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디도 아닌 스리랑카

by 두지

여기 미얀마 같지 않아?


스리랑카 와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남편 D와 나는 중간의 ‘미얀마’라는 대명사만 바꾸어가며 같은 문장을 되풀이했다. 콜롬보의 시장 거리를 걸으면서는 미얀마와 인도의 중간 즈음인 것 같다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거센 파도를 타며 낄낄대고 있는, 연이나 조잡한 장난감,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는 콜롬보의 갈레 페이스 비치를 걸으면서는 캄보디아나 라오스 느낌이 나지 않느냐고. 동네 아이들이 수줍게 ‘헬로’라고 말을 거는 하푸탈레의 차밭 사이를 걸으면서는 인도의 다질링이나 시킴 비슷하다고.


그러다 보니 실망을 하게 된다.


미얀마 같긴 한데,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만큼 밝게 웃지 않아. 인도처럼 장사꾼들이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지 않는 건 좋은데, 인도만큼 솔직하지는 못한 것 같아. ‘머니’나 ‘스쿨 팬’을 요구하지 않고 ‘헬로’ 한 마디로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이 귀엽긴 한데, 다질링이나 시킴에는 있는 무언가가 빠져있어.


그렇게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비교하다 보니 미얀마, 인도, 라오스, 캄보디아에는 있던 무언가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망을 하게 된다. 스리랑카는 미얀마도 인도도 라오스도 캄보디아도 아닌, 그 어디도 아닌, 그냥 스리랑카일 뿐인데.


여행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다. 여행지를 그 여행지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전에 갔었던 여행지와 비교하고, 예전 여행지를 기준으로 지금의 여행지를 빠르게 판단하려 든다. 이것은 마치 꼰대와 같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얄팍한 경험에 빗대어 멋대로 판단하고 비교하고 급기야는 실망까지 해버리고.


어제 D와 숙소 앞 차밭을 걸으며 멕시코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멍청하고 어리석고 아는 게 없었는지, 늙은 D와 내가 어렸던 D와 나를 마구 욕했다. 멕시코 티후아나는 지금도 가기 꺼려지는 위험한 곳인데, 샌디아고 바로 아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정보 없이 무작정 갔더랬지. 골목길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동네 아저씨 하나가 붙잡고 그 길로 절대 가지 말라고, 가방 뺏기고 칼 맞는다고 이끌어준 덕분에 겨우 살았지. 의자가 다 뜯어진 택시를 타고 투우를 보러 갔었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었다. 하지만 반면, 참으로 말랑말랑했다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고, 겪어본 것이 없었고, 여행도 별로 안 해봤고. 그래서 그런 만큼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았어.


그러니까 스리랑카에서도 그러자.


자꾸 비교해서 그렇지 참 좋은 곳이다 스리랑카.


일단 음식이 너무 맛있다. 인도와 태국 음식을 반쯤 섞은 것 같은, 하나 시키면 대여섯 종류가 나오는 카레. 싸고 맛있는 해산물. 쫄깃쫄깃한 로띠. 얇고 바삭하게 부친 팬케이크 같은 호퍼. 거대한 아침식사. 한 끼 한 끼 먹을 때마다 그전 식사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전 세계 음식 순위에서 태국을 이미 뛰어넘었다. (우리 기준)


사람들도 친절하다. 인도보다 덜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off the beaten path인 줄은 몰랐다. 아마도 테러 사건 이후로 관광객이 확 줄었겠지. 지금은 우기이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들의 돈에 놀아나지 않아 아직 친절한지도 모르겠다. 어제 대여섯 시간을 걷는 동안 관광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외국인을 처음 만난 것 같은 동네 아이들은 우리를 보면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너무 수줍어서 쭈뼛거리다가 우리가 먼저 인사하면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커다란 눈만 위로 올린 채 입술을 깨물고 헬로, 하고 인사한다. 집 앞에서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형을 데리고 나와 그제야 인사하는 아이. 엄마 뒤에 숨었다가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 그제야 인사하는 아이. 형아 누나들 사이에 서서 눈만 크게 뜨고 있다가 우리가 인사하니 손가락만 깨무는 아이. 어른들도 바라는 거 없이 친절하다. 대단한 풍광 앞에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 가족이 지나가는 우리를 보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멈춰 세운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을 맞아 여행을 왔는데, 기껏 찾아온 성당이 문을 닫아 실망스럽다는 스리랑카 남자는 그래도 친구(D와 나)를 만나 다행이고 좋다며 우리와 셀카를 찍는다.


걷다가 만나는 온갖 동물들은 어떤가. 나라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킹피셔와 매와 공작새와 몽구스와 자이언트 다람쥐를 봤다. 원숭이는 너무 흔해서 구경거리도 못된다. 잠시 멈춰 서서 원숭이 구경을 하고 있으면 뭔 원숭이 따위에 관심을 주고 있냐고 현지인들이 비웃는다. 풍광은 기가 막히다. 탕갈레의 해변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하푸탈레에서는 넓게 펼쳐진 차밭 너머, 마을 너머, 산 너머, 저 먼 산까지, 세상 저 끝까지 보이는 것 같다.


사람도, 음식도, 풍경도,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다. 스리랑카는 오롯이 스리랑카이기만 하다. 미얀마의, 인도의, 라오스의 기억을 아예 잊어버릴 순 없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 만이라도 백지의 상태로 여행해보기로 하자.


여기는 그 어디도 아닌 스리랑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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