 이라는 소리를 내기 위해 부딪힌 두 입술과 혀가 지나간 자리에서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묘한 맛이 났다.
지프차가 다시 덜컹, 우리를 들었다 놨다. 마음이 부- 하고 떨렸다. 여행이 데려다 줄 인연에의 예감에. 어쩌면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여행에의 기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