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동안만큼은 진심일 수 있어

쿠마노코도를 걷자 01

by 두지

개미. 개미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머릿속에 까만 점이 두 개 찍혔다. 작게 웅크리고 있던 까맣고 동그란 두 개의 점은 서로에게 다가가더니 맞붙어 허리가 잘록한 개미의 몸을 만들어냈다. 개미는 작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미의 뒤를 다른 점들이 따라 움직였다. 까만 점들은 우둘투둘하고 고불고불한 황토색 산길 위를 느리게,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마 그런 것이리라. 쿠마노코도를 걷는다는 것은.


“개미의 쿠마노 참배.”


나는 대단한 문장이라도 발견한 듯 쿠마노코도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쿠마노코도는 일본 기이 산지에 있는 천년 묵은 길이다. 일본 사람들은 11세기부터 그 길을 걸었다. 천년 동안. 개미처럼, 끊이지 않고, 줄을 지어,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개미의 행렬은 일본의 고도였던 교토에서 시작한다. 교토에서 이어진 길은 오사카를 거쳐, 타나베를 지나, 혼구(本宮),신구(新宮),나치(那智) 세 곳의 영지(靈地)로 이어진다. 11세기,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황실 가문은 선사시대부터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던 쿠마노 지역으로 순례를 떠났다. 나라가 어지러운 마당에 황실이 순례를 떠난다? 아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이었겠지. 순례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황실 가족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100차례가 넘는 순례를 떠났다. 황실 가족이 다녀간 덕에 숙소와 관련 시설이 생겨났고 곧이어 귀족들이 그 뒤를 따랐다. 15세기 화폐경제가 발달하고부터는 사무라이, 귀족, 그리고 서민들도 순례를 떠났다. 16세기와 18세기 사이에는 쿠마노 비구니들 덕에 일본 전역에 쿠마노 신앙이 퍼졌고, 19세기 도쿠가와 정부가 들어서고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면서 순례객은 크게 늘어났다. 이후 큰 전쟁이 몇 차례 일본을 덮치고 순례객의 발길은 끊겼고, 유산들도 파괴되었다. 중단되었던 개미의 행렬은 1990년 다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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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순례길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와 쿠마노코도, 2곳 뿐이지만 까미노 데 산티아고와는 달리 쿠마노코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왜 걸었을까, 그 옛날 일본 사람들은. 천년 동안 같은 길을 반복해 걷는 개미의 행렬은 왜 생겨난 걸까. 혼구(本宮),신구(新宮),나치(那智) 세 곳의 영지(靈地)로 가기 위해서 걸었겠지. 한데 꼭 걸어야 했을까? 황실에서는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더군다나 천년이 지난 지금은 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있는데.


순례.


신사에서 신사로 걷는다. 돈을 넣는다. 종을 친다. 짝, 짝, 두 번 박수를 친다. 기도와 절을 올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순례길을 한나절 걸어서, 다음날 또 걸어서, 걷고 걸어서 도착한 신사에서의 기도는 진심이다. 돈을 바라건, 자식의 건강을, 세속적 성공을, 사랑의 쟁취를, 그 어떤 걸 바라건, 내 두 발로 오래, 느리게 걸어 들어간 신사에서의 기도는 진심이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네팔 히말라야를, 터키의 리시안웨이를, 한국의 산길을 걸어왔던 나는 안다. 최소한 걷는 동안만큼은 진심일 수 있다. 간절할 수 있다. 경건하게, 온몸을 다해, 정성을 들일 수 있다.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다.


그리고 용기. 걷는다는 건 용기를 얻는 일이다. 길은 결국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면 결국 다음 신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건 살아갈 용기가 된다. 고대 일본인들은 아마, 그래서 걷지 않았을까. 나는 그래서 걷는다.


우리의 쿠마노코도 순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미, 에서 시작한 작고 까만 생각으로부터. 다시 한번 나의 온몸과 정신을 쏟기 위해. 최소한 걷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정성 들인 삶을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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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걷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정성 들인 삶을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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