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7
“짜장면 먹고 갈래?”
쌀 도정장을 나와 한 시간쯤 걸었을 무렵, 왼편으로 짜장면 집이 보였다. 그것도 무려 ‘녹차 브로콜리 웰빙 짜장’.
“4천 원이면 먹자.”
내가 말했다.
“5천 원이면?”
“그럼 안 먹어.”
짜장면 집으로 다가가 가게 안에 달린 메뉴를 슬쩍 살폈다. 4천 원이야! 내가 외쳤다. 우리는 춤을 추듯 짜장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니 달콤한 기름 냄새가 콧속으로 달려들었다.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윤기 나는 검은 소스가 잔뜩 뿌려진 짜장면 두 그릇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이 집 이름대로 녹차, 브로콜리, 웰빙, 짜장면 맞네.”
젓가락으로 면발을 비비며 내가 말했다. 녹색 빛이 나는 면발, 소스 위에 얹힌 브로콜리, 아낌없이 들어있는 야채와 고기. 짜장면을 가져다주신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옆에 서서 우리를 지켜봤다. 많이 걸어서 땀을 많이 흘리면,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분 섭취도 중요한 거 알아? 더스틴이 말했다. 이 짜장면은 걸어서 여행하는 우리에게는 완전식품이나 다름없어. 염분이 많고, 야채도 많고, 콩도 들어있고, 고기도 있고, 이렇게 물도 실컷 마실 수 있고. 야 완전 맛있다. 야 무슨, 지금까지 먹어본 짜장면 중 제일 맛있어. 더스틴이 호들갑을 떨었다. 사장님, 얘가 짜장면 너무 맛있대요. 먹어본 짜장면 중 제일 맛있대요. 어머 정말? 호호호호! 빨간 앞치마를 입은 아주머니가 입을 손으로 가리고 크게 웃었다.
“우리 동네 있던 짜장면집 기억나? 우리 엄마가 너 거기 데리고 갔었잖아. 우리 사위라고, 인사시킨다고.”
“길가에 있던 집 말하는 건가?”
“거긴 감자탕집이고. 거기도 가긴 했지. 내가 말하는 데는 2층에 있던 곳. 계단이 아주 가파른 곳.”
“아.”
그 중국집이 엄마 아빠가 하던 식당 옆 옆 집이었거든. 그래서 엄마 아빠랑 중국집 아줌마 아저씨랑 잘 어울렸어. 근데 엄마 아빠 식당 하기 전에, 그러니까 금은방 할 때는 서로 얼굴만 알았대. 그때는 엄마가 점심시간마다 빨간 바구니에 아빠 점심 담아서 가져다주고 그랬어. 중국집 아줌마가 2층 창문에서 그런 엄마를 내려다보면서 참 부지런도 한 여자라고 생각했대. 거기도 짜장면 맛있었는데…. 그 아줌마도 여기 사장님처럼 짧은 파마머리를 한 키 작은 여사님이셨어. 나 가면 아줌마가 짜장면도 주시고 짬뽕도 주시고….
“그 중국집이랑 식당 중간에 철물점이 있었거든. 나 태어나기 전부터 생겨서 내 유년시절 내내 있던 곳이야. 엄마 아빠보다 연배가 조금 더 있으신 내외분이 하던 곳이었는데, 엄마 아빠 식당 차리고 몇 년 후 거기 아저씨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어. 그러고 나서 아주머니도 가게에 안 나오셨는데, 몇 년 후에 엄마가 그 아주머니를 길에서 만났나 봐. 아저씨가 없어 너무 쓸쓸하다고 엄마를 붙잡고 울었대. 아주머니 생각난다…. 부드럽게 말아 올린 은발 파마머리가 우아하던 분이었는데…. 여하튼. 그 얘기 들을 때 나도 뭔가 울컥하더라고. 나름의 걱정거리야 다들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소식 주고받으며 늘 곁에 있던 건강한 이웃들이었는데. 병들고, 죽고, 홀로 남겨지고…. 사람 병들고 죽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뭔가 마음이 쓸쓸해. 그런 거 생각하면.”
나 대학교 1학년 때 과외하던 애가 있었거든. 내가 말을 이었다. 더스틴이 나를 바라보며 노란 단무지를 베어 물었다. 나보다 4살 어린애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알던 애였어. 엄마 심부름으로 자주 들르던 시장 쌀집 아들이었으니까. 네발자전거로 시장터를 활주 하던 꼬마 시절부터 알던 애가 고등학생이 돼서 내 과외학생이 된 거지. 이제 대학 졸업한 지도 한참 됐을 거야. 근데 걔네 아버지도 재작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 갈 때마다 얼굴 뵙던 분이었는데…. 걔네 어머니도 나한테 정말 상냥하고 다정하셨어. 아주머니께 안부 인사도 못 드리고 흐지부지 지나가버렸네.
“그 집도 있잖아. 네가 나 데리고 갔던, 통닭집.”
더스틴이 말했다. 더스틴은 어느새 그릇의 반을 비웠다. 혹여나 내걸 뺏어먹을까 싶어 나도 얼른 두 젓가락을 후루룩, 흡입했다.
“…. 어 맞아. 정말 맛있었는데…. 거기도 나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집이야. 어렸을 때 길 건너편에 수희네 엄마 옷가게가 있었거든. 수희 엄마랑 우리 엄마랑 친했어. 수희가 나랑 동갑이어서, 유치원도 둘이 같이 다녔어. 수희는 활발한 애였는데 나는 말 한마디도 안 하는 조용한 애였지…. 수희네 아빠였나, 여하튼 어떤 어른이 수희랑 나랑 그 통닭집 가끔 데리고 갔거든. 그 이미지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 어둑한 통닭집 구석, 나무 테이블…. 거기에 조그마한 수희랑 수희보다 더 조그만 내가 앉아서 유리컵 한가득 오렌지 주스를 마셨어. 다 크고 대학생 되고 나서는 선희나 민이, 혜진이 같은 친구들 데리고 가서 주스 대신 생맥주 마시고…. 너도 데리고 가서 생맥주 마시고…. 그 사장 아저씨 정말 성실한 분이셨거든. 그 집 지나갈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아저씨가 닭 튀기고 있는 모습이 늘 보였었는데. 언제까지고 그 유리창 너머로 닭을 튀기고 계실 것 같았는데. 그렇게 자살하실 줄이야….”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물을 두 컵 더 마신 후 식당에서 나왔다. 이제 캠핑장까지 3km 남았다.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 통닭집, 갈 수 있을 때 더 자주 갈 걸 그랬어. 이제 다시는 갈 수 없다니 이상해.”
징검다리를 건너는 더스틴의 등에 대고 내가 말했다. 세찬 물살 소리 때문에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한 발 한 발 징검다리를 짚어 나가는 데 집중을 하느라 그러는지, 더스틴은 내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더스틴에게로 전해지지 못한 생각들이 다시 내 머릿속으로 튕겨져 나왔다. 한 번 꺼낸 묵은 기억들이 구멍 난 주머니 안에 든 물처럼 철철 새어 나왔다. 한 동네에 오래 살지 않고 일찌감치 동네를 떠났다면 철물점 아저씨의 중년만, 쌀집 아저씨의 웃음만, 통닭집 아저씨의 성실한 모습만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래 머물다 보니 변화가 보인다. 끝이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변화나 끝이라는 건, 대부분 쓸쓸한 것들이다. 어린 나에게 세계의 전부였던 우리 동네는 이제, 하나의 완고한 세계가 되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웃음과 기쁨도 있지만 아쉬움과 쓸쓸함, 그을음과 고통이 더 많은, 찬란한 시작과 씁쓸한 끝이 모두 담긴 하나의 완고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