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적적해야지…. 만날 있어봐야 사람 구경을 못혀"

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8

by 두지

"뉘 집 딸이여?”


언제 끝날지 모를 걸음이었는데, 어느새 장흥리에 가까워졌다. 도로 한쪽에서 텃밭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할머니가 챙이 긴 모자 아래 작은 눈을 들어 우리를 올려다봤다.


"여기 딸 아니에요 할머니. 그냥 지나가는 길이에요."

"으잉?"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셔츠. 흙 묻은 바지. 바지를 감싼 장화. 팔에 낀 토시와 장갑 낀 손에 든 호미.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으잉? 그럼 어디 마을 사람이야? 오덕리?”

"아니요 할머니! 이 근처 사람 아니고. 서! 울! 서, 울, 에서! 왔, 어, 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쳐 또박또박 말해본다. 잘 못 들으시는 것 같아서.


"이이잉? 여 사람도 아님서. 여긴 왜 왔어?"

"철원에서 부산까지 걸으려고요."

"으잉? 철원에서 서울까지 걸어간다고?"

"아니요 할머니! 서울에서 철원까지는 버스 타고 왔고! 철원부터 걸어서 부산까지 가려고요!”

"으으으잉? 허이쿠…! 아이 여기 연고지는 있겄지…."

"연고지요? 철원에? 없어요!"


“허이쿠! …. 아아아. 서울 아가씨여어어?”

“네.”

“응. 나도오.”

“아, 할머니도 서울에서 오셨어요?”


“으잉. 나도 서울서 살았어. 10녀언. 글케 살다 다시 고향 왔지. 고향이라 해봤자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서도…. 여가 우리 집이여. 집에 앉아있다가 하도 적적해서 나왔어. 티비도 봤다가 가만히 누워서 천장에 그려진 벽지 무늬도 봤다가…. 워낙 적적해야지…. 아 사람 구경을 못하니까…. 만날 있어봐야 사람 구경을 못혀. 그래 이렇게 이쁘게 걸어 다니는 구만. 하도 보기 좋아서. 그래서 물어봤어.”

…. 아무도 말이 없자 으흥-, 하고 할머니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더스틴이 배낭을 고쳐멨다. 큼, 흐음. 어느새 목 안에 생겨난 묵직함을 풀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다. 할머니. 응-. 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나 같은 늙은이는 찍어서 뭐해."

"할머니가 너무 예쁘셔서요."

“에이 별말을…. 히히히…. 그럼, 모자는 벗을까?"


아니 모자 안 벗어도 예뻐요. 할머니가 머리를 다듬고 모자를 바로 썼다. 할머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할머니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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