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노코도를 걷자 02
고속도로는 단칼에 베어낸 두부처럼 반듯하고 부드러웠다. 오사카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흑두부처럼 까맣고 부드러운 도로 위를 미끄러지다 세 시간 반 후 타나베의 한가운데 나와 더스틴을 뱉어냈다. 더스틴. 내 걷기 동료다. 네팔의 히말라야를, 터키의 리시안웨이를, 한국의 산길을 걸을 때마다 늘 내 곁에서 걷는 여행 동료이자 남편. 우리를 뱉어낸 네모난 버스 앞으로 네모난 관광안내소가 보였다. 우리는 네모난 레고 마을에 떨어진 작은 두 조각 레고처럼 네모난 관광안내소 안으로 들어갔다.
“익스큐즈미?”
미안하지만 일본어가 안 되는 우리는 영어로 인사했다. 각자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던 안내소 직원 세 명이 깜짝 놀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고요한 관광안내소 안에 직원들이 앉아있던 의자 바퀴가 구르다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스르륵, 텅, 하고 울렸다.
“저…. 이 근처에 호텔 있나요?”
“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직원이 애매한 소리를 냈다. 예전 회사 옆자리 일본인 동료도 늘 저런 소리를 냈었다. 밥 먹었어요? 에…. 어제 뭐했어요? 에….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떠올리는 동안, 그래서 내가 기다려야 하는 동안, 에, 하고 작은 소리라도 내주는 게 나는 늘 고마웠었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소리겠지만, 습관이더라도 배려는 배려니까.
“예약은 했습니까?”
일본어 말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깍듯한 영어로, 옆 자리 단발머리 여직원이 물었다. 예약이요? 아뇨.
“지금은 긴 연휴라, 이 근방 호텔은 방이 다 찼습니다.”
우리가 들어온 순간부터 서 있던 세 명의 직원은 처음의 그 자세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호기심 많은 소처럼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떻게 숙소 예약도 안 한채 무작정 버스를 타고 오사카에서 타나베까지 와 버릴 수가 있냐고 다그치는 눈빛으로.
“그럼, 이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요?”
더스틴은 몸을 조금 틀어 뒤로 맨 커다란 배낭을 직원에게 슬쩍 보였다. 더스틴 배낭 옆주머니에는 풀색 텐트 가방이 보란 듯이 꽂혀있었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기적의 한 수를 낸 고수들처럼, 이건 몰랐지? 하는 득의양양한 마음으로 살짝 미소까지 띠며 직원들의 답변을 기다렸다. 주머니가 얇다 못해 없다시피 한 두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숙박비 비싼 일본 교외지역을 이렇게 무작정 찾아올 수 있었던 건 다 이 텐트 덕분이었다. 우리는 텐트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텐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어디서나 잘 수 있다는 일종의 배짱.
“아노…. 여기는 야영장이 없습니다. 시라하마라는 옆 동네로 가시면 유료 캠핑장이 있습니다.”
“유료? 얼만가요?”
“전화해서 물어봐드리겠습니다.”
네모난 안경을 쓴 남자가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했다. 남자는 수화기 너머 상대방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소데스까. 소. 소. 소소소. 소데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남자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눈 앞에라도 있는 냥 자꾸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겠는 일본어 대화가 머리로 들어오다 튕겨져 나갔다. 그래서, 얼만가요?
“입장료는 1인당 500엔. 야영장 사용료는 5000엔입니다.
“에에에에에에에?”
우리는 짐승의 울음처럼 길고 가는 감탄의 포효를 내뱉고는 관광안내소를 뛰쳐나왔다. 시라하마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땅바닥에서 자는데 6000엔을 요구하는가? 오사카 호텔에서 1800엔을 주고 두 사람의 몸을 뉘었던 가난뱅이들에겐 당치도 않은 말이다. 우리는 키타나베역 옆으로 선 길고 홀쭉한 호텔을 원망의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오기가하마 해변가 쪽으로 걸었다. 해변가로 간다고 무슨 수가 나지는 않겠지만, 가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수는 안 날 테니까.
키타나베역에서 일본식 가옥이 늘어선 골목길을 따라 15분을 걸으니 오기가하마 해변이다. 해변인데 바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일본은 너무 깨끗한 나머지 바다 냄새조차 나지 않는 건가? 우리는 해변가 공원을 걸었다. 오기가하마 해변은 해변이라기보다 바닷가 옆으로 난 '공원'에 가까운 곳이었다. 농구장, 스케이트장, 산책로, 벤치. 그 위에서 농구를 하거나 스케이트를 타는 남학생 무리.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할아버지. 홀로 산책하는 중년의 여성. 소나무 밭.
“소나무 밭에 텐트 치면 되겠다.”
내가 말했다.
“텐트는 사람 없는 밤에 치기로 하고, 식량을 구하러 가자.”
더스틴이 말했다.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타나베 지도 한 장을 들고 마트를 찾아 나섰다. 한자와 히라가나, 기타카타를 어렴풋이 읽을 줄 아는 나는 영어 외의 문자에는 까막눈이지만 길눈은 엄청나게 밝은 더스틴에게 지도를 보여줬다. 여기. 여기에 마트라고 쓰여있어. 내가 지도를 가리켰다. 더스틴이 양 눈을 가로 모으고 지도를 곰곰이 살펴보더니 길을 나섰다. 더스틴이 저렇게 지도를 확인한 후 길을 나설 때면, 엑셀에 세로로 숫자를 쫙 써넣고 합산을 해봤을 때처럼 믿음이 간다. 저런 자신감 있는 태도라니. 엑셀 합산이 틀릴 리가 없는 것처럼, 더스틴의 방향 감각 역시 틀릴 리가 없다. 골목길을 걸으니 작은 신사가 나왔다. 신사를 돌아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작은 나무들이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담장 너머로 아담하고 아늑한 집들이 보였다. 이 곳에 살면 평화롭고 행복하겠다 따위의, 여행객의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니 지도에서 봤던 병원이 나왔다. 하지만 있다던 마트는 그곳에 없었다. 우리는 신호등 앞에 서서 애꿎은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데스까?”
응? 막 신호등을 건넌 아저씨가 우리가 맞붙잡고 선 지도를 슬쩍 보더니 말을 걸었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용은 짐작이 갔다. 어디 가냐고? 아니면…. 도움이 필요하냐고?
“슈퍼마켓.”
슈퍼마켓은 왠지 일본어로 슈퍼마켓일 것 같아 대답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수파마켓?”
..
“수파마케토?”
…
슈퍼마켓. 수우퍼마케뜨. 수퍼마케또. 수파마께또. 발음을 최대한 다양하게 변용하는 도중 겨우 의미가 전달됐다. 수퍼마켓 찾아요. 밥 먹으려고. 나는 지도 위에 점을 찍고 엑스표를 그렸다. 여기 있다고 나와있는데 없어요. 아저씨는 내 손에서 볼펜을 이어받고 다른 곳에 점을 찍었다. 다이죠부? 다른 마트로 가도 괜찮냐고? 괜찮지요. 고분(오분), 걸린단다.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더니 마트 쪽을 가리킨다. 데려다준다고? 아리가또!
마트를 향해 걷는 동안, 아저씨가 우리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물론 일본어로. 일본어로 하다가 답답하면 영어로 말씀하셨다. 웨어 아유 프롬? 같은 말. 이따금 건네는 아저씨의 영어 문장은 완벽했다. 영어로 할 말 다 하고 우리말도 다 알아들어 놓고는, 아저씨는 자신의 브로큰 잉글리시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가끔, 와타시와 칸꼬꾸징. 타나베와 스고이 따위의, 알고 있는 일본어 다섯 단어를 총동원해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에에에에에에, 스고이!”를 외치며 손뼉을 짝, 치는 등 갖은 오버를 다 떨며 내가 일본어를 너무 잘한다고 감탄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하간 일본어도, 영어도, 그렇다고 한국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아저씨와 더스틴과 나는 마트를 향해 걷는 십여 분 동안 용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닷새 전에 일본에 왔는데 너무 싸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사카 호텔에서 지냈으며, 내일부터 쿠마노코도를 걸을 것이며, 쿠마노코도 중 나가헤치 루트를 걸을 계획이다. 뭐 그런 얘기.
“타나베에서는 어떤 호텔에서 묵습니까?”
“에….”
나는 예전 옆자리 일본 동료처럼 에, 하고 시간을 끌었다. 에…. 호텔에서 묵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왠지 조금 창피했다. 관광안내소에서는 그렇게 당당했는데 말이지…. 해가 넘어가 가로등이 켜지고 있는 이 시각에, 커다란 배낭을 들쳐 맨 채로, 아직 호텔을 잡지 못했다고 말하기가 민망하다. 야영을 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아저씨가 우리를 조금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입을 다물자.
빵 한 봉지와 바나나 한 송이 따위의, 조리가 필요 없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들고 오기가하마 해변으로 돌아왔다. 벤치에 앉아 바다 쪽을 바라봤다. 바다처럼 크고 넓은 불안이 덮쳐왔다. 마음속 불안의 원인은 소나무 밭이었다. 해가 떠 있을 때만 해도 텐트 칠 장소로 손색이 없어 보이던 해변가의 소나무 밭이었는데. 해가 다 진 지금에 와서 보니 야영을 하기에 형편없는 공간이다. 공간이 너무 개방되어있다. 가로등 때문에 마치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은 것처럼 밝다. 해가 지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해변가에는 아직 사람이 많았다.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남자애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어있지 않았다. 해가 진 대신 가로등 불이 켜진 거 말고는 변한 게 없다. 개 두 마리를 끌고 나온 아저씨가 공원을 빙빙 돌며 산책을 했다. 아주머니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우리가 생각했던 오기가하마 해변은 이런 게 아닌데.
지금은 초겨울이다. 겨울 바다는 춥다. 추운 겨울 바다에 누가 온단 말인가? 그것도 밤에. 대체 누가 해진 밤바다 앞에 모여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탄단 말인가? 그리고 이곳은 일본의 소도시가 아니던가. 해가 지면 조용하던 거리가 더 조용해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얌전한 일본 소도시. 타나베는 다르다. 타나베의 해변가는 해가져도 저물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해변 공원 벤치에 앉아, 수상한 배낭은 벤치 아래로 숨긴 채, 바나나를 끼어 넣은 마른 식빵을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