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값 더하기 저녁식사값으로 3100루피가 나왔다. 5000루피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1000루피짜리가 충분히 있었지만, 이 나라에서는 5000루피짜리를 아무도 거슬러주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큰돈(?)을 치르는 이럴 때 잔돈을 만들어놔야 한다. 근데.
- 잔돈이 없어요.
2000루피도 없단 말인가? 다른 때 같았으면 나도 잔돈이 없다고 우겼을 테지만, 숙소 주인의 표정이 뭔가 애절하여 순순히 다시 지갑을 열었다. 손님이 없어서 그렇단다. 손님이 없으니 돈도 없단다. 이런.
- 우기라서 그래요? 비성수기라 그런가? 다른 도시에서도 숙소에 가면 늘 우리 밖에 손님이 없었어요.
- 우기라 비성수기이기도 하고. 폭탄 테러 사건 이후로 손님이 뚝 떨어졌어요.
폭탄 테러 얘기를 꺼낸 건 이 아저씨가 처음이다. 다른 숙소에서도 손님이 너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들 비를 탓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테러일 거다. 테러 때문에 얻은 여행 위험 지역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난 지 고작 한 달이다. 사람들이 스리랑카를 다시 찾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텅 빈 방들은.
우리가 있는 곳은 아담스 피크(Adam’s Peak)다. 스리랑카에서 손에 꼽을만한 유명한 관광지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첫 발을 내디딘 곳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발자국을 새긴 곳이라고도 하고, 힌두교에서는 이곳을 시바스 피크(Shiva’s peak)이라고 부른다. 수천 년 전부터 순례객들이 오르던 곳인데, 신년이나 풀문 데이 같은 날에는 스리랑카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걷기 싫으면 주말을 피해서 오라는 말을 들은 터라, 금요일에 도착한 우리는 살짝 걱정했다. 근데 걷는 내내 한 다섯 명 봤나.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정상에 모여든 사람들을 다 합해봤자 열다섯 명 남짓이었다. 그러니 호텔에 사람이 없지. 열다섯 명을 나눠가져야 하니.
우리가 머문 숙소는 닐라탄니야 마을(아담스 피크에 오르기 위해 머무는 마을)에서 꽤 잘 나가는 곳이다. 부킹닷컴에 리뷰가 천 개가 넘고 한국어 책에도 소개가 되어있다. 뭐 여기만 그랬나? 하푸탈레에서 묵은 숙소도 하푸탈레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숙소인 데다 전망도 끝내줬다. 근데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남쪽 해변 마을인 탕갈레의 숙소 아저씨는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분이셨다. 방명록을 써야 한다고 해서 열어보니 열흘 전 손님이 마지막 기록이다. 체크아웃할 때 아저씨가 부킹닷컴에 좋은 리뷰를 달아달라고 부탁하셨다. 기꺼이 그럴 마음이 있지만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나라 자체에 여행객이 없는데 리뷰가 좋은 게 무슨 소용이야. 탕갈레는 관광 인프라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호텔이 정말 많음) 마을이 더 죽어 보였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시내는 활기차지만, 호텔과 식당이 즐비해있는 거리로 가면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걸 좋아하는 두숱과 나지만 이건 정말이지 너무 없다. 텅 빈 거리와 끝없이 펼쳐진 해변가를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한참을 걸었다. 모래사장엔 발자국조차 없다.
어제 닐라탄니야 마을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을 때. 우리가 예약한 숙소 바로 옆 호텔 내외가 밖에 나와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혹시 예약한 호텔에 돈을 아직 안 냈으면 본인들 호텔로 오란다. 좋은 방이 많다고. 이미 예약을 했고 취소도 안 된다고 하니 그러면 저녁이라도 먹으러 오란다. 알았다고 하고 우리 호텔로 내려가는데, 마음이 씁쓸했다. 보니까 호텔도 엄청 크다. 5층짜리 거대한 건물인데 손님이 단 한 팀도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마음이 쓰릴까. 이렇게 큰 호텔을 만들어놨는데 손님은 없고. 손님이 없어 새까맣게 타는 마음 나도 어느 정도 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장사를 했는데 손님이 없었다. 엄마는 손님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정말이지 매일같이 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들어온다는 말도 수만 번 들었다. 아마 그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저 내외들도. 우리 숙소 사장도. 다른 도시의 숙소 사장들도.
숙소에는 가이드북이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오랫동안 내전으로 고통받았다고 적혀있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쓰나미가 왔다. 자연재해로 사람들 마음이 뭉쳐질까 싶었지만 지원 물품 배분 문제로 더 분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 산업은 점차 빛을 보고 있었는데 테러가 터졌다.
닐라탄니야에서 하룻밤만 묵으려고 했는데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미리 주문하려고 주인을 찾아가니, 오늘은 10명 예약이 들어와서 뷔페를 준비할 거라고 했다. 우리도 그걸 먹겠다고 했다. 오후에 확실하게 한 번 더 알려주겠단다. 예약을 해 놓고 안 오는 경우도 있어서.
오늘 밤, 손님 10명이 꼭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