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골든 리트리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00-17

by 두지

오늘도 내가 이 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저 인간은 정말이지 게으르다. 제대로 된 습관을 가질 줄을 몰라 늘 고생에 실수투성이다. 8시면 출근하러 나가야 하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회사 사장이 아는데 7시 50분까지 눈도 못 뜨고 있는 형국이라니. 그러게 어젠 술은 또 왜 마셨데? 그제는 우울하다고 마시더니 어제는 또 기분 좋다고 마시더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뭐, 어쩌겠나. 불쌍하니까 내가 깨워줘야지. 내가 깨워주지 않으면 또 지각을 할 거고, 회사에서 한 마디 들을 거고, 그러면 또 우울하다고 술을 진탕 마시고 내일도 못 일어나서 내가 깨워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테니.


저 인간 깨우는 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일단 침대로 뛰어든다. 인간 위에 올라타 숨을 헥헥 쉰다. 그래도 안 일어나면 네 발로 마구 밟아줘야지. 마사지도 해줄 겸. 그러면 아주 조금 의식을 되찾고 끙끙대는데, 그때 볼 쪽을 쓱 핥아주면 눈을 번쩍 뜬다. 한 번도 실패해 본 일이 없다. 이 인간은 내 손안에 있다.


인간은 그래도 내 밥은 차려주고 출근한다. 그래도 기특한 게 내 밥을 잊고 간 적은 하루도 없다. 조금 서글픈 건 밥을 막 먹고 고개를 들어보면 인간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다. 굳게 닫힌 문 안으로 그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데 그 인간은 없다. 그럴 땐 좀 슬픈 감정이 들어 시무룩해진다.


주말엔 산책을 한다. 내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주중에도 산책을 해야 하는데, 주중에는 인간이 집에도 일찍 못 들어오고 늘 피곤해 보여 너그러운 내가 마음씨 좋게 참아주는 편이다. 주말엔 보통 점심을 먹고 해가 가장 뜨거울 때 집 옆 천으로 산책을 간다. 천에는 산책을 나온 동료 개들과 인간들이 많다. 가끔 나를 보고 짖는 것들이 있는데 내가 볼 땐 그거 다, 자격지심이다. 꼭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짖거든.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인간들도 있다. 내 뒤를 살살 쫓으면서 변태같이 웃는 표정으로 아이 예쁘다, 정말 잘생긴 개다, 하는데 정말 귀찮아 죽겠다. 걸을 때도, 뛸 때도, 심지어 볼일을 볼 때도 눈에 하트를 하고 쳐다보는데 가서 확 물어줄 수도 없고 정말. 어쩌겠나. 내 황금빛 털과 우수한 외모 탓에 겪어야 하는 시련인 것을. 내 인간 놈은 그런 인간들한테 그만 좀 쳐다보라고 혼내주지는 못할 망정, 가끔 그 사람들이 내가 아닌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실실 웃어댄다. 허 참. 착각도 대단하시지. 털도 턱 주위에만 이따금 나는 게 뭐 볼 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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