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싸움으로 시작된다

쿠마노코도를 걷자 04

by 두지

타나베에서 타키지리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고작 18km를 가는데 요금이 960엔이나 한다. 걸어가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일본에서 도로 위를 걷는 게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모르고, 되도록 일찍 가서 쿠마노코도 길 사정과 숙소 사정도 파악해야 하니.


버스 옆자리엔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 커플이 앉아있었다. 백인 남자와 아시아 여자. 평소 백인 남자와 아시아 여자로 구성된 커플에 딱히 동질감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렇다. 백인 남자와 아시아 여자여서가 아니라, 우리처럼 일본어도 못하고 쿠마노코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며 심지어 가난하기까지 한 대책 없는 여행자일 확률이 높아서. 우리는 바보인데, 아무래도 그런 바보가 한 쌍 더 있으면 위안이 되거든.


하지만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여자는 일본인이었고 고로 일본어가 유창했다. 자세히 보니 행색도 말끔한 게, 우리처럼 어젯밤 해변가 공원 구석에서 야영을 했을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영어가 통할 수 있으니 버스에서 같이 내려 쿠마노코도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볼 생각이었으나, 그들은 타키지리에서 내리지 않았다. ‘온센’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걸로 봐서 쿠마노코도 순례길 중간 즈음에 있는 유노미네 온센 마을에 갈 계획인 것 같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 같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타나베의 깔끔한 호텔에서 잠을 자고, 정상인 여행객들이 그러하듯 이 추운 겨울에 산길을 걷는 대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온센 마을에 놀러 가는, 지극히도 정상적인 정상인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왠지 배신당한 사람처럼 꽁해져서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짐을 챙겼다.


“돈 여기 있어. 네가 내고 내려와.”

더스틴에게 1,000엔짜리 지폐 두 개를 쥐어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더스틴이 지폐를 기계에 넣는 게 보였다. 동전이 와르르, 쏟아졌다. 거스름돈이 뭐 저렇게 많지. 더스틴이 동전을 집어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근데….


“아노, 아노.”


기사가 더스틴을 불렀다.


“뭐지?”

“일단 다시 올라가 봐.”


더스틴이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고 손에 잔뜩 들린 동전을 헤아렸다. 아, 야 그게 거스름돈이 아닌가 봐! 버스 아래에서 내가 외쳤다. 1,000엔짜리 두장을 몽땅 동전으로 바꿔준 거다. 정확히 낼 돈을 알아서 계산해 내야하는 거고. 더스틴이 고개를 팍 숙이고 침착하게 암산에 집중했다. 빵! 버스 뒤에 선 세 대의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일본에서 경적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다. 초조하다. 더스틴이 헛갈릴까 봐 빨리 하란 말은 하지 못하겠다. 대신 머릿속으로 나도 암산을 했다. 960엔 곱하기 2는…. 1920? 2000엔에서 그걸 빼야지. 2000엔 빼기 1920엔은…. 80. 그러니까, 저 수십 개의 동전 중 1920엔을 정확히 추려 내 동전 통에 넣어야 하는 거군. 빵! 다시 경적이 울렸다. 동양인 서양인 커플을 포함한 버스 뒷좌석에 앉은 승객 모두가 더스틴의 땀나는 뒤통수에 집중했다. 지옥 같은 2분이 흘렀다. 더스틴이 버스에서 내렸다.


“아 정말 끔찍했어. 근데 아무래도 20엔을 더 낸 거 같아.”

떠나는 버스를 보며 더스틴이 말했다.


“뭐? 아니 80엔만 남기고 다 내면 되는데 왜?”

“…. 지금 고작 20엔 더 냈다고 화내는 거야? 버스 승객이고 뒤에서 기다리는 차고 다 나만 바라보고 있던 그 지옥에서 겨우 벗어난 나한테?”

“아니 어려운 암산도 아닌데 그걸 왜 틀리냐고.”

“아 그래 봤자 20엔이라고!”


쿠마노코도 여행도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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