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투덜거리기 7

by 두지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얌전하고 여성스러워 보이시는데.

차분하고 조용조용하신 것 같아요.

책에서 봤을 땐 되게 털털하고 매트로섹슈얼하실 것 같은데, 이미지가 전혀 다르세요.


나이가 들 수록 다소 뻔뻔해지는 게 있어서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선천적으로 내향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초면인 사람들에게서 저런 말을 많이 듣는다.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냐면…. 그냥, ‘또 저러는군’ 싶다. 그게 아니에요!라고 외치고 벌떡 일어나 나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어떤 행위(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를 마구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사실 잠깐 들긴 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저 말들이 틀린 건 아니다. 내게 얌전한 면이 있지. 여성스러운 면도 있겠지. 차분한 면도 있고. 말이 엄청 많은 편이 아니고 사람 많은 데에선 듣는 데 집중하니까 조용조용하다는 말도 맞고.


그러다가 나를 안 지 어느 정도 지나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되게 털털하고 씩씩하시다.

쏘 쿨하시네요.

보통 ‘한국 여성’들과는 다르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야 나의 진면목을 알아보는군!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스럽고 얌전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기분이 좋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왜 기분이 좋은가? 여성스러운 건 부정적인 거고 매트로섹슈얼한 건 좋은 건가? 조용하고 내향적인 건 부정적인 거고 털털하고 외향적인 건 긍정적인 건가? 보통의 한국 여성이라는 건 대체 뭔가? 쇼핑 좋아하고 외모에 신경 쓰고 편한 거 좋아하고 음식 가리는, 그런 이미지를 말하는 건가? 그런 건 부정적인 건가? 내 돈으로 쇼핑하겠다는데, 내가 좋아서 내 외모를 내 시간과 공 들여 가꾸겠다는데, 힘든 인생 가끔 편한 방식으로 가겠다는데, 나 먹고 싶은 거 먹겠다는데, 그게 왜 나쁘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초탈하게 된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내가 털털하다고, 혹은 여성스럽다고. 내가 활동적이라고, 혹은 얌전하고 조용조용하다고. 멋대로 생각하라고. 약간의 반감도 든다. 뭐라고 말하든 저런 말들은 나를 판단하는 말들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파악하고 싶은 욕구야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판단적인 말들은 상대방을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 안에 가두게 된다. 쿨하다고 하면 지질하고 쪼잔한 모습을 보여선 안될 것 같고, 씩씩하다고 하면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 범위가 크고 단정적인 말일 수록 상대방을 더 꼼짝 못 하게 가둔다. ‘초콜릿을 좋아하시나 봐요’, 와 ‘남자다우시네요’가 가진 말의 무게는 다르다. 초콜릿에 대한 기호는 ‘초콜릿을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냥 보통이다’, ‘초콜릿 드링크는 좋지만 그냥 초콜릿은 별로다’ 정도로 구분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자답다는 말은 ‘늘 남자답다’ ‘대체로 남자답지만 이따금 여자답다’ ‘가끔은 남자답고 가끔은 여자답다’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땐 남자답지만 혼자 있을 땐 여자답다’ ‘식성은 남자답지만 다른 건 아니다’ 등 무수하게 다양한 변곡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남자답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그 ‘남자다운’ 이미지를 파악해서 변함없이 보여줘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대체 남자다움이란 뭔지, 여자다움이란 뭔지, 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조차 애매한 마당에.


하나의 개인이란 건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 훨씬, 훠얼씬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는 다정하고, 어떤 시기에는 차가우며, 어떤 이에게는 이기적이지만 다른 이 에게는 이타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다. 나 자신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는 극심하게 이기적인 순간도 있지만 배려가 넘치는 때도 있다. 씩씩할 때도 있고 느닷없이 엉엉 울어버릴 때도 있다. 생각이 깊은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엄청 단순하고 바보 같고 생각 없이 굴 때도 많다. 말 한마디도 안 할 때도 있고 혼자 주절대고 떠들 때도 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혼자 놀라는 때도 많다. 나도 나 자신을 다 파악을 못했는데, 타인은 오죽하랴.


다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방향성은 있다. 나는 좀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체적인 사람이고 싶고,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고 싶다. 무지하지 않고 무심하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에 가까울 때가 있고, 전혀 아닐 때도 있다. 나는 고정적이지 않고 늘 변화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좀 더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도 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100퍼센트 사려 깊고, 타인을 이해하고, 주체적이고, 정의롭고, 다정한 사람이 되는 궁극의 순간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하는 것뿐이다. 방향성을 가지고 계속 시도해나가는 것 정도. 그런 나의 여정을 스쳐가면서 누군가는 나를 여성스럽다 하고, 이기적이라 하고, 다혈질이라 하고, 소심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나에 대한 찰나의, 단면적인 면모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그러니 뭐,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이수지란 인간은 00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든 쌈을 싸 먹든 제기차기를 하든….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되고 싶은 인간이 되기 위해 나 나름의 최선을 다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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