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9
방금 전 핸드폰에 커피를 쏟았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5년 동안 참고 참다 더 이상 안되겠어서 두 달 전에 큰 마음 먹고 산 핸드폰이라 더 가슴이 아프다. 고장이 났는지, 어느 정도 고장 났는지는 말려보고 다시 켜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나 자신이 조금 싫어졌다는거다.
커피 쏟고 떨어뜨리고 붙잡고 넘어져서 핸드폰과 카메라와 노트북 등등을 망가뜨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걸 구구절절 나열하면 내가 조금 더 싫어질 것 같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나를 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작년 이맘때쯤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갔다. 집에서 글이 안써진다는 이유였는데 커피숍에 사람이 너무 많아 글은 더 써지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그날 따라 더욱 뜨거웠던) 블랙 커피를 시켰고, 너무 뜨거워 식히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화장실을 가야 해서 뚜껑을 살짝 덮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기 위해 (계속 트위터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그게, 뚜껑을 열어 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뚜껑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커피는 철철 넘쳐 노트북 키보드 위로 흥건히 떨어졌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당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사흘간, 노트북은 뒤집혀 벌려진채 선풍기 강풍을 하염없이 맞는 신세가 되어야했다. 사흘 뒤 전원을 켜본 노트북.‘p’ 혹은 ‘ㅔ’를 칠 때마다 ‘;’가 같이 타이핑 되었고, 글을 한참 써 놓은 후 ‘;’를 찾아 일제히 지워야했다.
2.
스마트폰 앱, 모바일웹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던 터라 직원들에게 시범용아이폰이 지급됐다. 그 전년도에 지급되었던 아이폰 3를 반납하고새로 아이폰 4를 받았다. 새로 받은 아이폰 4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생애 처음 얼리 어댑터가 된 기분으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다녔다. 하루는 남편과 이태원에 있는 바에 갔다. 기분좋게 맥주를 마시고 바를 나왔다. 작은 언덕이 있는 길이었는데, 아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꽤 심하게 넘어져 손이고 무릎이고 다 까졌던 것 같은데, 넘어짐과 동시에 내가 외친 말은 아프다가 아니라 “내 핸드폰!!!!!” 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아이폰의 액정 아래가 무참이 깨져버렸던것이다!
3.
이번엔 카메라다. 4년 전이었나. 잠시 미국에 머물고 있던 남편이 한국에 돌아왔는데, 급하게 구한 집이 나가리가 되어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시고 있는 고시원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면 서 있어야 하는 좁은 방이었는데, 밀린 빨래가 생기면 한 사람만 들어가도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빨래통이 다 찼길래 들고 세탁기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보통 쓰던 드럼이 아니라 뚜껑이 위에 달린 세탁기였다. 귀찮아서 빨래를 확 부어버렸고, 세제도 확 부어버리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한시간 뒤, 남편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물었다.
“내 카메라 어딨어?!”
어딨긴. 세탁기에서 잘 탈수되고 있지.
*
사전에서 ‘습관’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란다. 실수도 되풀이하면 습관이 된다. 부주의해서 물건 망가뜨리고, 잃어버리는 것도 습관이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하도 당해서(당한게아니라 자초한거지만) 이젠 왠만한 일을 겪어도 무덤덤한 건 나름 좋다’는 식으로 멋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렸는데 조금 다시 생각해봐야 되겠다. 커피 뚜껑을 닫으려면 닫고 말려면 말아야 할 것이며, 길을 잘 보고 걸어야 할 것이며, 빨래를 할 땐 세탁기에 옷 말고 다른 건 없는지, 혹여 카메라 같은 건 없는지 확인하고 하나하나씩 빨래감을 넣어야 할 것이다.
하여간 오늘도 교훈을 하나 얻었다. 하나, 핸드폰 옆에 컵을 두지 않는다. 둘, 그 컵이 종이컵이라면 더 그러지 않는다. 셋, 그 컵이 좀 긴 종이컵이라면 더더 그렇지 않는다. 오늘의 교훈으로 내일은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있길. 핸드폰아 제발 무사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