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란 커피통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10

by 두지

부엌 찬장에는 노란색과 황토색 중간 즈음되는 우중충한 색의 커피통이 있었다. 아이보리 색 고무 뚜껑이 달린 세 개의 컵이 중앙 손잡이를 중심으로 달려있는 구조의 통이었다. 하나에는 커피가루, 다른 하나에는 프리마, 또 다른 하나에는 설탕이 담겨있었다.

엄마가 커피를 어떻게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 스푼씩 넣었던가. 설탕은 한 스푼만 넣었던가. 엄마는 아무 무늬가 없는 하얀 자기 같은 커피잔에 티스푼으로 커피와 프리마, 설탕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티스푼으로 찻잔을 저으면 젓는 방향을 따라 돌돌돌, 갈색 물이 돌아갔다. 하얀 연기가 나는 따뜻한 갈색 차. 어린 내 눈엔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나는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 주인을 바라보는 개처럼 엄마와 커피잔을 빤히 쳐다봤다. 엄마는 너처럼 쪼끄만 애는 커피 마시는 거 아니라며 주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조르면 이따금 바닥에 한 모금 정도 남은 커피를 맛보게 해줄 때도 있었다.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정말 맛있었다.

엄마가 마시던 게 인스턴트커피라는 걸 안 건 교환학생 때였다. 교환학생을 통해 많은 걸 배웠는데 그중 하나가 커피의 맛이었다. 그전까지는 시험 기간에나 가끔, 밤을 새우기 위해 편의점에 가서 매일유업에서 나온 플라스틱 컵에 빨대가 붙어 나오는 카페라떼를 마시는 게 다였다. 교환학생을 가니 온통 커피 천국이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들른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식사와 함께 블랙커피 한 잔. 리포트를 쓰기 위해 나온 학생회관에서 병에 담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며 또 한 잔. 매일매일, 하루에 세 잔을 마셨다. 그때까지도 커피가 뭔지, 열매인지 가루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원두커피를 처음 본 건 기숙사를 나와 잠시 머무른 집에서였다.

여름방학 때라 애초에 그 집에 살기로 한 사람 중 둘은 짐만 들여다 놓고 집에 내려가 있었다. 친구와 나는 집 청소를 하며, 이따금 다른 룸메이트의 부엌살림들을 들여다봤다. 요리를 하는 친구들이라 처음 보는 향신료와 요리 재료들이 많았다. 커피도 있었다. 피곤했고, 호기심이 일었고,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우리는 주전자를 찾아 뜨거운 물을 끓였다. 커피가루를 넣고 엄마가 그랬듯 티스푼으로 돌돌돌, 저었다. 돌돌돌. 돌돌돌. …. 커피는 녹지 않았다. 이상한 커피라며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요샌 커피를 많이 마시니까, 원두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커피가 안 녹는다며 투덜대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도 이젠 뜨거운 물을 붓고 젓기만 하면 완성되는 인스턴트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다. 주중 아침에는 캡슐을 마시고 주말에는 드리퍼로 원두를 내려 마신다. 커피숍에 갈 때는 라떼나 블랙을 마신다. 시럽을 넣은 바닐라 라떼나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걸 좋아할 때도 있었는데, 이젠 단 게 싫다. 그래서 내 입맛이 좀 고급스러워졌냐고? 그건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엄마의 노란 커피통이 조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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