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뚜껑을 어떻게 따라고

매일 글쓰기 #2

by 두지

페트병을 따야 할 때마다 곤욕이다. 뭘 어떻게 해 봐도 도대체 뚜껑을 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힘을 아무리 주어봐도, 두 허벅지 사이에 병을 꽂고 양 손으로 돌려봐도, 뚜껑의 금 자국이 그대로 새겨져 버린 손바닥만 벌게질 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숨을 참고 얼굴이 시뻘게질 만큼 끙, 하고 힘을 한참 준 후에도 도대체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뚜껑을 내려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누구보고 따라고 뚜껑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아무리 내 손아귀 힘이 약하다지만, 잦은 컴퓨터 사용으로 방아쇠 수지 증후군 증상까지 생겼다지만, 별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만한 체력을 가진 성인 여자인 내가 못 딸 정도면, 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남지 않겠어? 나만큼, 혹은 나보다 악력이 약한 여자들은 많을 테고, 작은 어린아이들도 못 딸 테고, 기력이 쇠한 노인들도 따기가 어려울 텐데. 그럼 남는 사람이란 힘이 어느 정도 되는 남자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여자들 뿐일 텐데.


6살쯤 무렵이 생각난다. 엄마가 나를 불렀다.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 뒷방에 살 때였다. 방으로 들어가는 창호지 문에 문고리를 새로 달기로 했다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나를 문 앞에 세워놓고 팔을 위로 뻗어보라고 했다. 왜, 엄마? 팔을 힘껏 뻗으며 내가 물었다. 우리 가족 중에 네가 키가 제일 작잖아. 너도 문을 열 수 있게, 문고리 높이를 너에게 맞추려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신이 났다.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가만두지 않는 세일러 문이 될 때까지는 좀 더 커야겠지만, 나는 적어도 문고리가 어디에 달릴지는 정할 수 있는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 손이 닿은 곳을 펜으로 표시했고, 그다음 날 동그란 쇠 문고리가 그곳에 달렸다. 나는 우리 집의 기준, 적어도 문고리가 어디에 달려야 하느냐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결국 세일러 문이 되지 못한 나는 지금 병뚜껑 하나를 따지 못해서 주변인에게 뚜껑 좀 따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런 부탁을 하면 왜 느닷없이 약한 척이냐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약한 척을 하는 게 아니고 내 손아귀 힘은 이 뚜껑이 병에 붙어있는 힘에 비해 월등히 약하며 그것은 세상이 너만큼의 손아귀의 힘을 가진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쨌든 나를 도와준 거니 그런 말은 내뱉지 않는다. 분하다. 병뚜껑이 얼마나 단단히 고정되어있느냐의 기준은 나를 중심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기준을 흔들어버리고 싶은데. 일단은 목이 마르니, 병뚜껑을 따기 위한 펜치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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