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마을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하는데, 혹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데. 소인배인 나는 그런 큰일 따위는 꿈꿔본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어떻게 하면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고민한다. 세상을 바꾸는 거에 비하면 훨씬 수월할 것 같지만, 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생각해 볼수록 어려운 일이다. 먹고, 자고, 입고, 이동하고, 쉬는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는 데만 해도 내 흔적은 깊고 짙으니까. 먹고 나온 쓰레기. 샤워를 하기 위해 쓴 물. 이동할 때 나온 배기가스. 이산화탄소. 그날 만난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남긴 상처 등.
남편 D와 나, 인간 둘이 사는 데 이렇게 많은 흔적이 남아버리는구나, 라는 걸 느낄 땐 한동안 버리지 않은 쓰레기가 집 한편에 잔뜩 쌓일 때다. 봉투 두 개에 가득 담은 생수병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자주 들어 정수 필터를 구매했다. 이번 주는 집에서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어야지(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D에게 요리를 시켜야지) 하는 마음에 장을 잔뜩 봤다가 냉장고 안에서 썩어 난 온갖 야채들과 기타 등등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리며 다짐한다. 재료는 한 끼 먹을 만큼만 사리라, 그리고 웬만하면 외식하리라. 맥주 캔과 병은 재활용품이라 죄책감이 조금 덜하긴 한데, 그래도 내 몸무게와 맞먹는 병 다발을 질질 끌고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많이 마실 일이었나.
서울에서 일상을 살 때는 비슷한 종류의, 비슷한 양의 흔적 혹은 쓰레기가 남는다. 비슷한 루트로 지하철을 타고, 비슷한 종류와 양의 음식을 소비하고, 비슷한 양의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니까. 맥주 캔의 수는 어째 점점 느는 것 같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할 때는 내 흔적에 조금 더 민감해진다. 집, 그리고 내가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서 그럴 테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내 흔적이 많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능한 조용하게, 변화시키는 것 없이, 마치 내가 지나가지 않았던 것처럼 지나가고 싶다. 여행할 때는 이 흔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어디까지가 흔적일까. 어디까지가 방해일까. 내가 잠시 왔다 갔다는 것만으로 있는 그대로의 것을 망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스리랑카 하푸탈레에서 묵은 숙소는, 숙소 바로 앞으로 차 밭이 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마을과 산과 산이 끝없이 펼쳐진, 전망 좋은 곳이었다. 하푸탈레에는 립톤 시트라든가, 이달가시나역까지 철로를 따라 걷는다든가 하는 잘 알려진 산책길이 여럿 있다. 그 길들도 좋지만, D와 내가 가장 좋아한 길은 숙소 앞 차밭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우리는 그 길을 여러 번 걸었다. 하푸탈레에 도착한 날에는 해 질 무렵 밖으로 나가 길을 걸으며 저 멀리 산 너머로 해가 지는 걸 구경했다. (그러다 거머리에 물려 피를 철철 흘렸지.) 맑은 날에는 끝없이 펼쳐진 전망을 보며,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하얀 안개 사이를 가르며 걸었다. 가끔 찻잎을 따는 사람들을 만났고, 두 번 정도 짖는 사슴(barking deer. 사슴인데 짖는다!)을 만났고, 여러 번 새와 동네 개를 마주쳤다.
하루는 차밭 끝까지 걸어 내려갔다. 차를 마시러. 차밭 끝 도로에 찻집이 있었다. 구글 리뷰를 보니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가격과 맛이 괜찮은 찻집이었다. 찻잎과 꽃과 나무와 새를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 보니 힌두교 사원이 나왔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동네 남자 애들이 사원 옆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었다. 돈이나 스쿨 펜을 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우리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잠시 크리켓 경기를 멈추고 길을 비켜주는 매너를 시전하는 아이들. 힌두교 사원을 지나 다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걸으니 마을이다. 언덕을 내려다보며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 지붕에는 빨래들이 널어져 있다. 재잘재잘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싶더니, 역시나 아이들이 엄청 많다. (아이들 목소리가 병아리 같다는 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동시에 재잘대는 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병아리 같다.) 아이들은 길가에 나와 있다가, 집 앞에서 놀다가, 언니와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엄마와 집 밖으로 나오다가 우리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어떤 아이는 헬로! 하고 신나게 인사를 하고, 어떤 아이는 언니 뒤로 숨고, 어떤 아이는 눈을 내리깔다가 우리가 인사를 하니 그제야 겨우 헬로,라고 인사하고, 어떤 아이는 골목 뒤로 뛰어들어가 형을 데리고 나와 인사했다. 어른들은 수줍어서 인사를 못하는 아이를 다독여 인사를 시켰다. 귀여웠다. 마을을 지나 찻집으로 가 차를 마셨다.
“숙소로 가려면 같은 길로 돌아가야 하지? 마을 다시 안 지나고 싶은데….”
D가 말했다. 어? 왜? 귀엽지 않았어? 아이들도 우리가 신기해서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마 외국인을 처음 보는 걸지도 몰라. 나 같은 아시아 사람은 특히. 어른들도 딱히 거슬려하는 것 같지 않던데.
방해하는 것 같아서. 침범하는 것 같아서. D가 말을 잇는다. 아이들은 몰라도 어른들 표정에는 조금 묻어나는 것 같았어. 왜 괜히 본인들이 사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는지. 구경하러 온 건지. 본인들이 구경거리인 건지. 라오스 농끼아우에서는 분명히 느꼈었잖아. 마을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소수민족 마을로 들어갔을 때. 우리를 보고 경계하며 아이를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가던 여자를 봤을 때. 아, 이들이 사는 곳인데. 남이 사는 곳을 함부로 지나다니면 안 되는 건데. 특히 그들을 ‘구경’하러 온 거라면 말이지. 어렸을 때 살던 골목에 웬 외국인이 들어와 걸어 다니며 나를 구경했다면 기분이 어땠겠어. 더러웠겠지. 대상화됐을 때의 그 기분. 너도 알잖아.
D가 예민한 게 아닌가 생각하다, 라오스 농끼아우 때를 떠올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더 그럴 것도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런 때는 좀 더 예민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게 맞을 테다.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 안 쓸지 몰라도, 이 마을에도 D처럼 예민한 사람이 살 수 있으니까.
숙소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마을을 거슬러 가야 했다.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마을을 지나쳤다. 아이들은 전처럼 수줍고도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 안녕. 카메라에는 담지 않는다. 관조가 되지 않도록.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낼 땐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물은 사 마시는 대신 휴대용 필터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우리가 이 마을을 떠나고 난 후, 우리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이 최대한 남지 않게.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흔적은 남겠지.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여행 안에는 ‘구경’의 요소가 짙은 ‘관광’이 제로일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구경하겠지. 좀 더 편히 구경할 수 있게, 그래서 그 편의에 대한 돈을 지불할 수 있게, 관광 인프라는 늘어나겠지. 차밭과 새 보호구역과 작은 마을들은 뒤로 밀려나고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팬케이크를 파는 식당과 커피숍은 많아지겠지.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돈이나 과자를 쥐여주는 여행객들을 몇 만난 후, 돈과 스쿨 팬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되겠지. 그게 꼭 나쁜가? 그건 모르겠다. 좋은 것도 있겠지. 수입이 늘어날 테고 이 나라의 자연과 문화가 알려질 테고 그러면 그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커질 수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난,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싶다. 나는 돈 몇 푼 내고 구경 다니는 여행자일 뿐인데, 지나간 자리가 훼손되고 낭비되고 변질된다면 큰 죄일 테니.
찻집에 가기 위해 차밭을 한 번 더 내려갔다. D는 마을 길을 또 지나야 한다는 거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힌두교 사원이 나오고, 크리켓 하는 아이들을 지나, 혹시 지름길일까 하여 좁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크리켓을 하다 잠시 집에 들른 아이가 나오더니 이 길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사원 뒤편의 길을 알려줬다. 긴 계단을 2분 정도 따라가다 보면 찻집이 있는 큰 길이 나오는 지름길이었다. 덕분에 마을을 전혀 거치지 않고 찻집까지 갈 수 있었다. 길을 알려준 아이가 계단 위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며 자랑스러움과 승리의 미소를 선보였다. 고맙다.
차를 마시고 다시 지름길을 타고 힌두 사원으로 올라갔다. 크리켓을 하던 아이들이, 특히 길을 알려준 빨간 셔츠를 입은 아이가 우리를 보고 엄청 반가워했다. 거 보라고, 내 말이 맞지 않냐고, 내 말대로 가니까 찻집이 바로 나오지 않았느냐고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 그래 고맙다고 돈 몇 푼 쥐여주는 건 흔적을 남기는 일이겠지. 굉장히 무례한 짓일 수도 있고.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아이들이 D를 붙잡는다. 크리켓을 한 번 쳐보란다. 괜찮다고 사양하고 가려는 D를 무지막지하게 붙잡는 아이들. D는 결국 크리켓 방망이를 잡았고, 투수 아이가 공을 던졌고, D가 공을 저 멀리로 날려버렸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D도 깜짝 놀랐다. D가 스리랑카에서 태어났다면 영화를 만들겠다고 고군분투를 하는 대신 크리켓 선수가 되어 잘 먹고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공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수풀 너머. 아마도 다시는 공을 찾지 못할 장소로.
고맙다고 지나가려는데 아이들이 악수를 청한다. 마치 ‘굿 게임’이었다고 악수하는 것 마냥. D와 악수를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나에게 오더니 악수를 하잔다. 친구가 나와 악수를 하는 걸 본 빨간 셔츠의 아이(길 알려준 아이)가 다가오더니 나와 악수를 한다. 그러더니 허그를 한다. 뭐지 이건. 그래 까짓 허그 해주지 뭐. 가벼운 허그를 하고 길을 나선다. 아이들은 이상하게 생긴 아시아 여자와 악수를 하고 허그를 한 게 재밌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약간 께름칙하지만, 남의 마을을 함부로 휘젓고 다닌 값이라고 치자.
방해하는 기분이라 마을을 지나는 게 불편하다고 했던 D. 마을 아이들과 크리켓을 한 게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단다. 그래, 와이프 허그 팔아 애들이랑 크리켓 하니 좋으냐.
오늘도 우리는 흔적을 남겼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이 정도 흔적쯤은 서로 남겨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계속 여행하겠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하지만 끝내 조금씩은 남기면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으며. 소곤소곤 낮게 이야기를 나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