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1
나는 회사를 싫어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싫고 회사라는 존재 자체도 싫고 출퇴근 길도 싫고 그냥 회사라면 다 싫다. 내가 회사를 싫어하는 건 내 주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내가 일주일에 7일 동안 주야장천 동료와 친구와 남편을 붙잡고 하는 얘기의 50%니까. 그래서 오늘은 회사가 좋은 이유를 억지로라도 생각해보려고 한다. 왜? 나는 인간이 너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라 가끔 너무 기울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억지로라도 밝은(?) 면을 보려고 혹은 생각해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5분 전 소파에 앉아 트위터를 보고 있을 때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화수목금 나인 투 식스, 출퇴근 시간까지 하면 에잇 투 세븐으로 무려 11시간이나 있는 공간인데 정말 레알 다 싫기만 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제껏 (여러 군데였긴 했지만) 회사 다니면서 번 돈으로 살 찌우고 맥주 사 먹고 월세 내고 그러지 않았겠나. 자, 그럼 잘 생각이 날 지는 모르지만 적어보자.
첫 번째 회사와 두 번째 회사에는 믹스 커피뿐이었다. 그때는 꼬꼬마 시절이라 믹스 커피도 좋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으면 사무실에서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믹스 커피가 제일 아쉬웠다. 세 번째 회사에는 커피 머신이 있었는데, 예산이 100% 나랏돈이었던 곳이라 믹스 커피만 공짜고 원두커피는 돈 통에 500원을 넣고 마셔야 했다. 지금 회사에는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이 있다. 원래는 캡슐을 탕비실에 하루 딱 10개 씩만 뒀다. 빨리 출근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직원들을 무슨 캡슐 하나 얻으려고 5분 더 일찍 일어나는 바보 취급을 한 거다. 물론 1도 먹히지 않았지만. (그거 얻자고 30초 더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알기론.) (앗, 회사가 좋은 이유를 써야 하는데 욕으로 방향이 틀어지고 있다. 안돼.) 여하튼, 지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모든 직원이 원하는 만큼 캡슐을 마음껏 활용해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 심지어(!) 우유까지 배달해주는데, 내가 9시에 아슬아슬하게 출근카드를 찍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캡슐과 우유로 라뗴를 만드는 일이다. 아 아니다. 일단 안녕하냐고 주위 동료들에게 무성의하게 인사를 하고 (나는 오전 11시 이전에는 매우 불친절한 경향이 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아웃룩을 켠 후 머그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머그를 씻는다. 그런 후 사무실로 돌아와 캡슐 머신에게로 간다. 캡슐 하나를 골라 기계에 집어놓고 원액을 내린 후, 우유를 꺼내 머그 가득 들이붓는다.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메일을 읽고 메신저로 들어오는 인턴과 팀장의, 어느 게 인턴의 질문이고 어느 게 팀장의 질문인지 모르겠는 질문들에 응답해주고 필요한 웹페이지와 프로그램들을 켠다. 업무를 바로 시작할 때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는 왠지, 정신적으로는 업무를 아직 시작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가 커피와 우유를 대충 섞어 만든 라떼는 꽤 맛있기까지 하다. 게다가 공짜다. 이건 참 좋다.
회사에서 사귄 친구들이 꽤 된다.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사교를 목적으로 모임에 가입한다거나, 동창 모임에 나가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 있는 친구도 잘 안 만나는데 뭘. 그렇기 때문에 반 강제로라도 다녀야만 하는 회사라는 공간은 내가 사람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부딪히는 몇 안 되는 창구 중 하나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회의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으러 간 화장실에서 마주쳐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친구가 된다. 같이 일 얘기를 하고, 이 사업의 취지가 대체 뭐냐고 비판을 하다가 나아가 이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하고, 팀장 욕을 하기도 하다가. 그러다 신의를 쌓고 친해져서 개인적인 사생활 이야기를 나누는 단계에 이른다. 전 남친이 개차반이었다. 이런 자리가 났는데 너 이직 자리로 어떠냐. 트럼프는 쓰레기다. 집에만 가면 남편이 트럼프 욕을 너무 해대서 귀가 아파 죽겠다.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만 예뻐했다. 등등….
첫 번째 회사에서는 나를 인간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선배 한 명이랑 친구가 되었다. 근데 내가 마음을 적극적으로 안 주어서 관계가 오래 못 갔다. 두 번째 회사는 나온 지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 연락하는 사람이 2명이 있다. (2분 전에도 문자 했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세네 명 정도 될 것 같은데 그다지 자주 연락하는 편은 아니라 ‘친구’라고 하기에는 좀 뭐시기 하기도 하겠다. 지금 회사에서는 퇴사한 거대한 무리까지 합치면 명수가 많은데, 여기서도 퇴사하고 나면 정기적으로 연락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훨씬 줄어들겠지.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한 회사 다닐 때마다 1명의 친구만 생겨도 잘 다닌 거 아닌가. 그래서 친구가 몇 명이고 그들과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고 이런 건 별 상관없다. 내 마음, 고민, 인생의 한 조각을 털어놓고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 심지어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 회사는 좋은 곳이다.
권여선 작가의 북 토크에 간 일이 있다. 그때 권여선 작가가 한 말 중 하나가 너무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써보라는 거였다. 좋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왜 좋은지에 대해 뭉뚱그려 애매하게 말하게 된단다. 그 사람? 음 뭐…. 착하고. 배려심 있고. 나랑 취미도 잘 맞고 웃기기도 하고…. 이렇게 추상적으로. 근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해봐라? 그럼 엄청 구체적이 되는 거다. 걔는 왜 그러니?부터 시작해서. 애가 큰 그림을 볼 줄을 몰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니까? 저 초록색 촌스러운 지갑 걔랑 스타일이랑 딱이지 않니? 등등 외모부터 스타일, 말투, 체취, 인생의 성과와 실패, 화장실 가는 빈도까지 너무나 자세하게 알고 있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
근데 회사에 가봐라. 2번에서 말한 대로 회사에는 친구도 존재하지만, 친구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다. ‘싫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등 심리를 분석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냥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 한 마디 하고 일을 해결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모두가 편한 것을 ‘내 실수’라고 인정하는 게 너무나 싫어서, 내가 실수한 연유와 사실은 내 잘못이 아니고 얘가 말을 잘못 전달해서 그렇고 어쩌고 저쩌고 말이 너무나 길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 사업에 대한 이해가 머릿속에 조금도 존재하지 않고 그 사업의 극히 일부 중 일부에만 꽂혀서 담당 직원을 괴롭히는 팀장. 누가 봐도 월급 루팡이고 뒤도 캥겨보이는 팀장을 일 잘한다고, 존경한다고, 저 사람 없으면 회사 어떻게 굴러가냐고 말하여 나를 벙찌게 하는 동료. 나는 이 분야가 너무 좋다고, 이 분야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고,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하면서 딴짓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간다고 끊임없이 ‘난 달라’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동료. 누가 문을 안 닫고 다니냐며 벌떡 일어나 문을 쾅 닫아버리는 신입. 이 사람들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서 (정말 구체적인 캐릭터가 되겠지) 소설을 쓰면 재밌을 거다. ‘오피스’라는 미드가 괜히 나온 게 아니겠지. 여느 때처럼 회사 욕을 막 하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그냥 다녀. 온갖 인간 군상을 관찰한다 생각하고. 좋은 말이었다. 온갖 인간 군상,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기에 회사보다 좋은 곳은 드물 테니. 그 측면에서 보면 회사는 흥미로운 곳이고, 고로 좋은 곳이다. 그리고 그런 온갖 인간 군상 중 극히 일부는 내 친구가 되기도 하니, 더더욱 좋다.
위의 글은 다 진심이다. 나도 회사를 100% 싫어하지만은 않는 거다. 한데 만약 회사가 싫은 이유에 대해 쓰자면…. 1, 2, 3, … 10007번까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10007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오늘 사표를 접수했다. 회사와는 동떨어진 이런저런 일들을 꾸며보려는, 나를 위한 선물이랄까. 앞으로 한 달 남았다. 남은 한 달의 시간을 그나마 즐기면서 다녀보고자, 이런 글을 쓸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관계로, 내일 또 ‘너무 좋은’ 회사로 지각하지 않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쓰겠다. 내일 또 어떤 흥미로운 인간이 흥미로운 일을 벌이려나. 벌써부터 신이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